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제대로 밟았는데 뜨긴 뜨려나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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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전문가들 “지금이 확실한 저점, 내년쯤에야 반등할 것”…외국인 투자자 매도 사태에는 “한국 경제 상황과 무관”
ⓒ증권업협회 제공


지난 7월9일 LG디스플레이의 2분기 실적 발표에 증시의 이목이 쏠렸다. 곤두박질하고 있는 장세에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LG디스플레이는 장이 마감된 뒤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공시했지만 오히려 다음날 주가가 내려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LG디스플레이의 실적 발표가 나오자 ‘2분기를 정점으로 액정표시장치 업체들의 실적 호조 행진이 막을 내릴 것’이라는 요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실적은 좋지만 향후 전망이 이전보다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7월 중순까지 이어질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는 국내 증시의 기사회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의 실적 발표가 있던 다음 날인 7월10일 코스피지수는 한때 1천5백선이 붕괴되었다가 연기금 개입으로 전날 종가보다 1% 이상 상승했다. 결국 호재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7월10일 증권업협회 주최로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이 모인 간담회에서는 바닥론이 나왔다. 모임이 끝난 뒤 증권업협회는 “현재 주당수익률이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국내 주식시장은 이른 시기에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현 장세가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 훼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외 변수와 외국인의 매도세에 의한 것이니 만큼 투자자들에게 ‘불안해하지는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최근 국내 증시 폭락의 주범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목되고 있다. 증권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매도한 금액은 24조7천억원인데 올해는 벌써 19조2천억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한때 국내 주식의 40% 정도를 갖고 있던 외국인 지분 규모가 30% 선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시아 증시에서 외국인들의 순매도 규모는 한국 시장이 가장 큰 1백90억 달러였다. 인도(67억 달러)나 타이완(39억 달러) 증시에서의 순매도 규모보다 한국 시장에서의 순매도 규모가 훨씬 더 큰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왜 이렇게 주식을 팔아치워 폭락 장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일까. 제로인투자자문의 정은호 대표는 “외국인이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국내 주식을 매도했다는 것은 국내 시장의 유동성이 매우 풍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국내 증시에 탄탄한 수요 기반이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형주를 중심으로 언제든지 현금화해서 떠나기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펀드 자금과 늘어가는 연기금의 주식 투자 규모 등은 증시의 안전판이자 외국인의 매도를 받아주는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유입 자금 꾸준히 늘어 증시 기초 체력은 양호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펀드들은 자국의 불투명한 경제 상황 때문에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아시아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하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대규모 대손 상각을 위해 현금 확보에 나섰고 이는 신흥 시장에 투자했던 투자금의 환매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유독 환매가 많은 것은 글로벌 증시가 사상 최고 수준을 달리던 지난해 10월 이후 긴 조정을 거치면서도 한국 증시의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적어 여전히 양호한 수익률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가 비관적이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 주요국 증시의 하락률을 비교해보면 더 분명해진다. 지난해 말과 7월9일을 기준으로 아시아 주요국 증시의 하락률을 비교해보면 한국 증시의 하락률은 17.14%로 홍콩의 항셍지수(-21.60%), 상하이 종합지수(-44.49%)보다 낮고 타이완의 가권지수 하락률(17.14%)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증시의 바닥은 어디일까. 대다수 투자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바닥선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언제부터 상승장으로 바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원자재난과 고유가 현상 등 외부 리스크가 언제 제거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증시 전문가 중 대표적인 신중론자로 꼽히는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이 바닥이기는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현 주가 수준이 기업 가치에 비해 싼 것은 분명하지만 더 빠질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원자재 시장이 안정이 되어야 증시 상승장도 가능하다. 2009년 하반기에나 가야 본격적인 상승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 연말까지 국내 증시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연말까지 1천5백~1천7백선에서 횡보할 것이고 내년 상반기 역시 어렵고 내년 하반기에 가야 좀 호전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하반기에 그가 지목한 꼭지점은 1천7백15 포인트였다.

또 다른 신중론자인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는 지금이 바닥이고 더 이상 크게 하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올해 증시는 주저앉는 장세이고 내년에는 횡보하리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는 “코스피지수도 1천5백선을 지지선 삼아서 크게 벗어날 일이 없이 횡보할 것이다. 4분기에 1천8백선을 넘볼 가능성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두 신중론자가 증시 바닥이 1천5백선이라는 데 대충 동의한 셈이다. 문제는 언제 반등하냐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본격적인 반등 시점을 2009년으로 지목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대형 우량주 중심 투자가 바람직…중국 수혜주도 다시 보자”

증권업협회의 간담회에서는 ‘현재의 국내 증시 상황을 국내 기업의 펀더멘털이 반영되지 않은 과매도 국면’이라고 표현했다. 고유가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글로벌 유동성 긴축에 대비한 외국인의 이머징마켓 주식 매도 등 ‘대외 악재’에도 올해 들어 증시 자금이 11조4천억원이나 증가하는 등 국내 주식 시장의 기본 체력과 조건은 여전히 우량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증권업협회에서는 늦어도 올해 4분기부터 국내 증시가 상승 기류를 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런 침체장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어떤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할까. 증권가에서는 코스피지수 1천5백선이 바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2분기부터 나왔다. 현재의 대표적인 증시 비관론자도 바닥선을 1천4백50선으로 보고 있다. 거의 바닥에 근접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김학주 센터장은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나 국민은행 등 국내 증시의 대표적인 블루칩들이 이번 폭락 증시에서 주가가 많이 빠져 있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진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외국인들의 투자가 집중됐던 대형 우량주가 외국인의 매도 공세로 낙폭이 상당히 컸지만 기업의 본질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이들 대형주들은 외국인 매도에 의해 이미 주가가 빠질만큼 빠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오르면 올랐지 더 빠지지는 않는 주식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로인투자자문의 정은호 대표는 “하락장에서는 중소형 우량주가 외부 변수에 크게 휘둘리지 않지만 상승장에서는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투자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최근 급락한 포스코나 현대중공업 등의 중국 수혜주나 유가 폭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주 등의 경우 유가 급등세만 진정된다면 다시 오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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