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역사의 ‘우먼 파워’ 산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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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숙명여자대학교

 

▲ 서울 숙명여자 대학교 건물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2006년 숙명여대는 창학 100주년을 맞아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이날 숙명인들은 기념행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며 ‘세계 최고의 리더십 대학’이라는 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한 결의를 다졌다. 1906년 5월22일 고종 황실의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 고종의 계비)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 여성 사학인 명신여학교를 모태로 한 숙명은 ‘정숙·현명·정대’를 교훈으로 여성 교육과 민족 교육에 진력해 온 학교이다. 당시 명신여학교가 세워진 곳은 한성부 수진방 박동에 위치한 용동궁 4백80평 대지의 75칸 한옥이었다.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 80번지 자리이다. 정경부인 이정숙 여사가 우리 교육 사상 최초의 한국인 여교장으로 취임하고, 치마 저고리에 댕기머리를 땋은 5명의 양반가 딸들이 입학했다. 당시로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그로부터 88년의 세월이 흐른 1994년 3월. 취임식을 가진 제13대 이경숙 총장은 ‘세계적인 명문 여자 대학으로 도약한다’라는 비전으로 ‘제2 창학 운동’을 전개했다.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와 전문 인력의 양성’을 교육 목표로 해, 장·단기 발전 계획(1995~2006년)을 세우고 ‘세계화·정보화·개방화·민족화’라는 특성화 시책을 추진했다. ‘제2 창학 기금’ 마련을 위해 ‘졸업생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이 벌어지자 일제 강점기에 숙명여전을 졸업한 할머니부터 숙명여대 출신 부인을 둔 남편과 숙명여대생의 학부모까지 적극 참여했다.

국문과 졸업생 부인을 둔 ‘사위’인 신일기업 이세웅 회장은 2억원을 기부했고, 음대생 딸을 둔 우림교역 이경수 대표는 1억원을 쾌척했다. 이에 질세라 숙명여전을 나온 영문과 정금자 교수와 국문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정년 퇴임한 김남조 시인(서울대 사대 국어과 출신)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며 각각 3천만원, 1천만원을 기부했다.

숙명여대는 1981년 김옥렬 10대 총장이 취임하면서 모교 출신 총장 시대의 막을 열었다. 김총장은 경기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중간에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브린마워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인 숙명여대 정치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해 정경대학장과 10·11대 총장을 역임했다. 

정규선 총장은 1958년 숙명여대 약학대를 졸업하고, 1961년부터 약학대 교수로 재직했다. 박사학위는 1978년 모교에서 받았으며 학생처장, 학장을 역임하고 12대 총장으로 봉직했다. 1997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숙명인상’을 수상했다.

1백4년의 긴 연륜을 지닌 숙명여대의 역사 가운데서도 특히 현대에 들어 가장 두각을 보인 인물은 4대에 걸쳐 총장을 지낸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일 것이다. 그녀는 1961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때부터 돋보인 존재였다. 재학 중 학생회장을 맡았고, 모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 건너가 197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과 비교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 귀국해 모교 정외과 조교수가 되어 강의를 시작한 후 1985년 정법대학장 자리에 올랐다. 그 사이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 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여의도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뒤 1994년 총장에 올라 정년을 맞은 2008년까지 총장직을 지켰다. 숙명여대와 함께 37년 동안 고락을 함께한 것이다.


 

모교 출신 이경숙 총장 시절 비약적 발전…대외 위상도 올라

그녀는 탁월한 업무 능력과 대인 관계를 바탕으로 숙명여대의 르네상스를 일으켰고, 학교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칭송을 받았다. 총장으로 재임하던 14년간 숙대는 캠퍼스 부지가 두 배, 교내 건축 연면적이 세 배 이상 늘어나는 등 외형적으로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 기간에 신축한 건물만 20동이 넘는다. 덕분에 이 전 총장은 숙명여대에는 없는 ‘토목·건축과 출신 동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취임 첫해 대학 발전기금 1천억원 모금을 선언한 이래 ‘불가능’일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뒤집고 2006년 5월 목표를 달성해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녀의 총장 ‘장기 집권’에 따르는 폐해를 지적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숙명여대 출신 전임 교원들의 모임인 ‘명인회’는 동문끼리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모교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나 다른 학교 출신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 시점에서 숙명여대 전체 전임 교수의 절반 정도가 모교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화학과 출신의 김명자 교수는 이경숙 전 총장의 경기여고 1년 후배이다. 1974년부터 1999년까지 숙명여대 이과대 교수로 재직한 그녀는, 1999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환경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김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2003년 2월까지 자리를 지켜 국내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장관 퇴임 후 그녀는 친정인 숙명여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경숙 전 총장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영어 공교육 강화를 강조하면서 언급한 이른바 ‘아륀지(orange)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본질은 다른 데 있었을 것이다. 이 전 총장은 존경하는 인물로 예수와 윤태림 전 숙명여대 총장을 꼽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부군은 최영상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로서 이 전 총장과 같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생인 이숙자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정외 72)는 성신여대 총장을 역임해 ‘자매 총장’ 탄생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숙자 교수는 숙명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도이다. 5년 터울인 언니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유인선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가 부군으로, 이들 자매와 동서가 모두 교수 집안이다.

