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안 되는데 말만 앞세웠나
  • 김종대 (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4.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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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PSI 참여 놓고 입장 정리도 제대로 못해

▲ 내한한 롤리스 전 미국 국방부 차관(맨 왼쪽)은 “한국의 PSI 참여를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둘러싼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안쓰럽다. 자신감 없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공은 던지지 않고 시간만 끄는 장면을 지켜볼 때의 안타까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언론에서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기 이전인 3월20일쯤 외교부가 PSI 참여를 공언한 이래 세 번이나 참여 발표 시기를 연기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 과제 비밀 문서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0호와 관련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 PSI 참여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결의안 1540호가 대량살상무기의 해외 반출을 범죄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위 시절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외교통상부는 PSI 참여를 무수히 거론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 돌연 ‘보류’하겠다는 언급이 나오더니 한동안 이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지난 4월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 외교부는 또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참여가 당연시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월15일 관계 부처 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는 또 미루어졌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문제 하나만 갖고 입장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외교통상부, 인수위 시절부터 무수히 거론

이런 식으로 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 효과가 어떨지도 의문이다. PSI는 아직도 국제 기구로서의 그 집행 기구가 정식화되지도 않았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한국에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고 있지 않다. 이전의 부시 정부 시절에 비해 PSI의 ‘약발’이 많이 떨어진 셈이다. 게다가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도 한국의 PSI 참여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PSI 참여 효과는 줄어든 데 반해 정치적 부담만 늘어난 상황에서 이 문제로 정부가 계속 우물쭈물하기만 하자 관중들이 야유를 퍼붓는 야구장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현재로서는 PSI에 전면 참여할 만큼 우리의 능력이 되는지도 문제이다. 한국 해군은 북한 정규 군사력의 위협에 대응해 연안 작전을 위주로 구성된 전력이다. 민간 선박까지 포함해 해외에서도 검문·검색·차단 등 여러 가지 유형의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구축함이나 감시 시스템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함을 하나 보내는 일조차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그와 유사한 작전이 될 PSI 참여에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예상된다. 앞으로 이 문제가 구체화될 경우 한국 해군은 대양 작전 능력과 글로벌 감시 시스템, 항공 및 특수 작전 능력부터 우선 보완해야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더니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조기 경보 레이더, 요격미사일, 정밀 타격 미사일과 폭탄 구매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전부가 미국이 한국에 팔고 싶어 하는 무기들이다. PSI 참여가 확정되면 곧이어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비롯한 새로운 안보 전략들이 뒤를 이어 우리의 국방 정책 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해상과 공중이라는 공간만 다를 뿐, MD와 PSI는 공히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글로벌 대응 체계이며 이를 주도하는 미국에서는 상당 부분 두 영역의 정보 시스템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국방부는 물론 외교안보 정책의 의사 결정자들이 이에 대해 아직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다. 새로운 안보 환경에 대한 이해 자체가 미약한 상태이다. PSI와 MD, 우리가 서둘러 쫓아가기에는 아직 너무 버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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