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 명줄 ‘위기의 남자’ 손에…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10.01.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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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간사장, 정치 자금 문제로 사임 압박 벼랑에 몰려

▲ 일본 민주당의 오자와 간사장이 1월16일 도쿄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연설한 뒤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

“지난해 3월 니시마쓰건설의 거액 헌금 사건으로 자신의 비서가 기소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국민들에게 설명을 한 결과 국민들로부터 이해를 구해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일본 민주당의 오자와 간사장이 자신의 정치 자금 관리 단체인 리쿠잔카이가 정치 자금 규정법을 위반하고, 비서였던 이시가와 토모히로 현 중의원이 검찰에 체포되고 난 뒤 한 말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이번 정치 자금 문제도 지난해 3월 니시마쓰건설 사건과 기본적으로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정치 자금 관리에 관한 한 살아 있는 일본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노련하다고 평가된다. 오랜 정치 경험상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하루빨리 사건을 정리하고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진두 지휘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공정한 수사라는 전제하에 검찰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겠다는 다소 여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의원들이 거당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그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현 시점에서 민주당은 일사불란하다. 오자와 간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과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 많은 국민이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 생명이 이번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고 판단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문제의 발단은 오자와의 정치 자금 관리 단체인 리쿠잔카이가 2004년 10월 도쿄에 있는 땅 4백76㎡를 3억4천만 엔에 사들이는 데 돈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구입 자금 일부를 건설업자로부터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공방이다. 이 문제로 비서 출신인 이시가와 토모히로 중의원이 지난 1월15일 전격 체포되었다.

오자와 간사장은 관록 있고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정치 자금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고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학력과 어려운 살림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흉내 내면서 서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일본 열도 개조론’을 부르짖으며 지역 발전을 위해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계로부터 많은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국, 고향인 니이가타의 이권 개입에 관여한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사임하라는 압박을 받아오다 록히드 사건으로 체포되어 구속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수제자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해 온 오자와는 정치 사부의 정치적 부침과 정치 자금 문제 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성장했다. 이런 연유로 오자와는 정치에서 돈과 그 돈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이 되었다. 정치란 수의 정치이고, 수는 돈에서 나온다는 금권 정치의 길을 오래 걸어온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 역정에 자주 흠이 보이는 이유였다.

환호 사라진 민주당, 당 구하려 리더 교체 등 정치적 전환 모색할 수도

▲ 1월16일 일본 우익 단체의 한 회원이 민주당 회의가 열린 건물 앞에서 오자와 간사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EPA 연합

그는 또 자신이 자유당 당수로 있던 시절에 당을 해체하면서 정당교부금을 국고에 반환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7월 중의원 선거 직전에 정치 자금 사건으로 자신의 비서가 체포되면서 대표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제 정치적 사부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처럼 오자와 간사장도 정치적 시련의 길에 들어섰다.

무엇보다도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 1월17~18일 실시된 쿄토통신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권 탄생 이래 처음으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44.1%)가, ‘지지한다’(41.5%)를 넘어섰다. 그리고 오자와가 간사장 및 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73.3%에 이르렀다. 정치 자금 문제와 관련한 해명이 충분치 않다는 여론은 90%에 이르고 있다.

민주당은 1인자와 2인자인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이 정치 자금 문제에 휘말림으로써 당과 정부의 위신이 추락하고 있다. 또, 이번 정치 자금 위반 문제로 내각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자체도 동요하고 있다. 겉으로는 일사불란하게 검찰에 대응해야 한다며 일전을 외치고 있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오자와 개인의 당이 아니기 때문에 당의 위상에 문제를 주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사퇴해야 한다는 말이다.

야당인 자민당도 벼르고 있다. 정기국회가 열리자마자 하토야마 총리의 위장 헌금 사건과 오자와 간사장의 자금 관리 단체를 두고 정치 자금 규정법을 위반했다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또 오자와 간사장에게 최선을 다해 싸우라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궁지에 몰렸다. 행정 수반인 총리가 간사장에게 검찰과 싸우라는 말을 할 리가 있느냐며 한 발짝 물러섰지만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하토야마 정부와 오자와 간사장은 정권 탄생 이래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고자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고 있다. 당의 지지도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야당인 자민당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위기에서 탈출할 희망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 여론이 반영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검찰도 야당도 아무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자와 간사장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 그리 간단치 않다. 검찰에서 정치 자금 규정법을 위반한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진다면 오자와 간사장은 물론이고 민주당 자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정치 자금 규정법 위반에 대해 무죄 판정이 나온다고 해도 이미 신뢰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지휘봉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부총재 겸 재무상인 간 나오토 씨가 적임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배경이다. 당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추락할 경우 7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리더를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경우의 수이다.

100일을 겨우 넘긴 민주당 정권이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미국과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협상은 아직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공공 사업을 20% 줄임에 따라 경기 침체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등 민생 경제에 대한 해결책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공식적으로 궁지에 몰린 오자와 간사장을 신뢰한다고 표명했다. 하지만 당을 구하기 위해 오자와를 버려야 하는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권력이 양분화되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오자와 간사장과 갈등을 빚어온 하토아먀 총리로서는 강력한 1인 지도 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조금이라도 비치면 오자와 지지 세력으로부터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신하고 있다.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에는 지금, 환호는 사라지고 암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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