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은 재깍재깍 ‘관리’는 느릿느릿
  •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 감독) ()
  • 승인 2008.09.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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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확보에만 눈에 불 켜는 문화재청 보존한다며 ‘박제’ 만들지 말고 살아 있게 하라
▲ 서울시 청사 본관 뒤뜰에서 지하 상황실 철거 공사가 한창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실소를 금치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관인 것은 서울시와 문화재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서울시청 보존 문제다. 문화재를 지정하고 보존하는 일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두겁을 쓰고 이땅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우리 민족 정기를 드높이고 문화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높이는 일에는 인식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시가 구 시청사에 취한 행동을 나무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재청의 그간 행보가 그리 명료하지 않은 때문이다. 사실 문화재청이 근대 건축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제작된지 50년이 넘은 근대 미술품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미술사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함구로 일관하다가 마지못해 지난해 조사에 착수해서 그 결과가 나왔으나 그 이상 진전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유홍준 전 청장이 부임하면서 근대문화재에 주목하기 시작한 문화재청은 지금까지의 외면과 부진을 일거에 만회할 생각인지 행보를 무척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동산문화재에는 별로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서울시청이나 덕수궁 석조전 같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온 것도 특이하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청은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구 서울시 청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 전에 겸허하게 반성하는 모습부터 보여주어야 했다.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만 지정 이후에 과연 제대로 관리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지금 서울시와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문화재청은 자신들의 조직을 증식시키고 예산을 키우기 위해 문화재 지정에 열을 올린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올 초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온 국민이 설 연휴에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던 숭례문 화재 사건이 그것이다. 하지만 숭례문은 국민이 소망하는 것처럼 그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천년의 역사를 마감하면서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문화재 ‘녹여먹고 태워먹는’ 문화재청?

그런데 이런 예는 최근에만도 하나 둘이 아니다. 낙산사 화재 사건만 해도 그렇다. 천년 사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녹여먹고 태워먹는’문화재청이라는 지적이 그냥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에 대해 주인인 국민에게는 보호와 보존을 이유로 제대로 감상하고 손대는 것조차 펄쩍 뛰며 말리면서 임무를 망각한 채 자신들은 문화재 안에서 가스불로 고기 굽고 연회를 즐기는 일, 자신들의경영 마인드를 과시하기 위해 장소사용료 몇 푼에 눈이 멀어 화재 위험을 무릅쓰고 궁궐을 사극 드라마 촬영장으로 임대하는 일 같은 것들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최근에도 여전하다. 얼마 전 서울역사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았다가 코를 막아야 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서울역사 주변에서소변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서울역 에 방치되어 오물을 뒤집어쓴 채 그곳에 있었다. 이렇게 지정에는 열을 올리면서 관리는 엉망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재청이 미덥지 못한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문화재 지정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우선 국민에게 문화재를 진정으로 잘 관리하고 보존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부터 보여주어야 한다.

지정만 한다고 보존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지정 이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사계의 권위 있는 어른들로 구성된 문화재 위원들 뒤에 숨어 문화재 지정에 열을 올린다. 그렇지만 변변히 시원하게 문화재 관리를 잘한다는 신뢰를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 지정에 보이는 열정만큼 관리에도그만큼의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문화재 지정이 문화재청의 밥그릇을 위한, 자리 보존을 위한 부처 이기주의의 극치라는 오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국민에게 변변하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복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서둘러 복원 계획을 내놓기 바빴다. 게다가 이제는 복원 현장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고 있다. 책임은 남의 일이라 나 몰라라 하면서 복원은 자신들의 의무인 것처럼, 그리고 복원할 사람들은 자신들 외에는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스스로를 폄훼하면서까지 밥그릇 지키나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는 없다. 덕수궁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국회에서 전임 청장이 확약까지 한 일을 뒤집기 위해 “일개 과장이 합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폄훼하고, 문화재청 노동조합까지 나서석조전은 미술관으로 내놓을 수 없다고 성명까지 냈다. 하지만 정작 숭례문 화재 사건에 대해서 문화재청 직원들이 국민에게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거나 문화재청 소속원들이 성금을 거두어 복원비용에 보태기로 했다는 소식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접한 바 없다.

필자는 수 년 전 덕수궁 지하에 뮤지엄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지하철 서울 시청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뮤지엄이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의견은, 어떻게 문화재인 덕수궁 지하를 파려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그렇구나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러면 경복궁 지하에 있는 주차장은 무엇이며, 루브르가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지하를 파서 로비와 뮤지엄 샵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흐름에도 문화재지정과 보호가 문화재청의 전신인 일제 강점기 이왕가 재산 총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면 이는 분명 문제다. 그렇다. 이제라도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문화재를 밥그릇으로 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말이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답답한 것은 숭례문의 세부 도면을 가지고 대전에서 관계자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다행히도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았지만 도면이 도착할 즈음, 숭례문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말았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 또는 강원도에서 화재 사건이 나면 그때도 도면을 가지고 관계자가 갈 것인가. 숭례문 화재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도면이 일찍 도착했다면 소실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문화재청이 헬리콥터를 구입해야겠다는 예산을 요구할 근거만 만들어준 셈이다.

사실 문화재는 전통이며 지켜야 할 가치임에 분명하지만 진정으로 문화재를 보존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금지옥엽처럼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지키기만 하는 지금의 박제된 문화재로 갈 것인가 아니면 후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지방 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지방에 분산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문화재청은 청사만 대전에있었지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즈음에서 문화재의 지정과 보호·보존이라는 지금의 문화재청 업무를 그 문화재가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해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지역민들의 자긍심과 소속감 그리고 향토애를 살리는 중요한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방에 업무를 이양해준 이후 문화재청의 존재도 전향적으로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부 산하의 일개 국단위로 다시 복귀하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문화재는 중요하고 지켜야 할 민족의 자존심이지만, 문화재를 다룬다는 이유로 그 관계자들이 문화재 대접을 받으려는 태도는 버려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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