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12만명이 치고 달릴 ‘구장’은?
  • 황건강 인턴기자 ()
  • 승인 2010.05.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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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야구, 지난해보다 55% 증가하는 등 동호인 급증…시설 미비 등으로 ‘생활 체육’ 구호만 요란

 척박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던 사회인 야구동호인들에게 얼마 전 희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4월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 한강공원에 천연 잔디가 깔린 ‘난지 야구장’이 개장한 것이다. 프로야구 관중 6백만 시대가 도래했지만 사회인 야구단의 현실은 그야말로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리그를 진행할 전용 야구장이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흙먼지가 펄펄 날리는 한강 둔치나 학교 운동장 등을 빌려 어렵게 게임을 펼쳐야 했다. 난지도에 천연 잔디 구장이 개장되어 반가운 일이지만 야구동호인들은 전국에 이런 구장이 더 들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에 등록된 야구팀은 5천2백15개 팀 11만9천여 명이다. 지난해 등록했던 3천3백57개 팀에 비해 55% 이상 증가했다.

▲ 한강 난지공원에 마련된 사회인 야구장에서 음악인들로 구성된 천하뮤직야구단이 급조된 프로젝트 팀과 연습 경기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사회인 야구의 열기는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는 데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호인들에게는 현실적인 고민이 뒤따른다. 우선 운영 경비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쓸 만한 야구 장비는 가격이 치솟고 있어 제대로 된 야구용품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중·저가 야구용품이 있지만 오래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야구 장비를 구입하는 데만 해도 초기 비용이 40만~50만원은 든다. 글러브는 10만~15만원, 방망이는 10만~20만원, 운동복과 스파이크는 각각 10만원 안팎이다. 또, 대다수 야구장이 주거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동에 필요한 차량도 필수적이다.

‘야구용품 싸게 사기’라는 카페를 운영 중인 이권 제이엘스포츠 대표는 “올해 야구용품 매출이 50% 이상 늘어났다. 현재 중·고가 야구용품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매를 신청하면 거의 한 달 안에 나오던 유니폼이 지금은 두 달이 지나도 나오기가 힘들다”라며 야구용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야구용품을 구한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리그를 진행할 수 있는 야구장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리그 참가비도 만만치 않다. 서울 시내에서 펼쳐지는 리그에 참가하려면 2백40만~3백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경기도 지역은 이보다 약간 적은 2백만~2백50만원 정도이다. 돈을 주고도 제대로 된 야구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축구에 한 것처럼 행정적 지원만이라도 늘려야

 

지난해 사회인 야구를 시작한 이기봉씨(28)는 “두 시간 동안 경기를 하기 위해 집에서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김포까지 간다. 멀리 갈 때는 충청남도 공주까지 간 적도 있다. 아침 경기라서 경기 하루 전에 공주에서 숙박을 하고 경기를 했다. 그래도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하다. 경기장을 힘들게 마련했는데 눈이나 비가 오면 절망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주 야구를 하기 위해 두 개의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그나마 리그에 참가하는 팀은 행복한 편이다. 야구단을 결성하고도 리그에 참가하지 못하는 팀들이 비일비재하다. 야후코리아 야구동호회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고광호씨(38)는 “지난해 야구단을 창단한 후 6개월 동안은 친선 게임을 하며 연습을 했다. 안정적으로 운동장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인 야구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이 필요해서다. 그러다 보니 야구단을 결성하고도 리그에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장이 필요하고 가장 쉽게 운동장을 구하는 방법은 리그에 가입하는 것인데,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실력이 필요하다는 딜레마가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리그 참여를 원하는 팀이 많아지면서 리그별로 10~20팀 정도가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중·고등학교 야구장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리그가 운영된다.

전국야구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교 중 리그를 진행할 수 있는 학교는 100개를 약간 넘는다. 사설 야구장을 포함한다고 해도 3백개를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회인 야구팀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때문에 야구 시즌이 되면 경기장을 확보하기 위해 동호인들 사이에 치열한 눈치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5월1일에 첫 경기를 한 ‘G마켓 사회인 야구대회’에서도 1백28개팀을 선정하는 데 6천4백여 개 팀이 지원했다. 다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경쟁률도 이와 비슷하다. 때문에 야구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우승하기보다 경기에 참가하기가 더 어렵다”라는 말이 나온다.

