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사각지대에 ‘민간 조사관’ 있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2.0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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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탐정’으로서 새는 범죄 막는 역할 맡아…활동 영역 넓어져 업체 수도 서울 2백여 개 등 급증

▲ 한국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회장(오른쪽)과 박민호 경기남부 지부장이 지문을 채집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중학교 교장인 이 아무개씨는 최근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했다. 몇 달 전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며 한 여성을 집으로 데려왔다. 며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일본의 유명 대학에서 유학을 했다는데, 행동이나 말투를 볼 때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이씨는 민간 조사업체에 사실 확인을 의뢰했다. 조사관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조사관의 협조를 받아 정보 수집에 나섰다. 결과는 이씨의 우려대로였다. 이 여성은 해당 대학에 다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1만5천 엔을 주면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한 술집에서 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사기 결혼을 당할 뻔한 셈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배 아무개씨 가족은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배씨가 사고 가해자로 판명이 나면서 보상은커녕 피해자측의 원망과 주변의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더 큰 고통은 사고 경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1년 동안 가슴앓이를 한 끝에 배씨 가족은 민간 조사업체에 재조사를 맡겼다. 조사관은 현장부터 다시 찾았다. 다행히 사고 이후 도로 보수 공사는 없었다. 차량을 폐차할 정도로 큰 사고였던 만큼 새로운 증거를 찾는 데 주력했다. 조사 결과, 1차 충돌 위치가 잘못 알려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목격자로부터 사고 후 차량을 지게차로 옮겼다는 증언도 받아냈다. 배씨 가족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었다며 소송에 들어갔다.

건축업을 하는 최 아무개씨는 하마터면 수백억 원대 사기 사건에 휘말릴 뻔했다. 그는 사무실 분양을 대행한 한 회사의 영업 행태에 대해 뒷말이 나오자 민간 조사업체에 조사를 의뢰했다. 일단 가격을 낮춰 대행 수수료도 없이 분양하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조사관들이 조를 나누어 40여 일 동안 밀착 조사를 펼쳤다. 현장 사진과 동영상 촬영은 물론, 계약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계약 내용을 확인했다. 결과는 한 사무실을 여러 명에게 판매하는 전형적인 분양 사기였다. 최씨는 관련 자료를 경찰에 넘겼고 이 업체 대표는 구속되었다.

이들 사례는 국내에서도 민간 조사관으로 불리는 ‘사립 탐정’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까지 소설 속 명탐정 셜록홈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공권력이 직접 챙기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보이지 않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활동 영역은 넓다. 사람을 찾는 일에서부터 기업의 기밀 유출자를 조사하는 일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보험 범죄를 조사하거나 횡령 비리를 캐는 등 공권력을 보조하는 역할도 맡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조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법정에 제출할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조사이다.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사건에 뛰어들기도 한다.

민간 조사관은 업무 특성상 경찰이나 군인 출신이 각광을 받는다. 수사 경험은 물론 고객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규성 한국민간조사관 대표는 “한번 신뢰를 하면 계속해서 의뢰를 하는 반면, 신용이 깨지면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 그래서 검증이 안 된 자료는 절대 고객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정확도가 떨어지면 일을 안 맡기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 교육을 통해 업무를 미리 익힐 수도 있다. 한국민간조사협회 등에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박민호 한국민간조사협회 경기남부 지부장은 18년 동안 폭력·마약 담당 형사로 활동했다. 현재 한세대 평생교육원에서 민간 조사 과정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민간 조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부터 가르친다”라고 밝혔다.

현재 민간 조사업체 수는 서울에만도 2백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한두 명의 조사관이 모인 개인 사업장이다. 사무실도 없이 영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제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는 10여 개 안팎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조사를 의뢰하기 전에 해당 업체를 신뢰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조사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조사 방식이나 규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을 찾는 데 5백만~1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해외 도피 사범을 찾는 경우 2천만원 이상이 들기도 한다.

관리·감독 안 돼 법과 제도 정비 시급

업체가 난립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관련법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때부터 법안이 추진되었지만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입법을 반대하는 핵심 논리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격과 규제의 기준이 될 법이 없다 보니 오히려 불법적인 행태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한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 회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어느 직업보다 자격 기준이 엄격하고 규제 또한 강화될 것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별도의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 사이에 외국의 대형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업체는 민간 조사업의 가장 큰 고객인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4월 ‘민간 조사 입법’을 제출해놓은 상태이지만,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지난 17대 국회 당시 해당 상임위의 한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 뒷조사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누가 하느냐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법안 통과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경력 5년의 김래건 한국민간조사관 본부장(35)은 군대에서 8년간 헌병대 수사관으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지난 2005년 5월 중사로 퇴역한 이후 곧바로 민간 조사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군복 대신 양복을 입었지만 예의 날카로운 눈빛은 변함이 없다. 그는 “군인일 때보다 더 다양한 사건을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라서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역시 의뢰받은 사건을 깔끔히 해결했을 때이다. 비록 사소한 사건이라도 마무리를 짓고 나면 희열을 느끼게 된다. 국가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의뢰를 받아 유가족에게 도움을 준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한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부 문제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이다. 어느 한쪽의 잘못을 밝혀내면 십중팔구 이혼으로 이어진다.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김본부장은 민간 조사관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성취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무턱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민간 조사관이 하는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조사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사명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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