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우리 시대의 영웅은 ‘김연아’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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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문화예술 분야 인사들이 상위권 형성…50위 안에 경제인은 안철수·이건희 둘뿐

▲ 김연아 ㅣ 피겨스케이트 선수. 불모지인 한국에 피겨스케이팅 열풍을 몰고 왔다.

우리 시대에 영웅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영웅도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 왕조 시대 영웅은 주로 군사적인 개념이었다. 치열하게 영토 다툼을 벌이며 ‘군사력이 힘’이었던 시대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생명을 부지하게 해주는 장수가 영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봉건 시대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던 근대 국가가 태동하는 시기에는 나라의 기본 틀을 갖추는 일이 중요했다. 나라를 세우고 체계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선 선구자들이 영웅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꼴이 만들어진 뒤에 등장한 산업화 시대에는 다시 그림이 바뀌었다. 경제 개발이 우선 순위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다원화된 민주 사회에서는 어떨까. 영웅 지형도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이들이 영웅이 되었다. 매스미디어의 힘이 영웅을 탄생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지형도는 이제 우리 사회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사저널>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정치·기업·법률·연예·스포츠 등 30개 분야의 전문가 1천5백명을 상대로 이 시대의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3백35명의 이름이 거론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웅관을 반영했다.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국민 요정’으로 불리는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진정한 영웅’ 1위로 꼽았다. 79명(5.3%)이 “김연아가 영웅이다”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박지성 축구선수, 연기자 문근영씨, 가수 김장훈씨, 노무현 전 대통령, 박태환 수영선수,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10위 안에 들었다. 문화예술·스포츠인이 다섯 명이고 정치인이 네 명, 종교인이 한 명이다. 평소 기부 활동과 봉사 활동을 많이 해 대중 스타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문근영·김장훈 씨가 ‘영웅’ 상위권에 오른 것은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와 나눔의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된다.



영웅을 탄생시키는 힘은 매스미디어

김연아·박지성·문근영·김장훈 씨 등이 상위권에 오른 데는 최근의 경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김연아·박지성이 맹활약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박세리 선수가 국민에게 힘을 주었던 것과 같다고나 할까. 또, 어려움을 같이 나누며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전문가들로 하여금 이미 이를 실천해 시대의 한 아이콘으로 떠오른 ‘문근영·김장훈’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예술 인사들의 강세는 11~20위에서도 이어졌다. 이 그룹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장미란 역도선수, 민노당 강기갑 의원, 신지애 골프선수, 소설가 이외수씨, 가수 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50위 안에 든 사람들을 살펴보니 문화예술계 인사가 18명, 스포츠인과 정치인이 각각 아홉 명이었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여주듯 최근 우리 사회에는 ‘김연아 신드롬’이 일고 있다. 12월10일자 중앙일보는 ‘김연아의 힘, 뉴스 시간도 뒤로 밀었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12월12~13일 진행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을 생중계하기 위해 SBS가 8시 뉴스 시간을 뒤로 미룬 것을 표현한 말이다. 지난 12월9일 새벽 4시에 김연아가 입국하는 인천공항 현장에 취재진과 팬 2백여 명이 몰린 것도 화제가 되었다.

출전하는 대회 입장권이 순식간에 동이 나고, 김연아가 즐겨듣는 클래식 음악을 모은 음반과 ‘김연아빵’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심지어 ‘김연아 화장법’까지 유행한다. 기업들은 광고 모델로 모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는 해맑은 얼굴에 뛰어난 패션 감각과 센스를 갖춘 김연아만한 ‘상품’이 등장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19일부터 12월4일까지 16일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가구를 방문해 1 대 1 면접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김연아는 ‘올해 한국을 빛낸 스포츠 선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김연아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흐름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웅 김연아’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전통적인 영웅관이 바뀌었다. 현대는 대중문화 시대이다. 과거에는 난세에서 나라를 구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본 반면 지금은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필요는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정치·사회 분야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만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또, 개인이 노력해서 인기를 얻고 이름을 날린 것인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영웅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지성은 꿈과 자부심의 상징

