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개혁, 대통령 지지도 봐가며 할 일 아니다
  •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 교수) ()
  • 승인 2008.07.01 14: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공 기관ㆍ준 정부 기관의 방만 경영, 도를 넘어서고 있어…피나는 구조 조정으로 부채 줄이고 생산성 높여야
이명박 정부가 대선과 총선의 압승을 기반으로 해 야심차게 추진하려던 개혁 과제들이 촛불로 인해 급격하게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임기 초반에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자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혁명하듯이 해서는 안 되고 단계적이고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라는 소리가 나왔고, 마침내 가스·전기·수도·건강보험을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공기업 개혁은 제대로 추진되어야 하며 엄정한 진단 하에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대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인력 늘고 부채도 늘고…개혁 더 미루면 국가 경쟁력 상실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부가 주인의 대리인으로 공기업의 성과를 따져본 ‘2007년도 경영 실적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공공 기관들의 방만 경영, 과도한 인건비 상승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준 정부 기관 77개 중 32개 기관이 정부의 인건비 인상률 지침을 어겼는가 하면,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거나 사업 추진 실적이 미미한 곳도 많았고, 법인카드를 유흥 경비나 골프 접대, 상품권 구매 등에 사용한 기관도 있었다. 공기업과 준 정부 기관 모두 전년에 비해 경영 실적이 악화되었고, 해당 기관장에 대한 평가 결과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1백1개 공기업과 준 정부 기관의 인력은 8.4%(1만2천여 명) 증가했고, 부채도 1백9조원에서 1백50조원으로 38%나 늘어났다. 주로 공공 기관의 과도한 인력 증가, 무리한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그리고 자회사 신설 등이 지적받고 있다.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공공 기관의 인력 증가 규모가 국민연금관리공단 2천7백85명(69.5% 증가), 대한주택공사 1천5백99명(49.4% 증가), 한국토지공사 9백92명(46.7% 증가)으로 나타났다. 거꾸로 공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크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정부 지원금은 34조원에서 48조8천억원으로 44% 증가했다. 비대해진 공기업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운 셈이다. 한국토지공사 7조3백44억원(39,519% 증가), 대한주택공사 2조4천8백4억원(91.5% 증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 2조1천47억원(48.1% 증가)에 이른다. 또한 같은 기간 부채 증가액은 대한주택공사 21조1천6백21억원(2백16.7% 증가), 한국토지공사 8조3천6백77억원(75.2% 증가), 한국도로공사 2조9천6백19억원(21.4% 증가) 등으로 나타났다. 피나는 구조 조정으로 부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 민간 기업과 대조적이다.

ⓒ연합뉴스

그동안 수없이 공기업 개혁을 외쳤지만 개선될 조짐은 찾기 어렵다. 1968년 이후 실시된 여섯 차례의 공기업 수술 작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만 부분적인 성과를 냈을 뿐이다. 공기업의 생존 본능은 대단하며 그동안 반복된 어설픈 수술이 결국 내성만 키운 꼴이라는 진단이다. 따라서 국민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집권 초기부터 강력하게 공기업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문을 했었다.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부터 우정성 개혁을 추진했지만 우정성은 고이즈미 총리가 물러난 뒤에야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1979년 취임하자마자 진행된 영국 대처 전 총리의 공기업 개혁도 1990년대 들어서야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도 임기 내에 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경제에서 공기업, 공단, 산하 기관 등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GDP의 절반에 달하고 공기업 주요 사업의 대부분이 에너지, 통신, 사회기반시설 등과 같이 민간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사업 분야라는 점에서 공기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국가 경쟁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되기 때문에 공기업 개혁은 미루어서는 안 된다.

또, 공기업 개혁을 관료의 손에만 맡겨놔서는 안 된다. 사회 안전망 구축을 빌미로 공공 부문을 확대해왔고, 정작 퇴직 관료들과 공기업 임직원의 안전망만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기업 개혁은 노조와 관료집단 양쪽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정권 초기에 대통령이 압도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작심하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미 MB 정부는 이러한 좋은 환경은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처음에 구상했던 충격 요법보다는 낙하산 인사 근절과 구조 조정 등의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점진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공익’ 가면 쓰고 온갖 혜택 누리며 고비용 저수익의 비효율에 싸여

공기업이 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가는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내부 요인 즉 조직 문화 측면을 살펴보면 첫째, 대다수 공기업이 이윤 이외의 계량화하기 곤란한 경제외적인 목적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고 의사 결정 과정이 성과보다는 공익을 명분으로 정치적 고려가 가해지며 낮은 경영 성과를 공익 보호의 결과로 돌린다. 둘째, 공조직은 성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 창의성과 자율이 존중되는 풍토보다 연공 서열과 순환 보직의 원리가 지배적이다. 대체로 조직이 비대하고 관료화되기 쉬우며 인력 과잉의 특징을 지닌다. 셋째, 공기업 임원 선임에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니라 대선의 전리품 또는 나눠먹기 파티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정치적 고려에 의한 임원의 선임 그리고 경영진의 보수와 임기가 성과와 무관한 문제가 있다.

외부 요인으로는 기업 환경이 도산의 위험이 전혀 없다는 점과 적자를 요금 인상이나 정부 보조로 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 공기업 임원 보수가 ‘신이 부러워하는’ 수준인 것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둘째, 이윤극대화 이외에 정치적 효과, 이익집단의 반응, 지역의 안배 등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많다. 셋째, 설립 근거법에 의해 사업 영역이 제한되어 있고, 경영 의사 결정에 정부의 사전적 통제와 간섭이 과도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는 문제가 있다. 넷째, 다수의 공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 경쟁과 퇴출의 압력에서 자유로우며 고비용 저수익의 생산 구조 등 비효율에 싸여 있다.

물론 민영화가 만병통치는 아니며 민간 기업 중에도 공기업과 유사한 형태의 비효율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고, 경쟁 도입이 어려운 경우 소유권을 민간에게 넘기는 것만으로 경영 성과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포스코, KT 등 공기업 민영화의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고, 소비자의 후생도 유지되는 선례에 주목해야 한다.

공기업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기업 경영을 독립시키고 예산 제약의 연성화를 극복하며 공익성은 정부와의 투명한 계약을 통해 달성하고 전문 경영인을 임용하는 인사권의 독립을 통한 자율 책임 경영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아울러 퇴출 가능성을 확보하고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시장 경쟁 도입을 확대해야 한다. 공익은 공기업이 아니라도 보호할 수 있으므로 민영화의 실익이 큰 사업의 경우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구조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OECD 등에서 권장하는 공공 기관의 기업 지배 구조 개선에도 주목해야 한다. 감독기능의 이원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공공기관의 경영자율성 보장을 위한 노력, 비상임 이사와 감사의 경영 견제 역할 강화를 위한 여건 조성,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내 민간 위원의 역할 강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 등의 과제도 시급히 보완되어야 한다. 공기업 개혁은 강하게 빠르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