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연해주 큰 그림 그리고 있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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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화 국제농업개발원 원장 인터뷰/“남한 기술•북한 노동력•러시아 기반 시설 합쳐 시너지 효과 가능”

ⓒ시사저널 황문성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연해주 전문가’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연해주 식량기지’에 대해 언급한 이후 부쩍 바빠졌다. 각종 방송 인터뷰에 출연하고 여기저기에서 강연 요청을 받고 있다. 그는 1988년 처음 연해주를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1백30회가 넘게 그곳을 찾았다. 아들은 10년째 연해주에 살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추진했던 연해주 프로젝트에는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일이 없다.
이원장은 “누구보다 연해주를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에 연해주 진출이 더 구체화할 것으로 본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 5월20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안에 있는 국제농업개발원 사무실에서 만난 이원장은 “정부가 직접 진출하려고 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주고 민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라고 조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해주 식량기지’ 발언을 했다.
- 연해주와 관련해 제일 많이 알고 있고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현대건설이 시베리아 벌목 사업을 벌일 때 총사령관이었다. 연해주 농장을 다 보고 북한 벌목공들이 일하는 것도 보았다. 도사이기 때문에 연해주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안다. 그의 발언은 단순히 연해주를 식량기지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끌어들여 남한·북한·러시아가 식량뿐 아니라 에너지 개발이나 철도 건설 등에서 협력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연해주에 농사를 지을 만큼 현지 시설이 잘 되어 있나?

- 기가 막히게 되어 있다.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구글에서 보면 논뙈기가 나온다. 하나에 3만평인 논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세밀하게 설계했다. 미국도 이렇게 안 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가 북한, 시리아, 라오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네팔 등 공산주의 국가들을 도와주었다. 미국이 한국 등을 도운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나라 국민은 빵을 먹는 국민이 아니라 밥을 먹는 국민이니까 러시아가 연해주에 논을 만들어 쌀을 생산해 지원했다. 자기들이 먹으려고 개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와줬던 나라들이 살 만해지면서 지원할 필요가 없어진 1960년대 이후 땅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연해주에 많이 진출했나?
- 그동안 고합그룹, 남양알로에, LG상사, 가우디, 천주교본당, 새마을운동본부, 대순진리회, 제주도 칠대농가(주), 농촌지도자중앙회, 국제농업개발원 현지 투자회사 등이 진출했다. 개인 기업가들이 확보한 농장들도 있다. 일부는 실패했다. 최근에는 삼성의 휴대전화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인 인탑스가 진출했다. 현대중공업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아직 정부 차원에서는 연해주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관료들 가운데) 미국 박사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돈만 주면 곡물은 언제든 사올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그런데 지금 봐라. 못 사오고 있지 않나. 곡물값은 계속 오르는데. 또 냄비 현상도 있다. 지금은 곡물값이 오르니까 연해주 운운하지만 값이 떨어지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관심이 사라진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단임제인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 집권 1년을 지나면 주변 사람들이 자기 먹을 것을 챙기다 보니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제도가 안 되어 있고 담당 공무원들이 자꾸 바뀐다. 국회의원들도 개인은 똑똑한데 국회에 들어가면 전문가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멍청해서 한 우물 파니까 전문가가 된 것이다.


연해주가 매력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 러시아의 기반 시설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 수송이 가능하고 기후적으로 벼농사와 콩·밀·감자 재배 최적지다. 이미 한국 기업들이 제주도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땅을 구입하거나 계약해두었다. 시설만 업그레이드하면 도로, 창고, 철도 체계, 수리 시설 등에서 나무랄 곳이 없다. 이미 김대중 정권 때 이곳에서 생산한 벼를 28차례나 북한에 보낸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보면 정부에서 연해주 진출에 소극적이지 않았나?
- 농림수산식품부를 빼면 다른 곳은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다. 생산비와 수출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연해주 진출과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가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 기술 전수를 생각할 수 있는데 현지 기술이 더 낫다. 외교통상부는 자기 일이라며 적극적이다. 공무원들이 연해주 실상에 대해 잘 모른다. 보통 러시아가 민주주의 시장 경제의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다만 겨울에 순간적으로 얼어버리는 것이 연해주의 단점이다. 길면 18일, 짧으면 10일 만에 수확을 다해야 한다. 수많은 기계가 그때 후다닥 들어가야 한다. 시기가 짧으니 서로 빌려서 쓸 수가 없다. 2천만평 농장을 운영하려면 농기계 준비하는 데만 40억원이 들어간다.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면 외교통상부나 기획재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 외교통상부가 생산자 증명을 해주고 기획재정부가 돈을 빌려주는 식이면 될 것이다. 확실히 땅을 임차했다는 것이 증명되면 기획재정부가 국책 은행을 통해 지원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농기계도 사고 담보물도 확보할 수 있다.


연해주 진출이 한국의 식량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 하나?

- 연해주에서 생산되는 콩과 밀만으로도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세금이다. 연해주에서 콩을 심어 수확해 국내로 들여왔으면 자기 나라 사람이 자기 자본과 토지에서 생산한 것인 만큼 소비자가 사온 신고 가격이 아니라 생산자 가격으로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반기로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 때 연해주 문제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있나?

- 러시아는 농업특구를 원한다. 러시아 주민들도 먹고살고 우리도 식량을 확보하는 공동의 과제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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