TV 폭력 노출, SBS가 최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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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중 시간당 9.4회로 가장 많아…그 다음은 MBC·KBS 순

 
TV 화면을 통해 폭력이 묘사된 장면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주로 드라마에 폭력 묘사가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외에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시사·교양 프로그램, 뉴스 등 TV에서 방영되는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폭력 묘사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물리적인 폭력 말고도 언어 폭력에 대한 노출 증가도 눈에 띈다.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MC와 패널 간에 반말과 ‘십장생’ 등의 변형된 욕설이 난무한다.
다매체 시대를 맞이해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의 유료 채널을 통해 수많은 프로그램이 쏟아져나오면서 시청자가 폭력 묘사에 더욱 쉽게 노출될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공공적 측면을 담보하며 심의 과정도 잘 준비되어 있는 지상파와는 달리 쏟아지는 유료 채널의 프로그램들을 적절히 걸러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방송 프로그램의 폭력 묘사를 구체적으로 측정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희대 언론정보학부의 ‘매스미디어 폭력성 및 선정성 연구팀(NVSS)’은 국내 지상파 및 케이블TV에서 묘사되고 있는 폭력적 장면 노출 빈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NVSS팀은 연구에서 “2006년 한 해 동안 방송된 지상파 TV 프로그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폭력성 분석 결과 매 시간당 5.4회의 폭력 장면이 노출되었으며, 2007년 2월 동안 방송된 총 2주간의 케이블TV 프로그램 분석에서는 시간당 24.3회의 폭력 장면이 묘사되었다”라고 밝혔다.
지상파 채널별로는 SBS가 시간당 9.4회로 가장 높은 폭력 빈도를 보였고 그 다음은 MBC 7.5회, KBS2 3.7회, KBS1 0.7회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영 방송이 공영 방송에 비해 폭력 묘사를 자주 노출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파 방송 3사의 경우 자체적으로 심의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방송 관계자들로 구성된 시청자위원회와 일반 시청자로 구성된 모니터링 요원들이 프로그램의 폭력적·선정적 요소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사후 심의를 통해 지상파 방송에 어울리지 않은 묘사를 한 프로그램에 대해 주의, 경고, 시청자에 대한 사과 등의 조치를 내린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의 경우 내·외부적으로 여러 단계의 심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방송에 부적합한 묘사를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2007년 총 3건 제재 받아…케이블TV는 더 심각

심의가 폭력 묘사의 수준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만 노출 횟수에 대해서까지 막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허용 가능한 수준의 묘사라고 해도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폐해에 대한 우려에서 지상파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연구팀의 이정교 교수는 “폭력 묘사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불안한 심리 상태를 줄어들게 해서 웬만한 것은 나쁜 게 아니라고 각인시키는 둔감화 현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송위의 평가심의국에 따르면 2007년 지상파 방송 부문에서 폭력성에 관련해 주의 이상의 제재를 받은 것은 총 3건이다. SBS의 드라마 <연인>(시청자에 대한 사과), <긴급출동 SOS 24>, MBC의 <생방송 오늘아침>(이상 주의)이 각각 한 차례씩 방송위의 제재를 받았다(<긴급출동 SOS 24>의 경우 생명의 존중 조항 위반이나 폭력성으로 인한 제재임으로 포함시켰음).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조명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이른바 ‘레스큐 프로그램’이다. 3건 중에서 2건이 ‘레스큐 프로그램’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긴급출동 SOS 24>를 통해 소개된 몇몇 사례들은 충격을 안겨주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지나친 장면이나 언행에 대해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지만 폭력 행위 자체가 감춰지지는 않는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극적인 폭력 장면을 계속해서 노출시킨다면 오히려 폭력의 재생산에 일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케이블TV의 경우 어린이 채널에서의 폭력 빈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 눈에 띈다. 어린이 채널은 시간당 55.5회의 폭력 장면을 노출시켜 영화 채널의 59.2회에 버금가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드라마 채널의 21.4회, 연예·오락·게임 채널의 16.4회에 비해서도 월등한 양이다. 폭력 장면 노출 횟수가 지상파의 4.5배에 이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케이블 방송에 대한 심의 규제는 지상파 방송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린이·청소년이 주 시청자인 채널에서의 폭력 빈도가 이렇듯 높게 나왔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린이 채널의 주요 콘텐츠는 애니메이션으로 그중에서 일본산인 저패니메이션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저패니메이션의 경우 청소년물에도 폭력적·선정적인 작품이 많다. 최근에는 <도라에몽> 같은 명랑·코믹물이나 <뽀롱뽀롱 뽀로로> <선물 공룡 디보>와 같은 아동용 국산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고 있어 <이누야사> 등의 판타지 폭력물이 많았던 이전보다 폭력 장면 노출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애니메이션 채널 챔프의 구본승 팀장은 “자체 심의 기구를 통해 장르, 폭력성, 눈높이 등을 감안해 등급을 매기고 있다. 편성에서도 15세 이상 등급 프로그램은 가족 시청 시간인 밤 10시 이전에는 편성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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