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노인 프렌들리’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9.04.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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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사회 구조 개혁도 모색 중

▲ 아이는 줄어들고 노인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일본의 한 산부인과 영아실. ⓒEPA

▲ 일본의 한 ‘노인의 집’. ⓒ연합뉴스

일본의 소자녀·고령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4월16일 2008년 10월1일 현재 인구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의 인구 수가 14세 미만의 인구 수를 넘어선 현이 지난해 6개 현에서 올해 12개 현으로 두 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의 특징은 소자녀·고령화 현상이 지방에서만이 아니고 도시에서도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이 78세, 여성이 85세이다. 2010년이면 네 사람이 한 사람을 보살펴야 하며, 2035년이 되면 고령자 비율이 30% 정도에 이른다.

이런 인구 구조로 인해 일본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도 문제가 생겼다.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인구를 늘리거나 기술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두 가지 다 만만치 않다. 사람들이 아이는 낳으려 하지 않고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기술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지만 기술력 제고가 몇 년 사이에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제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이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 데는 인구와 생산성의 뒷받침이 있었다. 패전 후는 다산의 시대였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흔히 단카이 세대라고 하는 베이비붐 시대로 이 시기에 6백80만명이 태어났다. 넓은 의미의 단카이 세대인 1951년생까지를 포함하면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이 세대들이 제조업이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들은 패전 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이 두 요소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전기·전자, 중공업, 자동차, 화학, 조선 산업의 구조의 틀을 정착시킨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소니·히타치·도시바·도요타 자동차·미쓰비시·스미토모·미츠이와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생산 노동 인구 격감…노인 위한 제품·서비스는 나날이 발전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2007년부터 정년 퇴직을 시작하면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숙련된 기술자들이 퇴직하는 공간을 메울 인재들이 줄어들고 있다. 생산 노동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은 갈수록 일을 기피한다.

프리터(Freeter)족과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증가하고 있다. 내각부의 통계로는 프리터족이 4백만명 정도에 이른다. 최근 10여 년간 두 배로 늘어났다. 심각한 것은 연령이 30대 전후까지 고령화되고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는 6백만명이 넘을 가능성이 있다. 니트족은 85만명에 이르나 2010년이 되면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모의 세대와는 다르게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기존의 집단적인 조직 문화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는 삶을 즐기고자 한다.
또, 정년 퇴직한 세대들에 대한 대책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은 현업에서 은퇴했지만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다. 일본인들의 평균 연령을 감안하면 정년 퇴직 후 20~30년간은 소일하며 지내야 한다. 총 인구는 감소했지만 총 시간은 늘어간다. 하지만 생산성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년 퇴직자 및 고령자들은 소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개인 자산은 약 1천5백조 엔이다. 젊은이들은 돈이 별로 없다. 대부분 노인들의 돈이다. 노인들의 경우 소비 탄력성이 작다. 필수품 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인구는 줄고 구매력 있는 노인들은 소비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소비 경향이 바뀌고 있다. 먼저 백화점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급 브랜드 대명사인 미츠코시 백화점과 이세탄 백화점이 합병을 했다. 소비가 줄어가는 상황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채산성을 높여 가고자 하는 고육책이다.

로봇이 생산성 올리고 사람이 조직을 활용하는 사회로 ‘전환’

역으로 동네의 편의점과 동네 상점 그리고 100엔 숍들은 호기를 맞고 있다. 특히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저가 상품의 구입이 증가하고 있다. 움직임의 반경이 크지 않는 노인들이 주거지 주변에서 식료품 등 필수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들 사이에서는 노인들을 위해 상품 이름을 알리는 글자를 크게 하거나 선반 높이를 조정하고 통로를 늘이는 등 ‘노인 프렌들리’ 움직임이 일고 있다. JR 등 전철 이용객도 감소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노인들의 움직임이 둔화되면서 채산성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철역의 역사 상가화가 진행되고 있다. 역사 위에 상가, 레스토랑, 커피숍, 호텔 등을 유치해서 수익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민간 기업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정부 부문에서도 심각하다. 정년 퇴직자들은 납세자에서 수급자로 변했다. 노인들의 의료비는 점점 증가한다. 아소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30조 엔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정 적자는 1천조 엔 이상이 되고 GDP의 1백80%로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공공 분야 투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로와 항만, 공항 등의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업도 신규 투자보다는 유지·관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진전은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한 방안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산아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출생률은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는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나 폐쇄적 성격의 일본 사회 구조로 인해 실현성이 그리 크지 않다. 다만, 고령의 노인들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최근 필리핀에서 간호부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승인했을 정도이다.

또 하나는 생산성을 올리는 문제인데 숙련된 인력이 정년 퇴직하면서 이 또한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일본은 대안으로서 로봇 산업을 키우고 있다. 현재 일본은 35만대의 산업용 로봇을 가동하고 있다. 세계 제1의 로봇 국가이다. 바이오, 환경,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차기 성장 동력으로서 로봇 산업을 정책적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대안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고용 중심이라는 사회의 틀을 개개인이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 사회로 바꿔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즉, 조직이 사람을 활용하는 고용 사회에서 사람이 스스로 독자성을 가지고 조직을 활용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방법을 내놓고 있음에도 인구는 줄어들기만 하고 나이는 늘어만 가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고령화 문제는 단지 생산성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만이 아니다. 삶의 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퇴직 후의 시간은 여생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제2의 삶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과 대책이 시급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총제적인 담론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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