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주머니’ 차려고 증권사 사들이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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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 자통법 시행 앞두고 증권사 M&A 속속 나서…비자금 조성에 눈독 들일까 의심

 
오는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업계에 인수·합병(M&A)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최근 4개월 동안 인수 또는 합병 작업을 마쳤거나, 현재 진행 중인 곳만 20여 곳에 이를 정도다.
이 과정에서 웬만한 대기업 이름은 한 번씩 등장할 정도로 재벌 기업이나 중견 그룹의 증권업 진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7월 자통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만 해도 전문가들은 은행이나 증권업체가 M&A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통법 자체가 은행과 증권사 간 벽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글로벌 투자은행과의 경쟁을 위해 덩치 키우기가 불가피했다. 은행도 업무 중복에 따른 이탈 고객을 잡기 위해 어떻게든 증권사를 확보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재벌 기업들이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 구도에 속속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 2월 신흥증권(현 현대차IB증권)을 인수한 데 이어 현재 자산운용업 진출도 적극 검토 중이다. LS그룹의 경우는 그 반대다. 이 회사는 최근 인수한 델타투자자문을 LS자산운용으로 변경하기 위한 예비 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증권을 인수했다.
두산그룹도 최근 자회사인 두산캐피탈을 통해 위탁매매 중개사인 BNG증권중개를 인수했고, 현대중공업도 CJ투자증권에 대한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후 현재 실사를 벌이고 있다.
이밖에 롯데그룹이 최근 한양증권을 인수한다는 설이 나돌면서 관련주가 요동을 쳤다. 지난 1월 서울증권을 인수해 화제를 모았던 유진그룹 역시 교보증권 추가 인수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현재 관련 소문을 일축하고 있다. 유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공시를 통해 인수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지금 인수 발표를 하게 되면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된다”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도 증권사 인수 의향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CJ투자증권 인수 후보로 증권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인수 불가’ 방침을 밝혀왔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증권가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공시를 낸 지 3개월 이내에 번복하면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된다. 유진그룹의 경우 이미 3개월 제한이 풀린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귀띔했다.새로 증권사를 설립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STX그룹은 최근 STX팬오션이 100% 자본을 출자한 ‘STX투자증권’(가칭) 설립을 위해 금융감독원에 예비 신청서를 제출했다. GS건설, KTB네트워크, LIG손해보험, 씨티은행, 기업은행 등도 현재 증권사 신규 설립을 신청한 상태다. 이렇듯 재벌 기업의 증권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들이 증권업에 진출하는 데는 증권사가 그룹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금감원의 대기업 조사설도 빠르게 확산돼

증권사 자체적으로 각종 회사채나 증권 등을 발행할 수 있어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여기에다 자통법 통과로 증권사에서도 예금 유치가 가능해졌다. 그룹 임직원의 월급 계좌만 운영해도 기본 수익은 건지는 셈이다. 대규모 인수·합병 때는 증권사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이점을 노려 향후 기업들의 증권사 인수나 신규 설립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 공개한 자통법 시행령 제정안을 통해 5억원만 있으면 전문 투자자 상대의 위탁매매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증권업 진출은 업계의 경쟁과 구조 조정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급증하고 있는 증권사 신규 설립은 증권사 인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어 M&A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삼성 특검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재벌 그룹이 소유한 증권사들이 자칫 그룹의 비자금 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증권업에 진출한 한 그룹의 경우 현재 금감원에 내부 투서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증권사 인수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 기업에 대한 조사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사 의뢰를 받은 후 증권선물거래소에 이첩해 사전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추이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증권사 난립에 따른 과당 경쟁도 우려되고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자본 시장 활성화에 따른 마케팅 강화로 광고 심의 건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5년 7백94건에서 2006년 1천46건, 2007년 1회장천8백69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인력은 늘지 않아 심의가 형식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시장 선점을 위한 관련 업계 간 광고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허위 및 과장 광고도 남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사전 심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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