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스타들아, ‘방송’ 조심하자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09.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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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장사에 휘둘려 이용만 당하다 ‘나락’… 경기력 지속만이 선수 수명 늘려

▲ 베이징올림픽에서 개최국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2위를 차지한 한국 선수단이 지난 8월2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난리가 났다. 사상 최대 금메달이다. 세계 7위씩이나(?) 했단다. 그 7위라는 것의 기준이 뭔지 애매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위대한 대한의 건아들! 자랑스러운 태극 전사! 13개의 금메달, 그리고 영광! 환호! 이것이 방송사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청률이다. 국민의 환호가 모이는 지점이 방송사에게는 시청률 대박의 황금 과녁이다. 이곳을 맞추면 텐, 텐, 텐. 만점 시청률이 나올것이다.

방송사에게 황금 시청률을 낳아줄 황금 거위들이 바로 올림픽의 태극 전사들이다. 이들을 잡으려는 올림픽 특수 ‘골드 러시’가 벌어지고 있다. 올림픽 스타들은 예능 섭외 0순위다. 대중이 원하므로 방송사는 공급한다. 그리고 시청률이라는 이익을 얻는다. 대중은 호기심 충족이라는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이것이 선수들에게도 이익일까?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경기력도 그렇게 얻어질 것이다. 하지만 연일 TV 카메라가 달려들고, 연예인들과 어울리면서 방송스타 대접을 받을 때, ‘1%의 영감’이야 사라지지 않겠지만 ‘99%의 노력’은 어떻게 될까?

마음이 붕 뜨면 묵묵히, 규칙적으로, 차분히, 고통을 감내하며 훈련을 해왔던 그 호흡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 결과 경기력에 차질이 생겨 차후 성적이 나빠질 때, 지금 떠받들어주는 방송사와 연예인들은 과연 어떤태도를 보일까? 냉정하게 등을 돌릴 것이다. 선수들은 그저 방송사의 시청률 장사, 연예인들의 올림픽 스타 마케팅에 이용된 꼴이다. 물론 100%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올림픽 스타들에 대한 관심이 과열될 경우 이럴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 선수의 인기는 당시 대단했다. 미디어의 총아였다. 국민적 신드롬 수준의 인기였다. 방송사가 달려들고 당대 최고의 스타가 강초현과 친분 관계를 맺으며 뉴스를 만들어냈다.

▲ kbs 남희석·최은경의 에 가족과 함께 출연 중인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 ⓒKBS 화면 캡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대중 매체들

강초현은 얼굴이 귀엽게 생겼다. 얼짱이었다. 방송사가 열광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랬던 강초현을 모두가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초현의 성적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강초현은 잊혀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강초현을 사랑하지 않았다. 얼짱 올림픽 스타이라는 것도 결국, 경기력이 받쳐주었을 때에만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경기력이라는 후광이 사라진 후의 운동선수의 외모는 그저 평범했다. 미디어가 더 열광할 이유가 없었다.

강초현은 전국체전 결선에서 꼴찌를 한 후“제발 저 좀 놔주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지도감독은 매체의 띄워주기가 훈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강초현은 자기를 놓아달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금메달을 계속 땄으면 어느 매체도 강초현을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고, 전국체전 정도에서도 미끌어진 이상 놓아달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곧 관심권에서 멀어질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매체와 연예인과 대중은 다음 메달리스트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그때 성적에 따라 환호가 이어진다. 하지만 인스턴트 환호일 뿐이다. 급조된 관심은 빨리 식는다.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비인기 종목에 환호를 보냈다가, 관심이 식으면 매체는 곧바로 철수하는데, 그 와중에 운동의 호흡을 잃은 선수들은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박태환 아버지 “아들, 예능 프로 출연 않는다”

운동 선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의 원천은 결국 경기력이다. 경기력이 흐트러진 운동 선수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과 매체와 연예인들은 혹시 자기들 때문에 선수가 흐트러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쉽게 잊어버리고 다음 선수를 찾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를 지킬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 것 같다.

박태환 선수의 아버지가 “태환이는 예능 프로그램에 일절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운동 선수가 운동이 아닌 일로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것이 그 이유다. 올림픽 후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박태환측의 냉정한 결단은 현명한 것이었다. 출연을 ‘일절’ 거부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선택일 수 있으나, 현재의 극단적인 열광 속에서는 차라리 중심을 잡아주는 결정이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이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의 냉정함이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방송사, 연예인, 대중은 운동 스타를 하늘높이 헹가레치다가 관심이 떨어지면 곧 돌아선다. 그때 땅바닥에 떨어진 선수의 피해는 오로지 그 자신의 몫이다. 처음부터 매체의 롤러코스터에 탑승을 거부하는 것이 현명하다.

박태환이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매체는 박태환에게 언제나 호의적일 것이고, 설사 지금 매체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하더라도 경기력을 잃는 순간 박태환은 잊혀진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박태환이 있을 곳은 열광적인 TV 연예 세계가 아닌 훈련장이어야 한다.

우리 방송계의 시청률 지상주의 풍토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항상 보던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비인기 종목이 있는데 왜 그 종목의 선수들은 올림픽 시즌에만, 그것도 금메달을 따야만 조명을 받을까? 방송사들은 우리 선수들 힘내라면서 선수단을 응원한다. 하지만 방송사가 진정으로 응원하는 대상이 우리 선수들일까, 아니면 자신의 시청률 실적과 매출액일까? 정말로 우리나라 체육계와 선수들을 응원할 생각이 있다면 평소에 관심을 보였어야 한다. 야구, 축구에 쏟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나눠주면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는 단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청률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응원이 될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연예인들도 그렇다. 강초현 때도 그랬고, 요즘 박태환에게도 최고의 스타 연예인이 이런저런 인연을 과시하고 있다. 그것이 선수를 위한 것일까, 연예인 자신을 위한 것일까? 이번 올림픽에도 연예인 응원단이 갔다. 올림픽 기간에 올림픽 스타들을 쫓아다니며 사진 찍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이후 국민 영웅이 되었던 황영조 선수는 쏟아지는 관심과 출연 요구에 일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매체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올림픽 스타들을 곶감 빼먹듯 소비할 뿐이다. 차분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경기력 향상을 돕는다면, 지속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생산해낼 수 있겠지만, 한 순간 과소비로 경기력에 피해가 가면 대중의 관심도 사라진다. 올림픽 스타라는 황금거위의 배를 가르는 셈이다.

선수들의 휩쓸리지 않는 절제심과 매체의 탐닉하지 않는 절제심이 요청된다. 세계 최고의 경기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과 인내를 요구할 것이다. 찰라적이고 화려한 방송계는 정반대의 세계다. 올림픽 스타들이 그런 세계의 방송자원으로 소비된다면 모두를 위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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