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너무 피곤해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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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 홍당무> <사과> <아내가 결혼했다> 사랑의 새로운 방정식 이끌어낼지 흥미로워

▲ (왼쪽부터)의 세 여주인공은 역할을 맡은 세 배우의 이미지만큼이나 다양한 사랑 공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가 잇달아 선보인다. 10월16일 개봉하는 <미쓰 홍당무>와 <사과>, 23일 개봉하는 <아내가 결혼했다>가 그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여성이 바라보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모습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비슷한 연령대인 이들이 풀어나가는 사랑 공식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공통점도 있다. 그녀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그녀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녀들에게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며 거쳐갈 수도, 무시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녀들은 상대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소통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엇갈린 소통 방식으로 빚어지는 오해와 강요는 이들의 사랑을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과 결혼 형태 다양하게 보여줘

<미쓰 홍당무>의 여주인공은 세 영화 중 가장 독특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안면홍조증’으로 남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는 건강염려증, 피해망상증, 집착 등 현대인에게 하나쯤 있을 만한 온갖 정신적인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이경미 감독의 설명처럼 여주인공인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기존의 어떤 영화의 주인공을 통해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미쓰 홍당무>의 여주인공은 세 영화 중 가장 독특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안면홍조증’으로 남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는 건강염려증, 피해망상증, 집착 등 현대인에게 하나쯤 있을 만한 온갖 정신적인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이경미 감독의 설명처럼 여주인공인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기존의 어떤 영화의 주인공을 통해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양미숙은 러시아어를 전공한 여자중학교 영어선생님이다.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지만 학교측이 러시아어 교사를 줄이면서 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밀어낸 후배 여교사는,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고등학교 은사이자 유부남인 같은 학교 선생님과 연인 관계이다. 그녀는 짝사랑남의 딸이자 자신의 제자인 여학생과 힘을 합쳐 둘의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적의 집에 들어가 동거를 시작하고, 짝사랑남의 아이디를 사칭해 연적과 음란 채팅을 하며, 연적의 이름을 도용해 짝사랑남의 부인이 운영하는 밸리댄스 교습소에서 그녀를 염탐하는 등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20대 여성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비상식적인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지언정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도 든다. 외모 콤플렉스로 자신감이 없는 여성이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기라는 점에서 심정적인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면 상대방의 행동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해 그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릇된 확신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녀는 일반인의 보편적인 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진정한 왕따이다. 그녀가, 짝사랑남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건이 소개되는 후반부는 그녀의 소통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과>는 다른 두 영화에 비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정은 7년 동안 연애하며 집안 식구들과도 함께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울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민석으로부터 “헤어지자.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라는 급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는다. 상실감에 빠진 현정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수룩한 순수남 상훈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1년쯤 후 옛사랑인 민석이 다시 시작하자며 찾아온다.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정의 선택까지가 이야기의 전부이다.

시나리오 위해 50여 명 커플과 인터뷰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현실에서의 사랑과 많이 닮아 있다. 배려와 이해라는 사랑의 기본 요소가 소통 방식으로 인한 오해를 만났을 때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관객들은 영화적 재미를 떠나서 영화의 에피소드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완성 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개봉했지만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실제 삶 속에서의 보편적인 사랑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강이관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50여 명의 실제 커플을 인터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인터뷰를 해보니 남녀 간에 말하는 것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많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세 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 사회에 결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아내가’ 나와의 결혼을 끝내지도 않고 다른 남자와 다시 한 번 ‘결혼했다’라는 제목이 내용의 파격을 그대로 나타낸다.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여주인공 인아는 덕훈과의 결혼을 유지하면서 사랑에 빠진 또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한다. 물론 두 남자의 동의 후에 벌인 일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6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박현욱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출판 당시에도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성과 비독점적 다자 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polyamory)’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출을 맡은 정윤수 감독은 전작인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서도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세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의 주체로서 관계를 이어가는 데 주도권을 잡고 있다. 남자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사랑 방식 안으로 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자유롭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소통 방식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데 거침이 없다.

세 여주인공의 사랑은 왕자님과의 사랑을 이루는 신데렐라 이야기만큼이나 보편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이 현대 여성의 심리 한 부분을 확실히 건드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들의 사랑 방식이 영화의 주 관객층인 20, 30대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사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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