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승리’ 앞에 무엇이 보이랴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5.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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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내전, 정부군이 곧 끝낼 듯…후유증 커 국가 재건의 미래는 ‘캄캄’

▲ 스리랑카 군인들이 전쟁 지역에서 구출한 타밀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수송하고 있다. ⓒAP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전쟁의 하나인 스리랑카 내전이 26년 만에 막을 내리고 있다. 분리 독립을 추구해온 ‘타밀 호랑이’ 반군은 병력을 거의 상실한 채 북부 거점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으나 승부는 가려졌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이들은 지난 5월4일 영국과 프랑스에 휴전 중재를 요청했으나 정부군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총성이 아직 멎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전쟁 지역에 발이 묶인 약 10만명의 난민 구출 때문이다. 반군은 병력과 주요 병참 루트를 상실한 채 미국 센트럴파크  두 배 정도의 지역을 차지하고 난민을 인질로 잡은 채 최후의 결전을 벼르고 있다. 이들이 버티는 이유는 항복의 명분을 찾기 위해서이다. 한때 6천명에 달했던 반군 세력은 거의 사살되거나 이탈하고 현재 골수 분자 1천명 정도만 남았다.  

정부군은 반군 거점을 향해 서서히 진격 중이다. 따라서 최후의 보루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반군은 동북부 전투 지역에서 지난 2주간 16만명의 난민이 탈출했다고 주장했으나 다수의 주민들은 인질로 잡혀 있다. 정부군의 작전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도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일부 반군은 난민 속에 섞여 도주했다. 정부군은 이들 위장한 반군 3천명을 체포했다. ‘검은 호랑이’라는 별명의 반군 자살 특공대는 독약이 담긴 목걸이를 걸고 체포되는 순간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살육 등으로 26년간 10만명 사망

정부군의 승리는 ‘검은 승리’로 풍자된다. 국민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신한리즈 부족과 소수의 타밀 부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지금까지 10만명이 죽었다. 지난 2년 동안에 죽은 사람도 3만명이나 된다. 북부 반군 지역을 제외하면 스리랑카 경제는 지난 50년간 제법 건실했다. 그러나 종전의 후유증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검은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가 재건의 전도가 캄캄하다는 의미이다. 

‘타밀엘람호랑이해방전선(LTTE)’이라고 불리는 무장 조직이 탄생한 것은 1976년이었다. 그 전부터 타밀족의 분리 투쟁은 있었으나 제법 형태를 갖추기는 이 해부터였다. 이들은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에 타밀족 독립 국가를 건설할 목표를 세우고 살육, 암살, 자살 특공대, 납치 등 가능한 모든 폭력 수단을 총동원해 대정부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잔인성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세계 32개국이 이 조직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특히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잔혹 행위는 세계 여론의 규탄을 면치 못했다. 10대의 소년 병사를 강제로 모집한 것도 이들이 처음이다. 이라크 시아파와 이슬람 지하드가 주로 여성을 이용해 자행하는 자살 공격도 타밀이 원조였다.

타밀 호랑이는 한때 공군과 해군까지 갖춘 정규군 수준으로 세를 불리고 스리랑카의 3분의 1을 점령하기도 했다. 정부와는 여섯 차례 휴전에 합의했으나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군이 승기를 잡은 것은 2006년부터였다. 반군의 잔혹성에 식상한 지원병들이 속속 이탈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정부군은 이때부터 대대적인 공세를 취해 반군 거점을 21㎢의 좁은 구역으로 압축했다. 그때부터 내전 종식의 기미가 보였다. 2009년 2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노르웨이는 이례적으로 공동성명까지 발표하면서 LTTE의 항복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국내외 전세가 불리해지자 반군은 사실상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인구의 18%를 차지하는 타밀 반군의 패배는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심을 얻지 못한 데 있다. 이들의 패배는 전세계 모든 반정부군에게 교훈을 준다. 어떤 명분과 대의로도 민심을 잡지 못하면 멸망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입증되었다. 종전은 임박했으나 축제 분위기는 아니다. 인적·물적 피해가 너무나 크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국제 사회의 협조로 전쟁은 끝나가지만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남기게 한 것은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타밀 반군의 씨를 말리기 위한 정부군의 작전도 비판을 받았다. 정부군은 지난 1월 총공세를 펴면서 반군 지역에 갇힌 민간인 20만명의 안전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저질렀다. 한 달 동안 민간인 사망자가 4천5백명에 이르렀다. 4월 중 난민 1만명을 소개시킨 국제적십자사는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하면 가공할 피해가 났다고 밝혔다.

살상은 주로 포격으로 발생했다. 문제의 포격에 대한 정부군과 반군의 주장은 다르다.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서로 책임을 전가한다. 정부는 반군의 포격이 민간 피해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의사들과 인권단체들은 정부군도 만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특히 ‘국경 없는 기자들’은 반군보다 정부군이 더 잔혹했고 언론인들에게도  더 적대적이었다고 비난했다. 정부의 공보장관은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을 왜 이런 식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반군의 극단주의 전술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얼버무렸다.

현 정부가 반정부 세력 포용해 평화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

일부 정부군은 반군 포로들을 고문할 때 미국이 관타나모에서 사용한 기법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타밀 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함으로써 반군 포로 고문을 고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고문에 관한 한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피장파장이라는 자조 섞인 개탄도 많다.

긴 전쟁의 혼란 속에서 엉뚱한 부작용도 생겼다. 스리랑카 정부는 반군 소탕 작전에서 인권을 존중하라는 서방의 압력에 반발했다. 그 여파로 무기는 파키스탄에, 석유는 이란에, 긴급자금은 리비아에 호소했다. 전통적 서방 우방과는 담을 쌓겠다는 신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9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서둘러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공은 마힌다 라자파크세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우선 총성이 멎은 자리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성공하면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죄인이 된다. 연내에 대통령 선거와 국회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것도 압도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각료직을 맡고 있는 3명의 동생들과 함께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그러나 힘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근 30년간 타밀 호랑이 밑에서 세뇌되고 순치된 국민을 정상적인 시민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LTTE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단체를 구성해 이 우산 밑에 반정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지만 긴 세월 증오에 물든 사람들이 쉽게 동화될지는 의문이다.

그는 타밀 반군 지역에서 조속한 선거를 실시해 지방 정부를 수립하고, 소수 타밀족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타밀 반군의 전 지도자를 정부 요직에 포용하는 안도 검토 중이다. 반군 지휘관들을 사면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나 정부는 그럴 가능성을 부인했다. 전쟁은 끝나가지만 평화를 정착하는 새로운 도전 속으로 스리랑카는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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