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누구의 ‘애’를 끊는가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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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을 겪었던 조선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에서 얻는 교훈

역사상 별의별 전쟁이 있었다. 지금도 전쟁은 끊이지 않고 전쟁 지역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삶의 풍경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휴전’ 상태로 전쟁의 아수라장을 겪은 세대에게서 당시의 참상과 고통의 시간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으로 징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가는 고초를 당해야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었던 조선 시대 백성은 목숨을 걸고 참전하고, 전쟁이 끝나면 그 피해를 복구하면서 평생을 전쟁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를 쓴 저자는 ‘민중’의 입장에 서서 전쟁의 원인과 피해를 정리하면서 전쟁 중의 민중의 삶도 엿보았다. 일부 권력층, 군수산업체 관계자, 군수 상인 등은 전쟁으로 혜택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혜택은 언제나 민중의 이해와는 상관없었고, 고통은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었다. 저자는 ‘옛사람에게도 물어’ 그것을 증명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두 전쟁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한 결과물이다.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배경을 살펴보면, 100년 넘게 내전을 치르면서 과대할 정도로 팽창한 군사력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군인들이 싸움터에 나갈 일이 없어지자 범죄나 폭력을 일삼아 일본 본국의 치안이 불안해질 우려가 상당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또 다른 이유에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눠줄 땅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본의 최고 통치자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하들에게 상금으로 나눠줄 땅이 없으면 그들의 충성을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조선과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가난한 백성들을 죽이고 산자들조차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 베트남 전쟁에서 작전 중인 군인들. ⓒ타임스퀘어 제공

이런 전쟁에 대한 위협은 평화시 백성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조선 시대에 16세 이상의 성인 남자는 60세까지 군역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60세까지라면 거의 평생을 군역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군역의 부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代立) 제도나, 일정량의 군포를 납부하고 그해의 군역을 면제받는 방군수포 제도가 생기기도 했다. 무기까지 군역의 의무가 있는 백성이 구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난한 백성은 논밭을 팔아 무기를 구비하기도 하는 등 폐단이 많았다. 정약용이 쓴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보면 한 남자가 갓 낳은 자식에게까지 지우는 군포 부담에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성기를 식칼로 절단하는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매번 수탈당하던 조선 시대 백성은 고향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거나, 자해를 해서라도 군역을 면제받으려는 극한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식량 전쟁 등 보이지 않는 전쟁도 대비해야

저자는 책을 정리하면서,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므로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식량 사정은 계속 불안해지고 있는데, 국제 곡물 시장을 소수의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것을 보자. 만일 식량 부족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이런 기업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분명하다. 식량이 곧 핵폭탄 이상의 무기가 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저자는 곧 다가올 식량 전쟁에 대비하는 등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며 어떻게 이 위험을 타개해 나갈 것인지 옛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쟁을 불러오는 ‘적’은 아주 가까이 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환경 문제, 식량 문제, 에너지 문제 등 인류는 전쟁을 부르는 요인들에 둘러싸여 있어 하루도 편치 않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이 준 교훈은 ‘약소국의 설움’이었다. ‘옛사람’에게서 들은 교훈은 ‘민중의 설움’이었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만이 설움당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길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두려운 법, 에너지·식량 전쟁 등에도 대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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