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바이오 의약품, 꿈의 시장인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2.29 15: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2년부터 특허 만료되는 대형 바이오 약품 급증…대기업도 뛰어들어 시장 규모 급팽창 중

ⓒ일러스트 박현정


약을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환자에게 약값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대체약이 없는 경우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약값을 감당해야 한다. 약에는 특허권이 있어서 다른 제약사는 일정 기간 개발 능력이 있어도 동일한 약을 만들 수 없다.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제약사는 오리지널 신약에 투자된 시간과 비용의 10분의 1 정도로 복제약을 개발할 수 있다. 효과는 같으면서 가격은 오리지널 신약의 50~80% 선에서 복제약이 시중에 풀린다. 환자들 처지에서는 약이 다양해지는 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지므로 반길 일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약품은 크게 합성(chemical) 약품과 바이오(bio) 약품으로 나뉜다. 합성 약품은 화학물질을, 바이오 약품은 살아 있는 생물에서 뽑아낸 물질을 재료로 만든다. 현재 사용하는 약품 10개 중 일곱 개는 합성 약품이다. 2000년 초만 해도 합성 약품이 전체 의약품의 90%를 차지했지만, 해가 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그 자리를 바이오 약품이 꿰차고 있다. 의약계 마케팅 업체인 이벨류에이트 팔마(evaluate pharma)에 따르면, 2014년에는 합성 약품과 바이오 약품의 비율이 비슷해질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바이오 제약 분야를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삼는 이유이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바이오 약품을 개발하는 데 뛰어드는 제약사가 급증하고 있다. 바이오 약품 개발에는 고난도의 기술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바이오 약품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은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를 그 디딤돌로 삼는다. 특허가 만료된 합성 약품의 복제약을 제네릭(generic), 바이오 약품의 복제약을 바이오시밀러 또는 바이오 복제약이라고 한다. 

제약사는 무엇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술을 토대로 바이오 신약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경우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시장에 연착륙하고 기술을 축적하는 데 바이오시밀러만큼 먹음직한 먹잇감도 없기 때문이다. 때마침 연매출 10억 달러 이상인 대형 바이오 약품의 특허 만료가 2012년부터 급증한다. 관절염약 엔브렐, 빈혈약 엔포젠, 림프종약 리툭산, 백혈병약 뉴라스타, 당뇨병약 란투스 등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50여 개 바이오 약품의 특허가 만료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3조원이던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2015년 32조원으로 급팽창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은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임상시험 조건과 방법 등 바이오시밀러를 승인하고 허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완비했다. 미국도 11월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한국도 지난 7월 관련법을 고시했다. 성장호르몬과 인터페론 등 일부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 제약사들도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가 5천억원을 투자하며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약사와 대기업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넘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첩첩이다. 합성 약품은 화학물질이나 제조 방법을 원래의 제품과 다르게 하더라도 최종 결과물만 같으면 동등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다르다. 제조 과정에 따라 최종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 심지어 동일한 제조 과정을 거쳐도 누가, 언제 만들었느냐에 따라 서로 전혀 다른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리지널 바이오 약품과 완전히 동일한 약품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사하다는 의미의 ‘시밀러(similar)’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형래 한국화학연구원 난치성질환치료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적은 불순물이나 함량 차이로도 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바이오 약품과 효능이 동등하다는 점을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동등성을 입증하는 첫 단추가 전 임상 단계(동물 시험)이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제약사는 전 임상시험 기관(CRO)에 동물 실험을 의뢰한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KIT)가 대표적인 CRO이다. 권명상 안전성평가연구소 소장은 “사람과 종간 차이가 가장 적은 영장류 실험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 본 연구소는 2003년부터 영장류를 준비했고, 현재 1천 마리의 원숭이를 보유하고 있다.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들, 기술력 있어도 실험 경험은 거의 없어

▲ 제약사들은 바이오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해 바이오시밀러를 디딤돌로 삼는다. 위는 한올제약 바이오연구소 연구원이 약의 바이러스 억제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 모습. ⓒ한올제약 바이오연구소

이에 대해 제약사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제약사 연구원은 “기술력은 있지만 실험 경험이 거의 없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드는 제약사는 국내보다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CRO의 실험 결과가 필요하다. 경험이 없는 KIT에 시험을 맡길 제약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KIT의 실험 의뢰 비용이 외국의 CRO보다 싸지도 않다”라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 진출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다. 시장에는 선점 효과가 존재한다. 오리지널 바이오 약품에 익숙한 의사나 환자가 바이오시밀러로 바꾸어 사용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바이오시밀러를 선택할리도 없다. 이 선점 효과는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이다. 김현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만으로는 바이오 신약을 따라잡을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을 상대로 따라잡기(catch-up) 전략으로는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선진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뛰어넘기(leap-frogging)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기업은 결코 바이오 신약 개발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제약사들은 이런 숙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상 중이다. 박승국 한올제약 바이오연구소 소장은 “환자가 불편해하는 부분을 기술적으로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매일 먹던 약을 1주일에 한 번 투약해도 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바이오시밀러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이를 슈퍼 바이오시밀러 또는 차세대 개량형 바이오 약품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환자는 바이오시밀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수요를 잘 알고 있는 제약사에게 바이오시밀러는 든든한 현금 창출 창구임에 틀림없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 신약까지 개발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시쳇말로 제약사들이 대박의 꿈을 안고 바이오시밀러에 뛰어드는 이유이다. 그러나 기술력과 투자력이 부실하면 대박의 꿈은 쪽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