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제로 지대’ 섬마을 학교의 이유 있는 기적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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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작은 학교가 대형 사고를 쳤다. 3학년 학생 전원이 대학 입시에 합격했다. 과외는커녕 학원도 한 번 다닌 적이 없다. 입시 지옥이니 사교육 광풍이니 하는 말은 딴 동네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25명의 예비 졸

ⓒ시사저널 임영무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뱃길로 15분 정도 걸리는 교동도의 행정구역상 지명이다. 인구는 3천6백명 정도 된다. 드넓은 평야와 맞닿은 서해를 무대로 펼쳐지는 낙조가 일품인 섬이다. 하지만 북한과의 거리가 3㎞ 남짓해 경비가 삼엄하다 보니 외지인의 발길은 잦지 않다. 인적 사항과 방문 목적을 군부대에 알리고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오를 수 있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이 요즘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섬 내에 유일한 고등학교인 교동고에 다니는 3학년 학생 전원이 대학에 합격하는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5명의 예비 졸업생 가운데 진학할 학교를 찾지 못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다.

특히 ‘사교육 무풍 지대’에서 일구어낸 성과라 기쁨이 더 크다. 과외는커녕 섬 내에는 학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육지로 나가는 배도 오후 5시면 모두 끊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입시생 전부가 대학에 합격하는 경사를 맞았으니 마을 곳곳에 축하 현수막이 내걸린 것은 당연하다.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자 평소 구경하기도 힘들던 방송국 취재 차량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섬마을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학교-학부모-지역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어낸, 농어촌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른 화제의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교동고는 학년별로 한 학급씩 세 학급에 전교생이 62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이다. 교동중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섬을 떠나고,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이 섬에 남아 이 학교로 진학을 한다. 지난해에도 교동중 졸업생 20명 가운데 7명이 육지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다. 1~7등을 했던 상위권 학생들이 전부 육지로 간 것이다.

교사도 교장과 교감을 포함해 12명에 불과하다. 한 교사가 보통 서너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생물 교사가 화학과 물리는 물론 한문 과목까지 맡는 식이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러 가족을 만나는 기러기 신세이기도 하다. 대부분 승진을 앞두고 ‘도서지방 가산점’을 받기 위해 낙도 학교를 지원해 온 교사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느 시골 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 진학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학생들은 기초 학습이 부족한 상태였고, 교사들에게는 3년이 지나면 떠나야 할 학교였다. 학부모들도 따로 교육을 시킬 형편이 아니었다. 방과 후 학교나 야간 자율 학습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변화의 바람은 지난해 초 전종공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이 섬 출신인 전교장은 처음 도입된 학교장 초빙제에 지원해 주민들로부터 낙점을 받았다. 전교장은 “30여 년 교직 생활을 외지에서 했지만, 교장직은 고향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초빙 교장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응모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교동고는 농어촌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변신에 나섰다.

교육 환경부터 개선했다. 커튼을 새로 달고 사물함을 교체해 교실 분위기를 바꾸었다. 또, 개인 독서대를 갖춘 면학실을 마련해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 주변 숲길에 가로등을 설치해 하굣길을 밝게 만들었다. 점심은 물론 저녁 식사도 학교 급식으로 전환해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였다. 통학버스도 두 대 마련했다. 한 인천시의원의 도움을 받아 시청으로부터 대여받은 차량이다. 대중교통이 없다보니 이전에는 학부모들이 일일이 차로 태워다줘야 했다. 일부 학생들은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해 등·하교를 했는데, 이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 교통사고 위험까지 높았다. 섬마을의 오랜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학교가 나서서 해결해준 셈이다.

외부 환경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내실도 다져나갔다. 공교육 강화는 비단 이 학교만의 과제는 아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 교동고는 맞춤형 교육을 선택했다. 학생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실력에 따라 반을 나누는 무학년제로 방과 후 학교를 운영했다. 여기에 개인 지도까지 더해져 학습 효과를 높였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작성한 ‘핵심 노트’에 교사들이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는 세심함도 보였다. 수강료는 대부분 군청 등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한 해 동안 5백 시간 이상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낸 수강료는 다 합쳐서 20만원이 채 안 된다. 강의 수준도 도시에 있는 유명 학원 못지않다. 교사들 대부분이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고, 학생 지도에도 능통한 백전노장들이다. 섬마을을 지키는 해병대 장병들도 힘을 보탰다. 지난해 1학기 때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교포 2세 오주영 병장이 영어를 가르쳤고, 여름 방학부터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다 휴학한 손동영 병장이 수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대 차원에서 차량을 지원하고 근무를 조정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손병장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 입시 경험을 먼저 한 선배로 다가갔다. 처음에는 좀 서먹했지만 지금은 다들 친해졌다. 겨울 방학에도 강의가 계획되어 있는데, 올해 3월 전역하기 전까지는 계속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수업 중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평소에는 ‘형’이나 ‘오빠’로 불린다.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관행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전교장이 취임을 하면서 “평일에는 10시까지 방과 후 수업과 자율 학습을 하고,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등교해 1년 내내 학교 문을 열어놓겠다”라고 선언하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료 교사들의 이해부터 구해야 했다. 한 교사는 “고약한 교장 때문에 힘들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조정 단계를 가졌다. 어떻게 해야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여러 차례 난상 토론을 펼친 후, 일요일과 넷째 주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등교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주변 상인들은 수업이 늦게 끝나니까 손님이 줄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전교장은 이러한 불만이 나온 데는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도 높게 변화를 주문했지만 처음에는 ‘그래봤자 얼마나 가겠느냐’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예전에도 교장이 새로 취임하면 한동안 의욕을 보이다가 몇 달 지나면 똑같아졌다는 것이다. 외지에서 온 교사들에게는 ‘점수 따러 왔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육지로 나갔던 학생들도 다시 돌아와

