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구 정국’ , 박근혜 대세론 키우나
  • 감명국 ·조진범(영남일보 정치팀장)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2.08 16: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와 친이계, ‘안원구 X파일’까지 터져 도덕성 위기 몰리자 “일단은 친박과 손잡을 때”…친박계 “친이계의 위기가 우리에겐 곧 기회”

▲ 11월29일 고 육영수 여사 탄신제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3당 합당을 통해 일약 ‘비주류’에서 여권의 대선 후보를 꿰차고, 대통령까지 오른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있지 않느냐.”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계’ 쪽의 발언이 아니다. 최근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이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인사로부터 들었다며 기자에게 전해준 말이다.

정국의 흐름이 숨 가쁘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4대강 사업’ 논란이 요란하더니만, 세종시가 그 위를 덮었고, 또다시 최근에는 국세청 로비 의혹과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문제를 정면에서 거론한 이른바 ‘안원구 X파일’이 여권을 강타하고 있다. 그야말로 청와대와 여권 주류(친이계)로서는 ‘산 넘어 산’이다. 최근 친박계를 바라보는 친이계의 시선이 부쩍 부드러워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친박계 의원은 “친이계 핵심 인사가 YS를 거론하며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를 우호적으로 얘기했다. YS가 소수파의 수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대선 후보를 거머쥔 것처럼 박 전 대표도 한나라당의 소수파인 친박계를 이끌고 얼마든지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라고 밝혔다. 흥미롭다. 이 인사가 갖는 친이계 내부의 위치와 비중을 감안했을 때 단순한 덕담 수준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를 YS와 비교한 자체가 그렇다. YS가 1992년 대선에서 ‘민주계’ 보스라는 소수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결국 최대 계파인 ‘민정계’를 끌어들여 ‘신민주계’로 체질을 변화시킨 뒤 정권을 잡았듯이, 박 전 대표도 ‘친이계’를 ‘범박계’로 체질 변화시켜 정권을 잡을 수도 있음을 은근히 빗댄 표현이라는 뜻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도 결국은 ‘YS 대세론’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되면 그 흐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다른 대안이 없다면, 결국 박 전 대표를 차기 대선 후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박 전 대표를 끌어안아야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절박함도 묻어난다. ‘미래의 권력’을 인정할 테니 공생(共生)하자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박 전 대표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YS의 행보와 닮았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당시 YS는 최대 계파인 민정계에 밀려 한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나, 위기 때마다 대통령에 도전하는 특유의 승부수를 띄우면서 결국 후계자 낙점을 받았다. 박 전 대표도 승부사적인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평소 침묵하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한마디’를 터뜨린다. 

박 전 대표의 ‘힘’은 국민 여론조사 지지율로부터 나온다. 역시 20년 전 YS와 닮은꼴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박 전 대표는 여당 내에서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혔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 흔치 않은 일이다. 한나라당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정권 출범 때부터 확실한 여당 대권 주자가 존재한 것도 그렇고, 현안에 대해 여당 내에 찬반의 목소리가 이토록 뚜렷하기도 처음이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 중반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한자릿수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는 여권의 다른 주자들을 압도한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박근혜 대세론’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이다. ‘도덕성’도 박 전 대표의 무기이다. 이대통령의 도덕성을 야당에서 물고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의 깨끗한 이미지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종시 문제로 정면 충돌할 경우 시나리오는 또 달라져

물론 ‘박근혜 대세론’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당장 세종시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달라질 수 있다. 대구의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나올 경우 (친박과 친이의) 정면 충돌이냐, 대화합이냐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민과 충청도민을 만족시킨다면 박 전 대표도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과 충청도민을 모두 만족시키는 안을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데 있다”라고 전망했다. 세종시 문제는 꽤 복잡하다. 당초 박 전 대표의 ‘꽃놀이패’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이대통령의 ‘어깃장 승부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실 정치에서 터져나오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주호영 특임장관만 해도 그렇다. 이대통령의 신임을 톡톡히 받고 있지만, 세종시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이대통령이나 정운찬 총리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평이다. 세종시 문제가 다른 지역의 역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절대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총리실에 주문하고 있다. 주장관측은 최근 ‘박 전 대표의 상대역이 정총리에서 특임장관으로 옮겨갔다’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정말 힘이 빠진다. 대구에 지역구를 둔 의원으로서 박 전 대표와 맞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섭섭해했다는 후문이다.

전혀 상반된 주장을 펴는 인사들도 꽤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향후 세종시 문제가 이대통령보다는 박 전 대표에게 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친이계와 마찬가지로 친박계 역시 ‘세종시 출구 전략’을 동시에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친박계 일각에서는 세종시 부작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남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세종시 수정 여론을 살펴보면 지식층과 수도권, 30~50대가 수정에 찬성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너무 완고한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국가 지도자로서 정책의 유연성과 적절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굳이 원안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출구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대통령, 정권 재창출하려는 의지로 박 전 대표 껴안을 수도

세종시 문제와 안원구 X파일 논란 등 최근 정국의 주요 이슈가 ‘박근혜 대세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끝내 정면 충돌한다면 내년 초 ‘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서로에게 탈당을 요구하며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따른 상처나 후유증은 비주류보다는 당연히 주류 몫이라는 점에서 청와대와 친이계의 고민이 묻어난다. 따라서 한 차례 회오리가 일겠지만 ‘분당(分黨)’ 소리가 나올 정도까지의 심각한 다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주로 친이계와 친박계 주화파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이대통령의 결심도 박근혜 대세론의 변수이다. 도덕성 논란을 잠재우고 그나마 이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는 정권 재창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 교체는 어떤 불상사를 부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대통령에게 준 교훈이다.

여권 내에서 박 전 대표를 위협할 만한 확고한 대선 주자가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 싫어도 ‘적과 동침’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이대통령이 어느 시점에 박 전 대표를 적극 껴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