‘산소탱크’ 박지성 선수는 한국인의 투지를 상징한다. 무명 선수였던 그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맹활약한 뒤 유럽 무대에 진출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꿈’과 ‘자부심’의 상징이다. 김연아처럼 박지성 또한 모범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며 예의도 발라 안티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은 조금 세련되었지만 기본적으로 투박하면서도 정이 가는 얼굴은 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 무대를 휘젓는 대스타, 영웅이라기보다는 보듬어주고 싶은 동생, 의지하고 싶은 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은 ‘영웅 박지성’이 나온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티셔츠를 팔기 위해 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박지성은 자신의 노력으로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떤 클럽인가. 잉글랜드·포르투갈·불가리아에서 에이스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박지성은 이들과 경쟁하면서 출전 기회도 많이 얻고 맹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희망을 주는 데서 영웅의 모습을 본 것이다.”

박태환 선수는 김연아와 쌍벽을 이루며 ‘국민 남동생’으로 불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10위 안에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정치인도 네 명이 올라 있다. 5위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은 최근 형인 노건평씨가 검찰에 구속되는 등 곤혹스런 입장에 있지만 나름의 강력한 이미지와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가 그것을 보여준다. ‘친노 세력’이라고 통칭되는 정치 세력이 강력하게 지지하는 가운데 기존의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돈키호테 이미지’가 전문가들에게 ‘영웅’을 떠올리게 한 것 같다. 9위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으로 호남이라는 든든한 지역 기반이 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에 새 전기를 연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국제적인 인물이 되었다. ‘영원한 신부’ ‘영혼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은 ‘영웅’ 10위에 올랐다.

10위권 밖에서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이름이 눈에 띈다. 경제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예견했던 그의 글은 다음 카페 아고라에서 조회 수 수십만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평화의 전령사가 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한국 어린이들의 ‘큰 바위 얼굴’이 된 지 오래이다. 정도 경영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 시민사회의 리더로 흔들림 없는 위상을 갖고 있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도 많은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영웅’을 보는 시각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범주를 넘어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좀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년에 더 크게 활약할 것으로 기대되는 골프선수 신지애와 최근 텔레비전 등에 출연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소설가 이외수씨도 이름을 올렸다. 경제인 가운데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유일하게 20위에 올랐다. 50위까지 살펴보아도 안철수·이건희 외에 다른 경제인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김연아 선수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국이 김연아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김연아의 인기와 그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 직전이다. 지난 12월11일 개막된 2008-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가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려 김연아는 더더욱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었고 김연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분석한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김연아의 다양한 표정과 연기를 담은 사진들이 화보로 인터넷에 떠돌았다. 김연아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지방에서 관광버스로 올라온 팬들이 오전 6시부터 경기장 주변에서 장사진을 치는가 하면 지난 11월 개시된 인터넷 입장권 판매는 예매 시작 40분(2차분은 15분) 만에 매진되고 말았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김연아가 이토록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김연아의 귀국부터 대회 준비까지 밀착 취재하면서 그의 또 다른 면면을 살펴보았다.

설마 했다. 김연아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오전 3시45분에 귀국하는 출국장에 그렇게 많은 사람(취재진+팬들)이 모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3시. 인천공항 전용도로를 타고 공항 부근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대의 차량도 발견하지 못한 탓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국장을 향했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연아가 나오기로 되어 있는 게이트에 수많은 취재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플래카드와 응원판을 들고 김연아를 기다리는 팬클럽 회원들도 수십 명이 눈에 띄었다. 김연아가 나올 무렵에는 100여 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고, 당시 그 상황만으로는 오전 3시30분이 아닌 오후 3시30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맹훈련으로 부상에 대한 두려움 떨쳐내

놀란 것은 김연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표현대로 ‘방송 3사 카메라만 있을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게이트를 나오다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의 봉투를 받아들고 다시 안으로 뛰어들어간 김연아는 스폰서사의 로고가 박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인터뷰 전 가까이 서 있는 기자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올 줄 정말 몰랐다”라면서도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마에 청춘의 심볼인 여드름이 도드라져 보였지만 장시간 비행을 한 사람답지 않게 김연아는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매스컴과의 인터뷰 도중 김연아를 직접 보려고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한 할머니는 “실물이 훨씬 예쁘네. 근데 아가씨 손 한 번 만져보자”라며 김연아에게 다가가려 애쓰기도 했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마음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시즌 준비는 너무 잘 돼서 걱정일 정도로 완벽했지만 시즌 시작 직전에는 은근히 부담이 커졌다. 아마도 팬들의 높아진 기대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낸 탓에 부상 재발에 대한 염려도 컸었다. 하지만 연습 과정이 좋았고 훈련을 통해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니 자신감이 붙었다.”

