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육감 뒤에 그 교육위원 있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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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위원회 위원들, 서울시교육청 비리와 관련해 구설 잇따라…‘견제 기능’ 못한 지 오래

 

▲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내에 있는 서울시 교육위원회 입구. 업무 시간이 지나 정문 셔터가 내려져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2개월 동안 서울시교육청은 쑥대밭이 되었다. 인사·납품 비리 등에 연루된 전·현직 고위직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급기야 공정택 전 교육감도 지난 3월26일 구속되었다. 서울시교육감을 지낸 인사가 구속된 것은 1988년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3월24일 시교육청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초대형 쓰나미가 스쳐 지나간 형국이다.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라며 현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고 교육 비리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교육청 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검찰에 불려갈 ‘살생부’가 나돌았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상당수가 아직도 검찰 문턱을 넘지 않고 있어 새로운 인물이 튀어나올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비리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곳이 바로 ‘서울시 교육위원회’이다. 시교육청 내에 비리가 만연한 배경에는 교육위원들이 있었다. 시교육청을 감시·비판·견제해야 할 교육위가 오히려 교육청을 감싸고 교육감 편에 서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때문에 교육위에서조차 자신들을 ‘할 일 없는 노인정’이라고 하는 자조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세금만 축낸다는 뜻이다.

시교육위에서 만난 한 교육위원은 “서울시 교육위에서 견제 기능이 사라진 지 오래다. 교육위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교육과 학예에 관해 심의·의결하고 각종 현안을 조사·감사하는 일인데, 그동안은 교육청 집행부에서 교육감에게로 넘어오는 것을 그냥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 의회 기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교육위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현재 서울시 5대 교육위원은 15명이다. 지난 2006년 7월31일 학교운영위원회 선거인단 1만5천1백11명이 7개 선출권역으로 나뉘어 선출했다. 그런데 15명 중 11명이 유인종·공정택 전 교육감 시절에 일선 학교 교장이나 장학관, 국장, 교육장 등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이다. 공 전 교육감 밑에서 시교육청의 인사나 시설 공사 등의 전권을 휘둘렀던 인사들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 현안 등을 심의·의결하면서 교육감과 맞서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현 임 아무개 교육위 의장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의장은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로부터 국제중 입학에 유리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여러 구설에 오르고 있다.

임의장의 사촌동생인 강남 지역의 교장 임 아무개씨(59·여)는 얼마 전에 인사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임교장의 남편은 장학사 매관매직으로 구속 기소된 김 아무개 전 서울시 교육정책국장(60)이다. 교육위 의장 본인이나 시교육청 내에 있는 친·인척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등 ‘견제 기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교육감이 하는 일에 반대 안 돼’라는 데 공감한 이유

공 전 교육감 시절 최대 교육 현안이었던 ‘국제중학교 설립’은 시교육청이나 교육위측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문제였다. 교육위원들도 처음에는 국제중을 서둘러 설립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교육위원 15명 중 14명이 ‘설립 유보’로 의견을 모을 정도로 신중하자는 분위기였다. 공 전 교육감도 교육위원들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찬성하는 쪽으로 확 돌아섰다. 교육위원 12명이 여기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교육위원은 “교육감이나 교육위원들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하루아침에 소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게 바로 교육위원들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특별교부금 지원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많았다. ‘특별교부금’은 말 그대로 교육감이 주고 싶은 곳에 줄 수 있는 예산이다. 교육감의 재량에 따라 지원되는 돈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특별교부금’이 비상식적으로 지원되었는데도 교육위원들 대다수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감이 하는 일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시교육청에는 교육청 전체 예산의 약 0.2%를 ‘특별교육수요지원사업비’로 책정하고 있다. 시교육청의 경우 약 1백50억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중 약 25억원이 숭실학원에 지원되었다. 다른 학교의 네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숭실학원은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공 전 교육감에게 3억원을 빌려준 곳이다. 이를 두고 ‘대가성 특혜 시비’가 일었다. 교육위원들 중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표결 대결에서 교육감에 우호적인 측을 이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안들이 비일비재했었다는 것이 일부 교육위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교육감에게 우호적인 교육위원들은 어떤 반대 급부를 얻었을까. 이에 대해 ‘인사 청탁이 결정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즉, 교육위원도 지역구가 있기 때문에 챙겨야 할 사람들이라 청탁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교육위원 선거에서 도움을 주었던 교장들이나 지역 학교에 예산을 따주기 위해 교육감을 도와주고 반대 급부를 얻는다는 것이다. 특히 인사 때에는 ‘교육감 조정 점수’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어느 교육위원이 특정인을 승진시켜야 하는데 인사 점수에서 0.1~0.2점의 근소한 차이가 날 경우 교육감 조정 점수가 당락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사람을 챙기고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서는 교육감과 등을 져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게 불문율이라는 것이다.

인사나 예산 청탁을 하면 메모가 남고, 나중에 교육감이 ‘내가 지난번에 도와줬으니 이번에는 나를 도와달라’고 하면 영락없이 낚시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관계는 좋은 말로 하면 ‘공존 공생’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이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교육을 담보로 ‘검은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교육위원들의 역할에 해당 지역 교육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한다. ‘견제·감시’ 기능에 충실하면 비리 요소가 그만큼 없어지고 교육의 질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가 바로 현 서울시교육청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대한민국 교육계의 ‘반면 교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교육계 의원님’의 권한, 무엇이 있나

교육계의 국회의원으로 불리는 ‘교육위원’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시교육청의 교육·학예와 전체 예산을 심의ㆍ의결하는 권한을 갖는다. 각종 기금을 설치하거나 운용하고, 중요 재산의 취득이나 처분을 결정하는 것도 교육위의 소관이다. 교육감과 보조 기관, 하부 교육 행정 기관, 기타 교육 기관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와 조사를 할 수 있고, 교육감이나 관계 공무원을 출석시키거나 답변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교육감과는 상호 견제와 균형의 관계인 것이다.

한편, 교육위원들에 대한 대우는 각 시·도의 재정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서울시 교육위원의 경우 연봉 5천2백만원을 받고 있다. 의료보험비와 세금 등을 뺀 순수 수령액은 매월 약 4백만원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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