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익스플로러 중독’에 빠진 한국
  • 김규태 |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싸이컴 대 ()
  • 승인 2009.12.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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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이용자 98%가 사용…파이어폭스가 선전하는 세계적 추세와는 대조적

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두 집단으로 나뉜다. ‘파이어폭스, 사파리, 크롬…’ 등을 사용하는 사람과 오로지 ‘인터넷익스플로러’(IE)만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모두 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파이어폭스는 IE에 밀려서 사라진 넷스케이프의 소스를 활용해 비영리 단체인 모질라가 개발한 웹부라우저이다. 크롬은 구글이, 사파리는 애플이 만든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넷애플리케이션스는 지난 11월 초 파이어폭스의 점유율이 24.07%를 넘었다고 밝혔다.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 네 명 중 한 명이 사용하는 셈이다. 이 분야의 1위 프로그램인 IE의 점유율은 5년 전 90%에서 64.6% 정도로 낮아졌다. IE 버전이 여러 개인 점을 감안한다면, 파이어폭스가 IE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IE 6.0’의 점유율 23.3%를 추월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IMF·IT 열풍·글로벌 기업·정책 등이 엮어낸 기술 시스템

그러나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IE 시리즈가 점유율 98%를 차지하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파이어폭스가 속도 등에서 더 빠른 것 등 장점이 있는데도 국내 사용자들 사이에서 크게 확산되지 않는 것은 IE가 한국 정보기술(IT) 사회에서 복잡한 기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기술 시스템으로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기술 시스템이란 특정 기술이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진 거대 체계를 의미한다. 특정 기술과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이 오랜 시간 관계를 이루고 복잡하게 엮이면서 일종의 궤적을 형성해 관성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초고속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IE를 둘러싼 기술 시스템이 단단하게 정착했다. 특히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9년 이후부터 청년 실업 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기술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홈페이지 제작 및 소프트웨어 코딩 작업을 위한 교육이 수년간 지속되었다. 당시 글로벌 IT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 IE 기반 인터넷 브라우저에 강점을 가진 ‘액티브X’ 등을 교육했다. 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각 기업 및 기관의 웹 관리자로 자리를 잡으면서 국내 대다수 사이트가 액티브X 등에 기반 서비스를 한다.

액티브X 등을 기초로 한 서비스는 화려한 국내 웹 서비스에 기여했지만 기대하지 않은 효과도 유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인터넷의 IE에 대한 의존성이다. MS의 IE 무료 배포, 한국 특유의 1등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 추종, IT 교육,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확산과 웹 열풍 등이 서로 엮이면서 지금과 같은 ‘IE 중독증’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파이어폭스와 같이 다른 브라우저를 사용할 경우, 인터넷 뱅킹 등의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때 ‘넷스케이프 6.0 사용자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만나게 된다. 결국, 단순 검색 이외에 전자 금융·상거래 등의 비교적 복잡한 인터넷 행위는 할 수 없다. 해외에서 오픈 소스 기반의 파이어폭스 등이 선전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인터넷 기술 시스템이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시스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정 기술을 기술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문화·사회·정치·행정 등의 다양한 환경이 묶인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최근 학문의 추세이다. 따라서 기술은 특정 궤적을 형성하고 관성을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수정이 어려우니 도입 때부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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