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투자’는 성공했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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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켐스 인수 외에 베트남 화력발전소 수주·김해 아파트 부지 개발 등도 ‘특혜’ 의혹

ⓒ시사저널 임준선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관련해 어느 정도로 돈 거래를 한 것일까. 박회장은 또 이런 과정에서 어떤 혜택을 받았을까.

지난해 박회장이 검찰에 구속될 즈음에 노 전 대통령 관련설이 나오자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있을 때부터 박회장을 경계해왔다”라며 기자에게 헛다리 짚지 말라고 큰소리를 친 적이 있다. 하지만 드러난 것은 그렇지 않았다. 퇴임 이후는 물론 심지어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노 전 대통령 일가는 박회장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회장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돈’과 관련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이다. 당시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총선에 출마하기 직전이었다. 박회장은 “동생의 출마 자금으로 써야 한다”라는 건평씨의 부탁을 듣고 경남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임야 9만여 평을 4억5천만원에 매입해주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2년 4월에는 건평씨의 거제도 구조리 별장을 10억원에 사들였다. 안희정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대선 자금으로 7억원을 지원한 것도 2002년이다. 박회장은 2003년에는 건평씨가 운영하는 건설사에 공사를 맡겼다. 32억6천여 만원에 달하는 정산컨트리클럽 진입로 공사를 건평씨 회사에 맡긴 것이다.

박회장은 건평씨를 통해 ‘노무현 일가’와 인연을 맺었지만 건평씨와만 ‘돈 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다. 2006년 당시 영부인이었던 권양숙 여사에게 현금으로 100만 달러(10억원)를 건넸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이 차용증을 쓰고 박회장으로부터 15억원을 빌렸다. 실제 빌린 것인지, 그런 형식을 취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노 전 대통령은 이자를 갚지 않았다. 이 돈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짓는 데 들어갔다. 지난해 2월에는 박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5백만 달러를 송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돈이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박회장의 최측근인 정산개발 정승영 사장이 갖고 있던 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의 땅 1천2백여 평을 노 전 대통령에게 판 것에 대해서도 “편의를 봐주었다”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렇다면 ‘공짜 돈은 없다’라는 것이 만고의 진리인데 박회장이 얻은 이득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박회장이 ‘노무현 일가’의 힘을 빌려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것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매각 비리이다. 세종캐피탈측은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씨 형제를 통해 노건평씨와 접촉해 농협의 정대근 전 사장을 움직여 인수를 성사시켰다. 정씨 형제와 노씨는 이 과정에서 29억6천여 만원을 챙겨 구속되었다. 박회장도 정대근 회장에게 20억원을 건네고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감옥으로 가면서 ‘박연차 게이트’의 서막이 올랐다. 건평씨는 이 과정에서 정보를 이용해 본인과 딸, 사위 등의 이름으로 세종증권 주식을 거래해 6억여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었다.

검찰 수사 결과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고 휴켐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박회장이 주식 투자를 통해 거둔 시세 차익은 2백59억원으로 밝혀졌다. ‘알짜 회사’로 통했던 휴켐스를 통해 장기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수익을 빼고 2006년 6월 인수를 전후해서 거둔 수익만 이렇다.

하지만 세종증권·휴켐스 인수·매각 비리 외에 나머지 사건들은 아직 ‘의혹’ 차원이다. ‘연철호 5백만 달러’와 관련해서는 태광실업이 베트남 정부가 발주한 30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사업을 수주한 것에 대한 대가 차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 한국을 찾은 농 득 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찬을 하면서 “박회장은 내 친구이다”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협조 요청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해석을 낳았다. 또, 태광실업 현지 법인으로 발전소 경험이 전혀 없는 신발 생산업체로 알려진 태광비나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참여한 경위가 주목되었다.

베트남 항공 티켓 총판점도 맡아

박회장이 경남 진해에 있는 옛 동방유량 공장터를 아파트 부지로 개발해 100억원대 이익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도 특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애초 주인이었던 사조산업이 아파트를 지으려다가 10층 이상을 지을 수 없다는 고도 제한 조치 때문에 개발을 포기하고 이 땅 13만여 ㎡(4만평)를 5백62억원에 박회장에게 팔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매입한 지 3개월 만에 땅을 산 정산개발은 용도 변경을 요구했고, 2005년 6월 도시개발구역 고시가 났다. 고시가 나기 한 달 전에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10층 이상 아파트 건립이 가능하도록 진해비행장 안전 구역의 건축 경사도를 30분의 1로 완화했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정산개발은 이 땅을 시행사인 ㈜DNS에 팔아 100억원대 차익을 얻었다. ㈜DNS는 이 땅에 1천2백여 세대 아파트를 지어 3백억원의 개발 이익을 거두었다. 검찰은 이 회사가 박회장의 위장 계열사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어서 팔면 수백억 원 이득을 얻을 것이 분명한 땅을 넘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회장은 이 사업을 통해 4백억원대 이득을 챙긴 셈이다.

2002년 김해시외버스터미널 부지를 매입한 것과 관련해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박회장은 이 부지를 산 뒤 터미널이 옮겨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매각해 7백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2003년 9월 베트남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태광실업이 통상 여행사 등에만 주어지는 항공 티켓 총판대리점을 맡은 것도 의문이다.

박회장이 얻은 ‘사업상 특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행형이다. 이러저러한 의혹으로 볼 때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매각 이외에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연루된 또 다른 특혜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분명한 것은 박회장이 노무현 정권 때 이루어진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투자’에 대한 ‘대가’ 여부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실은 박회장이 정권과의 관계에서 벌인 사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한 ‘사업’에서는 실패해 감옥에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감옥에서 검찰과 여권 핵심부를 상대로 이미 또 다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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