김연아가 올 시즌을 ‘희망 모드’로 삼은 계기는 지난 10월27일(한국 시간)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 컴캐스트 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이다.

“걱정이 많았던 만큼 미국 대회에서의 결과가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털고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베이징 대회까지 이어졌고 결국, 또다시 1위를 차지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연아가 이번 시즌을 신바람나게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그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부상이 없다는 점이다.

“2~3년 전부터 심한 부상들이 지속되었다. 그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배운 점도 많았다. 부상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 등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즌만큼은 부상 없이 건강한 몸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김연아는 지난 3월 스웨덴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고관절 통증으로 5위에 머무르며 순위 밖으로 밀려났었다. 결국 싱글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며 총점 순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당시 5위라는 성적이 김연아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당시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부상에다 순위가 밀려난 부분 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그녀를 자극했던 탓이다.

귀국한 다음 날 경기가 열리는 고양시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공식 훈련이 재개되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6명의 선수 가운데 아사다 마오만 비행기 연착으로 뒤늦게 도착했고, 5명의 선수가 모두 링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얘기를 나누며 몸을 풀던 김연아가 자신의 차례에서 이번 시즌 새로 선보인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생상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에 맞춰 펼쳐갔다. 이때는 기자도 기자가 아닌 팬이 되고 만다. 김연아의 주특기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했을 때 절로 박수를 치게 되었다.

“나는 아사다 마오를 떠올릴 틈이 없다”

연습 후 공식 인터뷰를 가졌는데 김연아의 인터뷰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이 또다시 등장했다. 바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이다. 김연아가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부터 줄곧 아사다 마오와 비교되었고 기자들도 일본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아사다 마오를 김연아와 비교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러나 정작 김연아는 오랫동안 계속된 아사다 마오와의 비교가 이제는 부담스럽다 못해 지겨울 정도이다.

“내 경쟁자가 아사다 마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시즌 들어가면 다른 선수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더욱이 많은 선수들과 겨룬 끝에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 서는 까닭에 아사다 마오를 떠올릴 틈이 없다. 상대 선수에 따라 내가 변화되기보다는 아예 신경 안 쓰고 내 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김연아를 일컫는 여러 가지 수식어 중에서 ‘과학이 빚은 몸매’ ‘신이 내린 몸매’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1백63cm, 43kg의 체격에다 긴 팔과 다리, 그리고 신체에서 풍겨나오는 감성과 표현력 등이 김연아의 연기에 플러스 알파를 덧붙인다. 그러나 김연아는 타고난 신체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의 구동회 부사장은 김연아에 대해 성실하고 의지가 강하며 똑똑한 선수라고 설명했다.

“캐나다에 가서 놀란 것은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영어 공부를 했냐고 물었더니 국제 대회 나가면서 틈틈이 배웠다고 하더라. 오서 코치와의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히어링(듣기)이 거의 완벽했다. 토론토에서 영어 개인 교사도 김연아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고 하더라. 머리도 좋고 끼도 많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이제는 말도 잘한다. 이전에는 인터뷰할 때 미리 대본을 짰는데 올 초부터는 인터뷰에 관해 따로 조언하는 게 없을 정도이다.” 김연아는 자신에게 쏠리는 엄청난 관심과 인기에 대해 ‘실감을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기자가 김연아에게 ‘가히 톱스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라고 설명하자, “캐나다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잘 느끼지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김연아는 ‘아직은’ 자신이 ‘트렌드세터’가 되든 ‘셀러브리티’로 평가를 받든 별로 신경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은 선수 신분이고 대회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 ‘김연아=사회적인 아이콘’으로 연결 짓는 부분들이 와 닿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포장된 김연아’보다 ‘꾸미지 않은 김연아’를 더 편안해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표현했던 내용을 살펴보면 김연아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학교 생활을 하고 싶지만, 나한테 사인받으려 몰려들기보다는 나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다면 그가 나를 유명인으로 대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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