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마당’이 곧 썰렁해진다고?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3.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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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미국 FRB 총재, 내년 경기 회복 가능성 비쳐…“실업률 계속 오르는데 무슨…”

▲ 미국 애리조나 주 TUCSON 동남쪽에 위치한 항공기 무덤. ⓒ출처:구글

미국의 ‘뼈마당’(boneyard)을 보면 미국 경제의 현황을 알 수 있다. 특히 항공 산업의 경우는 더욱 확연하다. 뼈마당은 ‘묘지’를 의미하는 말로 산업현장에서 쓰이던 기기들이 폐기 처분되는 곳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폐차장도 뼈마당의 일종이다.

미국 3대 항공기의 폐기장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 주 빅터빌의 뼈마당에는 요즘 퇴역 항공기가 몰려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잉 737 등 대형 항공기 100대가 이곳에서 폐기 혹은 재활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느새 150대로 불어나더니 요즘에는 2백대에 이른다. 최대 수용 대수인 3백대에 육박하는 것도 시간 문제이다. 미국 내 각 항공사들이 퇴역 항공기를 계류시킬 만한 자리가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최근 잇따르고 있어 당장 올여름까지 50대가 은퇴 후에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뼈마당에 도착한 퇴역 비행기 가운데 10~20%는 재취항의 기회를 갖는다.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거나 아프리카나 중미, 남미의 중고 항공기 구매가 성사되면 다시 하늘을 날 수 있다. 아니면 주요 부품으로 분해되어 보수용 또는 대체용으로 사용되거나 뼈만 남은 기체는 조각조각 쪼개져 맥주 캔으로 변신한다.

빅터빌 뼈마당은 요즘 바쁘다. 최근 경제난으로 여행객이 줄어들자 각 항공사가 취항 편수를 줄인 결과이다. 낡거나 연료 소모량이 많은 비행기를 우선 퇴역시키거나 ‘대기 발령’하면서 이른바 잉여 항공기들이 뼈마당으로 보내진다.

퇴역 항공기 갈수록 늘어 폐기장도 ‘만원사례’

지난 2월 통계를 보면 미국 내 비행기 여객 수가 지난해 2월에 비해 11% 줄어들었다. 이는 2001년 9·11 사태 직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원인이 8년 전에는 테러를 두려워한 심리적 요인에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 위기에 따른 소비 지출 감소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 18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침체 속에서 헤매고 있다. 월스트리트 주가가 1년6개월 전 최고 1만2천대를 넘어섰으나 지난주에는 겨우 7천대를 유지하고 있다. 앉아서 자산의 40%를 날린 투자자들이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매달 6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이 직장을 잃고 있다는 보도는 미국 경제가 중병에 걸려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주식시장에서 자산을 날린 사람들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라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마음이 생기지도 않겠지만 사업에 꼭 필요한 여행마저 최대한 줄이고 있다.

지난주 이같은 ‘뼈마당 호황’에 쐐기를 박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의 벤 버냉키 총재가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힌 것이다. 미국 주요 지상파 방송인 CBS의 <60분>에 출연한 버냉키는 올해 말을 고비로 해서 내년부터는 미국 경제가 회복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버냉키가 미국 주요 TV 방송에 출연해 경기 전망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미국 언론은 지적하면서 그의 전망이 경제 전문가로서 분석이냐, 아니면 미국 정부의 총대를 메고 나선 선전이냐를 놓고 진의 파악에 나서고 있다.

버냉키 발언에 힘입어 월스트리트 주가는 연 나흘간 상승세를 보였다. 버냉키의 말이 미국 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한 셈이다.

버냉키는 그러나 단서 달기를 잊지 않았다. 의회 통과를 거쳐 투입된 공적 자금이 위기에 처한 은행들에게 안정을 되찾아주고, 금융 산업이 신뢰를 회복할 경우 미국 경제가 혼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조건이다.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은행 구제에 상당액 투입되면서 일단 시티뱅크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들이 경영 불안에서 벗어나고 미국 최대 투자회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도 보유 주식 80%를 정부에 넘기면서 파산을 면했다.

올해 초부터 리먼브러더스 등 다수 은행 및 금융회사가 문을 닫고 와코비아 등이 합병의 치욕을 겪는 시련을 거치면서 미국 금융시장은 급격히 경색되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 정책에 힘입어 이달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인 측면이다. 더구나 캘리포니아에서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던 주택시장도 최근 들어 매매 건수 증가와 가격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택 대출시장의 융통성이 커지면서 생긴 부수 효과라는 분석도 따른다. 이같은 변화의 징조들이 버냉키의 조심스런 낙관론과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발언이라는 권위에 편승해 미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부동산업계는 보고 있다.

버냉키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도 최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해 낙관론을 폈다. 자신이 추진한 구제금융 살포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근거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미국의 능력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과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보유한 미국 경제는 뛰어난 기업들과 노동 인력, 혁신과 역동성을 갖추었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이런 기초 분야를 건실하게 복원시킨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오바마의 이같은 메시지를 ‘조심스런 낙관론’이라고 설명하면서 경제 국면 변화에 대한 ‘희망의 (작은) 불빛’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서머스 국장도 오바마의 낙관론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오바마에 하루 앞선 지난 3월13일의 연설에서 ‘시장의 지나친 공포감’을 문제시하면서 이제는 주식을 사들일 때라고 말했다. 그는 월스트리트 주가가 현재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경제 위기는 과거의 지나친 자만심과 낙관론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더 많은 낙관과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국가 부채, 올해에만 1조3천5백억 달러 늘었다”

▲ 미국 FRB의 벤 버냉키 총재가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EPA

버냉키, 오바마, 서머스를 잇는 이같은 낙관론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정부 정책 홍보를 위한 프로파갠더가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업률이 8.1%에 이르고 올해 말이면 10%대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무슨 경제 회복이나 위기 극복의 자신감을 논할 수 있느냐는 힐난성 비판도 곁들였다.

미국 공화당도 이런 낙관론에 비판적이다. 존 보너 하원의원(공화·오하이오 주)은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 살포를 통한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국가 부채가 올해만 1조3천5백억 달러가 늘어났는데 무엇을 근거로 경제 낙관을 거론할 수 있느냐”라고 반박했다.

미국 공화당은 나아가 오바마의 미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자신감을 두고 비웃음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캠페인 당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건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경계했다. 오바마 캠프는 즉각 매케인을 공격했다. 당시 호각지세를 보이던 매케인이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이 이어지면서 기세를 잃은 것도 오바마측의 전략적이고 정략적인 집중 공세 때문이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눈길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많은 미국인들은 낙관론에 기대고 싶어한다. 경제 회복을 바라는 기대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마크 메디시(카네기 인다우먼트 국제평화연구소 수석 고문)의 주장에 잘 녹아 있다.

메디시는 백인이 다수인 국가에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나라는 미국이 처음이자 유일하다고 강조하고 이런 혁신적인 선택이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바마 정부가 이번 경제 위기를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것이 그의 희망이자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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