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6자회담 테이블 붙일 틈도 보이지 않네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4.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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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PSI 참여·북한 강경 드라이브로 긴장 높아진 한반도 정세

▲ 북한의 방송 뉴스 진행자가 북한 당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에 대응해 북핵 6자회담에 불참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비핵화는 원점으로 돌아가는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행위를 비난하는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이 위성 발사라고 강변했지만 유엔은 위성발사를 가장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간주하고 규탄(condemn) 성명을 발표했다. 의장성명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시킨 안보리 결의 1718호의 위반이라고 명시하고 그동안 유보했던 자산 동결과 여행 제한 등 대북 제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같은 국제 사회의 제재에 대해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은 지난 3월24일 로켓 발사를 앞두고 국제 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평화적 목적의 우주 공간 이용은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지니고 있는 합법적 권리임을 주장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들고 나온다면 9·19 공동성명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침해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9·19 공동성명의 상호 존중과 평등의 정신에 전면 배치된다고 하면서 “9·19 공동성명이 파기되면 6자회담은 더 존재할 기초도 의의도 없어지게 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사전에 공언한 대로 6자회담 불참과 핵 억제력 강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검토할 것이라고도 했다. 4월14일 북한은 영변 핵 불능화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의 핵 전문가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니터 요원에게 북한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 북한은 그동안 진행해온 비핵화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4월6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여야 3당 대표들과 조찬 회동을 갖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대응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PSI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남북 관계 회복에 걸림돌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도발적 위협을 중단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라”라고 촉구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4월15일 “관련된 모든 당사국들은 북한이 2005년 9월 핵 프로그램의 해체에 합의한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던 2005년 2월에도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다”라고 밝혔지만 무용론을 들고 나오지는 않았다. 2003년 8월 시작한 6자회담은 지금 5년 7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에 가입하겠다고 공언한 대로 PSI 전면 참여를 결정하고 발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PSI에 정식 가입을 결정함으로써 남북 관계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PSI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처럼 구속력 있는 국제 조약이나 국제 체제가 아니다. PSI는 9·11 테러 이후인 1993년 6월 부시 행정부가 주도해 만든 것으로 94개국이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구상   단계의 국제 협력 체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PSI 참여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은 북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국제적인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PSI 참여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확산 방지의 주된 대상은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이 남한의 PSI 전면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즉시 단호한 대응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포해둔 터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현 시점에 국제 규범 준수 차원에서 PSI에 전면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겠지만 북한의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PSI에 남한이 전면 참여한다고 해도 남북 관계의 특성상 남한이 직접 의심 나는 북한 항공기와 선박을 검색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효성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측이 전면 참여를 결정한 것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국제 규범과 한·미 동맹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지금이 PSI 가입의 적기라고 보고 남북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전면 참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 재설정에 실패하고 남북 갈등을 지속하고 또, 가까운 장래에 관계가 좋아질 전망이 서지 않은 지금 대선 공약 실천 차원에서 PSI 전면 참여를 결정했다고 판단된다.

정부가 PSI 가입을 결정한 데는 남북 관계 복원이 어렵더라도 ‘불량국가’ 북한을 정상적인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도덕적 기준을 우선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특수성 측면에서 볼 때 남측의 PSI 참여는 당분간 상황 악화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남측의 PSI 가입으로 남북 관계는 ‘루비콘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신뢰 회복이 중요한데 북한의 로켓 발사와 남한의 PSI 가입으로 신뢰 회복을 위해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게 될지 모른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한 남북 관계 진전은 어려울 것이다. 결국, 남측 정부는 남북 관계 복원보다는 위기 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향후 진로 좌우할 듯

▲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참여 중단을 촉구하는 범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월15일 외교통상부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왔던 충격 요법을 통한 국면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냉각기를 거친 이후에 새로운 협상 국면이 열릴 수 있다. 당분간 북한은 국제 사회의 제재 강화에 맞서 핵확산이냐 협상이냐의 양자 택일을 요구하면서 위기조성의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벼랑 끝 전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군사적 억제력으로 사용하면서 자력갱생을 모색할 수 있다. 정권과 체제 수호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북한은 미국·일본·남한 등 서방과의 대타협 노선을 포기하고 중국·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은 안보리 성명 채택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보여준 WMD 확산 방지 노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로켓 발사 이후 한반도 정세의 향방은 미국 오마바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카드를 선제적으로 내밀며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지켜보고 있다. 북한의 WMD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미국이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제재와 함께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위기 국면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부시 행정부 때처럼 북한 위협론을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의 명분으로 활용한다면 북·미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이란과 쿠바에 대한 미국의 유화 정책에서 대북 정책의 단면을 예상해볼 수도 있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은 북·미 양자 협상의 결과를 추인하는 ‘고무 도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6자회담 무용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 교체 이후 6자회담의 추진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6자회담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불량국가’ 북한과 양자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보증자’로 중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거쳐 남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 4강이 참여해 만든 다자 협력의 틀이다.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가 우선 목표이지만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북한에 경제·에너지를 제공하고 나아가 별도의 포럼을 만들어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원래 북한은 북·미 직접 대화를 원했지만 6자회담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을 참여 국가들이 분담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추진력이 떨어진 것은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북·미 접촉이 본격화되면서부터이다.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은 북·미 양자 협상의 결과를 추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비협조’와 한·미 정권 교체로 6자회담 추진력도 떨어져