이경숙 전 총장의 뒤를 이은 17대 한영실 총장은 출중한 능력에 활달한 성격까지 고루 갖춘 재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의 인일여고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와 동 대학원 식품학 석사·박사를 이수해 ‘신토불이’로 표현되는 숙명여대 ‘토종’ 학자이다. 부산수산대 식품영양학과에서 강의하다 1997년 3월 모교 식품영양학과 부교수로 이적했다. 생활과학부 학부장과 사무처장, 교무처장 겸 산학협력단장을 맡으면서 학사 행정의 경험을 쌓고 2008년 9월 총장 자리에 올랐다. 총장을 맡기 전까지는 8년 동안 학교 내 한국음식연구원 원장을 맡아 운영하면서 식품영양학과 교수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장에 선임되기 전에는 TV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대중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이경숙·숙자 자매처럼 여성 교수들이 교수직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택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박영순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국문 65)의 부군은 육사와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나온 최창근 카이스트 토목과 교수이고, 성낙희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국문 68)의 부군인 김상대 교수는 아주대에서 역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황선혜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영문 76)의 부군인 박성우 교수는 충남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취임 1년째를 맞은 황현숙 동문회장(정외 70)은 요즘 숙명여대 동문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구심점이 될 동문회관 건립을 통해 모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다. 동문 대표들로 구성된 회관건립추진회는 ‘1인 100만원 기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 부위원장인 이경자(영문 67) 동문은 오랜 교직 생활에 이어 방통위 상임위원을 거쳐 현직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뛰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관계에 나가기 전에는 경희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강의했고 경희대 신문방송대학원장, 언론정보대학원장을 지냈다. 방송개발원 원장과 방송진흥원 초대 원장, 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을 지낸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정금화 전 파스퇴르유업 사장(가정 83)의 부군인 최명재 민족사관학교 이사장은 한때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영재학교, 세계에 가장 뛰어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정열을 쏟아 붓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첫 여성 소장인 정희선(약학 78) 동문은 30년이 넘는 그녀의 인생을 이 일에 바쳤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약·독물과 마약이다. 그녀에게는 최초의 여성 국과수 소장이라는 수식어에 덧붙여 ‘최초의 부부 국과수 소장’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남편이 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재 경찰대와 경찰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숙명여대 출신 정치인 중에는 김선미 전 의원(약학 83)이 있다. 2004년에 열린 안성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 당시, 김선미 중앙위원이 노무현 후보 조직위 부위원장을 지낸 홍석완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른 것은 대단한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2002년 갑작스레 세상을 뜬 심규섭 의원(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부인이다. 김후보는 이 경선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상대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달았다. 

2004년 5월~2008년 4월까지 17대 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무소속으로 당적이 바뀌기는 했지만, 지금도 ‘참주인연합’을 이끌며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재계 인물로서 원로인 한상은 배상면주류연구소 대표(국문 49)는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부인이다. 고령임에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막걸리 붐을 타고 새로 개발한 제품의 인기가 높아 또 다른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숙명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선혜 ㈜지오영 대표이사(제약 77)는 최근 골드만삭스로부터 4백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해 사업 확장의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1963년 영문과를 졸업한 홍신자 웃는돌무용단 대표는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 무용과를 이수하고, 뉴욕 등지에서 안무와 실기를 익혔으며 인도에서의 수도 생활도 경험했다. 사물놀이와 춤과 소리, 씻김굿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공연으로 일찍이 한국예술가평론협의회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이름을 올렸다. 윤옥희 전 동덕여대 음악과 교수(음악 58)는 김달회 전 한진관광 사장과의 사이에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이들이 모두 대한항공에 근무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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