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에게도 박수를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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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면 자극적인 제목에 혹해 ‘낚이는’ 경우가 꽤 있다. 방송을 보면서도 종종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최고의 메이저 골프대회 ‘디 오픈’에서도 그랬다. ‘탱크’ 최경주가 출전해 우승 문턱에 다가섰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밤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해 중계방송을 시청했으나 결과는 허망했다. 뒷심 부족으로 어이 없이 무너져가는 최경주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놓쳐버린 잠에 대한 ‘본전’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 한편으로는 ‘최경주가 메이저 대회 최초 우승을 달성한다 한들 내게 무슨 득이 있어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눈은 끝까지 TV에서 떠나지 못했다. 역시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베이징올림픽을 보면서도, 개인들의 기량을 겨루는 취지로 시작된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출신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꼭 응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에 사로잡히지만 눈은 자석에 끌린 듯이 자동으로 TV 화면에 매달린다. 누가 금메달이라도 따면 내 일처럼 반갑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국민이 또 다른 국민의 선전을 바라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고 뿌듯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애정과 응원에도 ‘절도(節度)’는 필요하다. 선수들에게 쏠린 관심이 지나치면 자칫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올림픽에 참가한 대표 선수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했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표팀의 한 코치는 “메달을 따지 못하면 평소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았구나 하는 질책을 받을까 봐 두렵다”라는 말로 중압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박태환이 수영 자유형 400m에서 뒤로 밀리고, 남녀 양궁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대회가 열리기 전에나 유효한 ‘립서비스’일 뿐이다. 일단 메달 목표, 종합순위 목표가 세워지면 딸 메달은 따야 하고 이길 경기는 이겨야 한다. 정부와 언론이 앞장서 그것을 압박하는 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은메달을 따고도 서러워 운다. 유도 영웅 다니 료코가 동메달을 따온 데 대해 ‘쓰레기’를 가져왔다는 비난까지 일었다는 일본의 사례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또 다른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의 눈물보다 정상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은 왕기춘의 눈물이 더 뭉클하고, 그 눈물들보다 중국 국민까지 감동시킨 ‘미스터 스마일’ 이배영의 미소가 더 가슴을 적시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은 패배가 아니다. 노메달의 치욕도 아니다. 승패에 집착하는 마음과 패자를 영원히 패자로 남게 만드는 ‘승자 프렌들리’ 사회가 창피할 따름이다. 4년마다 찾아오는 개기월식 같은 올림픽이 폐막과 함께 금세 잊혀지듯 이번 올림픽의 많은 실패자들도 빠르게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격려와 배려는 여전히 빈곤하다.

베이징에 간 2백67명의 ‘대한민국’들이여, 금메달이든 노메달이든 정정당당하게 싸웠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지난 4년간 흘린 땀만으로도 그대들은 이미 당당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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