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개 끌고 돌아온 황우석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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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팀이 실패한 프로젝트 성공시켜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

ⓒ연합뉴스
지난 5월21일 미국 뉴욕 타임스는 “미국 연구진이 10년 전부터 시도하다 실패한 개 복제 프로젝트에 황우석 박사팀이 성공했다”라고 보도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지난해 12월과 올 2월에 걸쳐 애완견 ‘미씨’의 복제 개들인 ‘미라’와 ‘친구’ ‘사랑’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미국 ABC 방송도 생방송으로 이런 사실을 보도했고, 이는 즉시 외신을 타고 국내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황우석’이라는 이름이 다시 화제에 오르내리면서 그의 그간 행보와 앞으로의 계획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현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5월26일에도 재판에 참석했다. 황 전 교수의 한 측근은 “황 전 교수는 외국에 머무르면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재판이 있을 때만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언론과는 앞으로도 접촉하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2006년 4월 서울대에서 파면된 뒤 물밑 연구 활동에 몰두했던 황 전 교수가 복제 개의 상업화라는 성과를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바이오아트 사는 오는 6월18일부터 황 전 교수가 복제한 개 세 마리를 최초 가격 10만 달러에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우리 돈으로 1억원에 달하는 큰돈으로 개값치고는 엄청나다. 황 전 교수가 개를 복제해주는 대가로 이 회사로부터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황 전 교수가 H Bion이라는 법인까지 만들어 상업화의 길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 회사의 주주들은 박병수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이사장 등 그동안 황 전 교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는 황 전 교수가 직접 맡았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주변에서 직접 대표를 맡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황 전 교수가 ‘그것이 정직한 모습이다’며 대표를 맡겠다고 했다”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한 측근은 “황 전 교수가 돈을 버는 일에 나설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라고 설명했다. 2007년 7월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바이오아트 사가 연락을 해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린스턴 대학 영문과를 나온 이 회사 사장 루 호손과 베이징 대학을 나와 이 회사 기술이사를 맡고 있는 완지 박사 그리고 평소 황 전 교수와 친분이 깊은 이 회사 수석 과학자인 신태영 박사가 한국에 왔다.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서울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신박사는 1998년 미국 텍사스 A&M 대학 웨스츄신 교수가 ‘미씨 복제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복제 실험 담당자로 합류한 복제 전문가다. 세계 최초의 복제 고양이인 CC(Copy Cat)를 탄생시켜 그 내용이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다.

▲ ⓒ시사저널 소종섭
바이오아트 사 관계자들은 이때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 시설과 연구 현장을 둘러보았다. 연구원측은 “실험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라는 요청에 녹음·녹화·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들에게 복제 개와 관련한 실험의 전 과정을 참관하도록 했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난자를 채취하는 등 전 과정을 황 전 교수가 직접 시행했다. 이들은 그가 연구 일선에서 직접 실험을 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바이오아트 사측은 그해 8월1일 팔레스 호텔에서 연구원측과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황박사, 복제 상업화 많이 망설였다”

바이오아트 사와 황 전 교수의 만남에는 양측의 상황이 맞아떨어져 급진전된 측면이 있다. 1997년 보더 콜리 종과 시베리안 허스키 종의 혼혈종인 애완견 ‘미씨’를 복제하기 위해 미국 아폴로그룹 회장이자 제네틱 세이빙스앤 클론 회사 설립자인 존 스펄링 박사는 3백70만 달러를 텍사스 A&M 대학에 기부해 복제 연구를 하게 했다. 그러나 이 대학 과학자들이 복제에 실패하면서 미씨가 살아 있을 때 복제를 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 존 스펄링 박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2년 7월 미씨는 열다섯 살로 죽었다. 미씨의 세포는 동결되어 은행에 보관되었다. 이번에 황 전 교수에게 미씨 복제를 의뢰한 바이오아트 사 사장 루 호손은 존 스펄링 박사와 함께 미씨의 장례식을 계획했던 조앤 호손의 아들이다.

미국에서 복제에 실패해 낙담해 있던 바이오아트 사가 황 전 교수에게 미씨 복제를 의뢰할 때쯤 황 전 교수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밀려왔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 박병수 이사장이 열심히 도왔으나 역부족인 측면이 있었다. 황 전 교수의 한 측근은 “황 전 교수는 당시 아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어렵게 돈을 마련하는 상황이었고 그마저 한계에 다다르는 시점이었다. 일부 돕겠다는 기업이 있었으나 그들은 모든 권한을 자신들이 행사하기를 원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그가 서울대에서 파면될 당시 그를 따라 나온 연구원은 20여 명이었다. 지금은 35명으로 늘었다. 연구비는 물론 이들을 챙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황 전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H Bion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 몸담고 있으면 상업적인 일에 종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엄청난 고민을 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당시 그를 만났다는 한 사업가는 “그는 자신이 상업적인 일에 나서는 것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람들이 미국 기업과 손잡는 것을 어떻게 볼지 등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측은 “H Bion 사는 건실한 기반이 구축되고 수익 모델이 창출되어 국제적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상장하거나 다른 회사와 연계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만 전념할 것이다. 수암연구원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뿐 아니라 기금을 조성해 과학 인력을 양성하고 희귀 멸종 동물의 종 보존 연구 등에 돈을 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벌어들인 돈을 황우석 개인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과학 발전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황 전 교수는 여전히 체세포 복제 배아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는 신념이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은 그 길로 가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록 상업적이기는 하지만 황 전 교수가 국제적으로 주목되는 연구 성과를 냄으로써 그의 연구 재개를 주장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4월14일 “심의에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이유로 황박사의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 계획’ 승인을 보류한 바 있는데 향후 이 문제의 결론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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