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미·일 관계 그 뿌리도 변할까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09.11.10 16: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 등에서는 ‘불협화음’ 드러내

▲ 지난 9월23일 미국 뉴욕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월2일 하토야마 정권이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중의원 예산위원회가 열렸다. 과거와 달라진 풍경이 펼쳐졌다. 우선 좌석 배치가 달라졌다. 정부 참고인으로서 관료들이 앉던 자리에는 부대신과 정무관들이 자리 잡았다. 관료들의 답변은 일체 없었다. 자민당 시절 국회가 열릴 때마다 관료들이 만든 기본 자료에 의존하던 방식도 타파했다. 관료에서 탈피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민당과 공명당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간 나오토 부총재 겸 국가전략국장은 “관료들이 기존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지혜와 머리를 쓰지 않는다. 성적만 좋지, 바보들이다”라며 원색적으로 관료들을 비난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오랜 세월 타성에 젖어 관료들이 주도해 온 모습이라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했다. 변화하는 모습은 관료 사회에 대한 태도뿐만이 아니다. 각종 공공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은 6조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되는 얀반댐 공사를 중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외교·안전 보장 문제가 놓여 있다. 미·일 관계가 재설정되고 있다. 대등한 파트너로서 미·일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하토야마 총리의 생각이다. 그는 그 예로 자민당 시절의 이라크 파병과 인도양에서의 급유 지원 문제를 거론했다. 아프가니스탄 지원을 위한 자위대 파견에 대해 소수라고 하더라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년 1월에 만료되는 인도양에서의 해상자위대 급유 지원 활동에 대해서도 기한이 만료되면 철수하겠다고 천명했다.

오는 11월12일 오마바 대통령과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지 의문시되는 형국이다. 대등한 미·일 관계의 시운전이 시작되었다. 미·일 관계의 불협화음이 노정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민당 정권하의 외교 관계는 미·일 동맹 관계를 기본축으로 해왔다. 대신으로 발탁된 사람들은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맡은 부처의 운영에 대한 기본 생각과 임명권자인 총리로부터 받은 기본 지침을 낭독하는데, 외상의 경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미·일 동맹 관계를 기본 축으로 해서…”라는 표현이었다. 거의 무조건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최우선시해왔다. 이처럼 굳건했던 미·일 동맹 관계가 재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하토야먀 총리는 양국 관계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켜 나가겠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토야마 총리, ‘대등한 파트너’로서 정책 추진

불협화음의 대표적인 예는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해병대의 후텐바 비행장 기지 이전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자민당 정권에서 약속했던 안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안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이 문제는 “미·일과 오키나와 현 사람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라며 미국의 주장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그동안의 미국과의 일방적인 관계에 쐐기를 막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11월12일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매듭을 지어야 한다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은근한 불만이 공개적인 불만이 되면서 미·일 관계의 불협화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불협화음은 점점 더 커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회담 일정을 합의해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엇박자를 드러냈다.

 또, 민주당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야당 시절에 미국 대사가 오자와 간사장을 만났을 때 이라크 지원 문제나 인도양에서의 급유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의원들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자와 간사장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민주당 의원들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당과 정부를 이끌고 있는 총리, 외상 그리고 당 간사장 등 핵심 3인의 기본 노선이 예상했던 대로 가시화되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당과의 정책적인 노선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이번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민당은 하토야마 정권의 가장 큰 취약점이 외교·안전 보장 문제라고 규정하고 연일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자민당 시절 외상과 관방상을 역임한 마치무라 노부타카 의원과 오오시마 타다모리 간사장 두 백전노장이 현 정부의 외교·안전 보장 정책의 난맥상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민주당 내에서도 미·일 간의 불협화음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본의 안보는 현 시점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연립 여당 내에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모지 미키오 국민신당 의원은 “미·일 간에 합의한 사항이 오키나와 현의 동의가 없으면 진행되지 않는다”라며 현 정부의 대미 노선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일거에 미·일 관계가 냉각되거나 동맹 관계에 균열이 생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번 국회 답변에서 미·일 동맹은 일본 외교 정책의 기본축이라고 강조했다. 핵군축, 핵확산 방지에 대해서는 미국과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정권의 외교의 기본 노선이 전통적인 미·일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우애 외교 철학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한 이는 불가피하다. 양국이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동등한 관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일 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중·일과 동아시아 관계에서 우애 정신의 외교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우애 외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외교적인 면 외에도 날로 커지는 한·중·일과 동아시아 시장에 일본의 미래가 있음을 인지하는 국익적인 측면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자민당 내 일부 세력이 검토했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현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또,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절대 없다고 단언하는 부분도 정치적 철학과 맥을 같이하지만 국익과 경제적인 측면을 배려한 결정이기도 하다.

하토야마 총리가 펼치는 외교의 궁극적 지향점은 미·일 동맹 관계를 축으로 하며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고 궁극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평화와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급하게 바뀌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일본 국민들은 하토야마 정부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변화의 벡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이 반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