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초 기록 단축, 과학이 한다
  • 송홍선 (체육과학연구원·수영 담당) ()
  • 승인 2008.08.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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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능력 극대화시켜 최상의 결과 만들어내…박태환ᆞ펠프스도 철저하게 관리받아
▲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선수가 베이징올림픽 수영 400m 계주에 참가해 역영하고 있다. ⓒ신화통신
이번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은 마이클 펠프스(23·미국)다. 펠프스는 개인 혼영 400m를 비롯해 8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마크 스피츠(미국)가 작성한 7관왕 기록을 넘어섰다. 게다가 접영 100m를 빼곤 모두 세계 신기록이다.

이런 펠프스의 승리 뒤에는 스포츠 과학이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과학은 개인이나 집단의 운동 능력과 효율을 극대화해 최상의 운동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스포츠 과학을 접목하는 입장에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보다, 현장 훈련 중에 과학적인 방법을 정립하는 것들만으로도 벅차다.

펠프스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순위보다는 기록 경신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가 이미 세계 최강이었기 때문에 세계 기록만 경신하면 자연히 금메달은 따라오는 것이었다. 11세 때부터 펠프스를 지도한 밥 바우만 코치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펠프스가 언젠가 세계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발목이 가늘고,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히프가 적고, 허리가 가늘고 약간 마른 듯한 체형을 가진 선수가 수영에 유리하다고 한다. 펠프스 선수의 체형이 바로 그런 전형적인 예다. 또한 단거리 선수에게 유리한 큰 키(1백93cm), 큰 발(35cm)이 킥동작으로 추진력을 내기 좋고, 긴 팔(양팔 벌린 길이 2백3cm)로 스트로크(팔 휘젓기)시 힘을 내기 유리한 신체적 조건이다. 또 펠프스는 서양 사람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하체가 짧고 상체가 긴 체형이다. 상체는 하체보다 폐나 심장, 장기 등에 산소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어 부력을 좌우한다.

펠프스, 순위보다 기록에 더 신경 써

이런 개인이 가진 타고난 체격과 기질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성장 단계별로 타고난 선천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밥 바우먼 코치가 강조하는 수영의 기초는 유산소 능력이다. 생리학자인 밥 바우면 코치의 지도 아래 펠프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지구력과 젖산 내성, 즉 참을성을 최대한으로 발달시켰다고 볼 수 있다.

지구력의 기본 요소가 되고 회복력의 근원이 되는 폐활량이 8천5백cc로, 박태환 선수보다 1천5백cc가 많다. 성장기에 훈련을 통해 유산소 능력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펠프스가 유별난 스피드와 파워를 타고난 면도 있지만, 8kg짜리 납 벨트를 차고 킥력을 키우는 등 과학적인 처방을 통해 그 능력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펠프스와 같이 신체적 능력을 타고난 세계적인 선수일지라도 그를 자만하지 않게 하고 끊임없는 목표 설정을 통해 세계 신기록과 올림픽에서의 8관왕 달성을 이룩하도록 한 지도력은 더 많은 찬사를 듣기에 충분하다.

수영 단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돌핀킥이다. 50m 수영장에서 잠영은 15m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100m 경기라면 거의 30m를 잠영으로 수영한다. 잠영에서 돌핀킥의 속도는 일반적으로 킥에 의한 속도보다 1.4배가 빠르다. 200m에서 박태환 선수와 펠프스 선수의 기록 차이는 이 돌핀킥 잠영에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박태환 선수도 스포츠 과학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케이스다. 박선수를 지도한 노민상 감독은 0.001초라도 박태환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고 배우려고 한 현장의 과학자다.

수영의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저항이 적은 영법이 중요하다. 아무리 힘이 좋은 선수일지라도 영법이 좋지 않으면 기록 단축에 한계가 있다. 수영에서 힘을 쓰면 쓸수록 물의 저항은 두 배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박태환의 경우 오른쪽 스트로크시 저항이 많아 속도가 떨어지는 속도 곡선을 나타냈다. 또한, 장거리로 갈수록 좌우 호흡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동안 박태환은 오른쪽 호흡을 할 때 스트로크가 많아지고 속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괌 전지 훈련 2주째 측정한 결과를 통해 좌우 호흡에 따라 속도 차이가 없도록 수정했다. 스트로크 수는 30개로 왼쪽과 오른쪽이 같고, 50m의 구간 기록인 28초까지 평균 속도는 각각 1.60m/s와 1.65m/s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수영 분야의 신기록 행진에는 수영복도 한몫했다.

펠프스가 입은 수용복 ‘레이저 레이서(LZR Racer)’도 신기록 경신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레이저 레이서는 4~5% 정도 스피드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영복의 장점은 방수 소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물을 머금지 않은 상태가 되어 부력이 증가한다. 근육의 진동 감소, 신체 지각(proprioception)의 강화로 동작의 효율성과 정확성 증가, 운동복 탄성 그 자체가 근육을 지지해 동작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몰 부위의 마찰은 의도적으로 증가시키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의 부위는 최대한 마찰을 줄이도록 고안되어 있다. 훈련 효과와 더불어 수영복의 소재도 수영 기록 단축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박태환도 이번 대회에서 레이저 레이서를 입었다. 그는 2008년 4월 울산 동아대회 때 200m에서 전신 수용복을 착용하고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했었지만 “전신 수영복을 입으면 어깨쪽 근육의 움직임에 방해를 주고 물이 들어와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이후 박태환은 반신 수용복과 전신 수영복 사이에서 갈등했다.

▲ 베이징올림픽 수영 남자 200m 결승에 앞서 박태환 선수가 노상민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태환의 풀 동작은 세계적인 수준

지난 5월 괌 전지 훈련에서 박태환은 반신 수영복과 전신 수영복을 입고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신 수영복보다 반신 수영복을 입었을 때 기록이 6.6%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태환의 경우 부력이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반신 수영복만 입어도 물의 저항을 덜 받고 영법의 흐트러짐이 없이 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태환의 스트로크 동작은 더욱 정교해졌다. 단거리(100m 및 200m)에서는 돌핀킥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지만, 400m 이상 장거리 경기에서는 풀 동작이 중요하다.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물을 걷어낼 때 몸이 추진력을 얻기 때문이다. 팔 모양은 I에 가까울수록 좋다. 팔이 굽었을 때(S자)보다 스트로크를 빠르게 할 수 있으며, 깊은 물을 잡기 때문에 스트로크시 저항을 추진력으로 변환해 더 빠르게 수영할 수 있다. 물을 더 빠르고 깊게 걷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박태환의 풀 동작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본다. 돌핀킥(양발을 움츠렸다 위 아래로 물을 차는 것) 수위는 한층 깊어졌다. 박태환의 최고 라이벌인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턴 동작에서 세계 최고의 돌핀킥 기술을 구사한다. 그는 약 1m 깊이에서 15m 이상 치고 나온다. 얕은 곳에서 돌핀킥을 하면 잔물결이 생겨 몸에 저항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승부의 관건은 깊이다. 200m에서 펠프스와 겨루기 위해서는 돌핀킥에 대한 연구와 보완 훈련이 절실하다. 또한 다음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을 대비해 펠프스 선수처럼 자유형뿐만 아니라 접영, 평영, 배영, 혼영에도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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