▲ 손동영 병장이 교동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손병장은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임영무

하지만 꾸준한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어갔다. 학습 열기가 높아지면서 학교에 대한 믿음도 쌓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학교의 변화에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격려했다. 학생들도 학교 생활에 흥미를 붙여갔고,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자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는 일이 늘어나면서 대외 활동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밤늦도록 환하게 불을 밝힌 학교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문관식 교감은 “처음에 가졌던 인식이 1백80˚ 바뀌었다.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들 신뢰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전원 합격한 것도 그렇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한 학생들이 많아 더욱 값진 결과였다. 과외는 고사하고 변변한 참고서도 없었다. 선배들이 물려준 교과서와 문제집을 복사해서 공부했다. 보충 수업용으로 학교에서 만들어준 학습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네 개 대학에 합격해 화제가 된 장효선양은 거동이 불편한 팔순 할머니를 모시면서 고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 동생들도 돌보고 있는 소녀 가장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입 원서 비용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공부를 꼭 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장양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부터 났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고생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전산 오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믿기지도 않았다. 다음 날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실감이 났다. 할머니도 어깨를 으쓱이시면서 좋아하셨다”라고 말했다. 장양은 고려대에도 합격했지만 인하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사연이 남다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유언에 따라 대학에 시신을 기증했다. 그 학교가 인하대였다. 이 때문에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있는 인하대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이제 그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뒤따랐다. 학비 때문이었다. 다행히 대학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부담을 덜었다. 생활비도 문제여서 기숙사 신청을 했는데, 그 비용도 학교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장양은 대학 생활이 자리 잡히면 봉사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졸업한 이후에도 해외에 나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박일목군은 올해 초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두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아버지는 이 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4년제 대학에도 붙었지만 인하공전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박군에게도 익명의 독지가가 나서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외에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고마운 사람들이 여럿 된다.

교동고가 거둔 성과가 알려지면서 또 다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지난해 교동중을 졸업한 후 육지로 나갔던 학생 중 3명이 섬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전학을 온 것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도시 학부모들로부터 전화도 여러 통 걸려왔다고 한다. 모두 입학과 전학 절차를 묻는 상담 전화였다.

학교측은 기숙사 문제만 해결된다면 육지에서 들어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다가 지난해처럼 학습 능력까지 끌어올리는 성과가 계속 이어진다면 섬마을 작은 학교가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사저널 임영무
인터뷰 | 전종공 교동고 교장

섬마을 학생들이 전원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된 데는 전종공 교장의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교장은 학생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일깨우고, 교사들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교장에 부임하면서 가장 우선에 둔 과제는 무엇인가?

희망을 주는 교육을 먼저 생각했다. 교사들이 정성껏 가르치면 학생들의 묻혀 있던 자질이 꽃필 것이라고 자신했다. 모두가 그러한 희열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작은 학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처음 주변 반응은 어떠했나?

‘얼마나 가겠느냐’는 미덥지 못해 한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너무 의식했다면 과감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교육 환경부터 바꿔나갔다. 그동안 왜 이런 환경 속에 학생들을 방치해두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했다. 군수와 직접 면담해 지원을 요청하는 등 주변에 도움도 청했다. 다들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학부모들의 부담은 줄이고 걱정도 해소시켰다. 점차 학부모들 사이에서 ‘제대로 한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학교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박수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교육 없이 좋은 성과를 냈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가 변해야 한다. 교장을 비롯해 교사들이 변해야 학생도 변하고 학부모도 변한다. 무조건 학원에 가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학교 교육이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성과를 처음부터 기대했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취임해서 첫 번째 맞은 토요일에 학생들이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아침에 사택을 나서는데 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100% 출석을 했다. 뭔가 되는구나 싶었다. 이제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준비한 계획대로 잘 되었다. 올해는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교장이 왔을 때 학교가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임기 내에 시스템을 뿌리내리고 싶다. 그러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기숙사를 마련해야 한다. 기숙형 시스템을 갖추면 훨씬 더 경쟁력 높은 학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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