  최근 북한은 일본이 분담된 대북 에너지 지원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6자회담이 파탄 직전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 일본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연시켜 그들의 핵무장 구실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해왔다. 6자회담에서의 일본의 비협조도 6자회담의 추진력이 떨어진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를 통해서 폐쇄→ 불능화→ 폐기로 이어지는 북핵 폐기의 로드맵을 만들고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불능화를 완수하려 했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권 교체로 정책 추진력이 떨어졌다.

북한이 지난해 6월27일 불능화 조치에 포함되지 않은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할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와 불능화까지 진행하고 경제·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얻어내고 다음 정부를 기다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기 막바지 레임덕에 빠진 부시 행정부가 비핵화 추진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추진하는 데 일본과 한국이 반발하면서 북핵 불능화를 위한 6자회담의 추진력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이 이루어지면 6자회담 참가를 카드화해서 협상에 활용할 것이다. ‘강력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WMD 확산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보즈워스 대북 정책 특별대표가 언급한 대로 미국은 로켓 발사의 낙진이 가라앉으면 북·미 양자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그때까지 미국은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적대 관계 해소를 위한 포괄적 접근 방안에 북·미가 합의할 경우 6자회담은 비핵화, 경제·에너지 지원, 평화체제 구축 등을 위한 다자 협력 틀의 위치를 되찾게 될 것이다. 따라서 6자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6자회담이 재개되어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면 유엔의 대북 제재도 유보될 수 있을 것이다.


'능력’ 안 되는데 말만 앞세웠나

정부, PSI 참여 놓고 입장 정리도 제대로 못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둘러싼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안쓰럽다. 자신감 없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공은 던지지 않고 시간만 끄는 장면을 지켜볼 때의 안타까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언론에서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기 이전인 3월20일쯤 외교부가 PSI 참여를 공언한 이래 세 번이나 참여 발표 시기를 연기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 과제 비밀 문서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0호와 관련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 PSI 참여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결의안 1540호가 대량살상무기의 해외 반출을 범죄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위 시절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외교통상부는 PSI 참여를 무수히 거론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 돌연 ‘보류’하겠다는 언급이 나오더니 한동안 이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지난 4월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 외교부는 또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참여가 당연시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월15일 관계 부처 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는 또 미루어졌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문제 하나만 갖고 입장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외교통상부, 인수위 시절부터 무수히 거론

이런 식으로 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 효과가 어떨지도 의문이다. PSI는 아직도 국제 기구로서의 그 집행 기구가 정식화되지도 않았고,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한국에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고 있지 않다. 이전의 부시 정부 시절에 비해 PSI의 ‘약발’이 많이 떨어진 셈이다. 게다가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도 한국의 PSI 참여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PSI 참여 효과는 줄어든 데 반해 정치적 부담만 늘어난 상황에서 이 문제로 정부가 계속 우물쭈물하기만 하자 관중들이 야유를 퍼붓는 야구장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현재로서는 PSI에 전면 참여할 만큼 우리의 능력이 되는지도 문제이다. 한국 해군은 북한 정규 군사력의 위협에 대응해 연안 작전을 위주로 구성된 전력이다. 민간 선박까지 포함해 해외에서도 검문·검색·차단 등 여러 가지 유형의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구축함이나 감시 시스템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함을 하나 보내는 일조차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그와 유사한 작전이 될 PSI 참여에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예상된다. 앞으로 이 문제가 구체화될 경우 한국 해군은 대양 작전 능력과 글로벌 감시 시스템, 항공 및 특수 작전 능력부터 우선 보완해야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더니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조기 경보 레이더, 요격미사일, 정밀 타격 미사일과 폭탄 구매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전부가 미국이 한국에 팔고 싶어 하는 무기들이다. PSI 참여가 확정되면 곧이어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비롯한 새로운 안보 전략들이 뒤를 이어 우리의 국방 정책 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해상과 공중이라는 공간만 다를 뿐, MD와 PSI는 공히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글로벌 대응 체계이며 이를 주도하는 미국에서는 상당 부분 두 영역의 정보 시스템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국방부는 물론 외교안보 정책의 의사 결정자들이 이에 대해 아직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다. 새로운 안보 환경에 대한 이해 자체가 미약한 상태이다. PSI와 MD, 우리가 서둘러 쫓아가기에는 아직 너무 버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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