야구인들이 아예 야구장을 건설하기도 한다. 임창진 UB리그위원회 회장은 지난 2월25일 1억원 정도의 사비를 들여 경기도 가평에 야구장을 완공했다. 처음에는 직접 야구장 임대 계약을 하려다가 가격이 너무 높아서 포기했다. 임회장은 “1년 계약에 3천만~5천만원이 든다. 학교 행정실이나 야구단 감독과 계약하는데, 공개적이지 않아 어떻게 진행되고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직접 야구장을 건설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지을 땅과 돈을 마련한다고 해도 체육시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야구장들 중에도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난 4월5일 8년간 ‘하남 환경 리그’가 진행되던 하남 미사리야구장이 폐쇄된 것도 한강 둔치에 불법 시설물을 설치해 야구를 하고 있다는 민원 때문이었다.

출처: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인 야구인들은 사회인 축구인들을 부러워한다. 축구의 경우 집 근처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프라가 충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사회인 야구단 사이에서는 야구가 축구에 밀려났다는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조기 축구는 지역 주민들이 가까운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하고 지원을 약속하지만, 야구는 시·도 경계선을 넘어 경기를 갖는 일이 많아서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용배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국가가 국민들의 자살을 막고 행복하게 해주는 데 가장 좋은 것이 스포츠이다. 엔도르핀은 분노와 절망을 막아주기 때문에 사회 건강 측면에서 선진국들은 체육시설을 만든다.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면 행정적인 측면에서라도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쉽도록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인 야구에 빠져든 사람들은 ‘하는 야구’의 매력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모든 팀 스포츠가 그렇듯이 여러 사람이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느끼는 동질감과 성취감이 있다. 여기에 타석에서의 승부라는 개인만의 쾌감이 추가된다. 마지막으로 기록이 남는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고 불릴 만큼 많은 기록이 있어 기록을 보는 즐거움도 다른 스포츠에서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다.

게임업체에서 근무하며 사회인 야구에 참여하고 있는 유동우 유코리그 운영위원장은 “낚시나 축구를 하던 사람들도 야구를 시작하면 전에 하던 스포츠를 잊고 야구를 하러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야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더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MBC 해설위원인 허구연 전국야구연합 고문(59)의 ‘야구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월27일에는 캄보디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장인 ‘허구연 필드’를 개장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는 야구장 건립을 위해 경남 의령·함안·창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4월2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빌딩에서 그를 만나 사회인 야구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회인 야구의 열기가 뜨겁지만, 경기장이 부족한 것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사회인 야구의 환경이 열악한 것에 대해 야구계가 많이 반성해야 한다. 국내 초·중·고교 야구장을 다 합쳐야 100개 정도이다. 사회인 야구단이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90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참다 못한 야구인들이 스스로 돈을 내서 야구장을 짓는다. 지방은 더 심하다. 야구장이 없어서 진주에서 남해까지 가는 경우도 보았다. 야구가 대도시에서만 하는 스포츠가 되면 안 된다. 시골에서도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 우선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팀들을 주축으로 야구장을 만들어야 한다.

야구장을 만드는 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다용도·다목적 구장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축구장을 지금보다 조금 넓혀서 야구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월드컵 때 건설한 축구장은 지금 세금으로 유지·보수하고 있다. 지방에 그렇게 많은 관중이 들어가는 축구장이 필요하지 않다. 예산 낭비이다. 사회인 야구의 문제는 정부 체육 정책의 문제이다.

국회 야구단 ‘이구동성’의 감독직을 맡았다. 정치인들이 사회인 야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 ‘체육진흥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서야 프로야구 구단들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야구장을 장기 임대하는 계약이 가능해졌다. 프로야구가 이렇게 힘들면 사회인 야구는 더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봇대 하나 뽑는 것이 이슈가 되는 것처럼 오래된 규제가 체육 발전을 막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행정·제도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

사회인 야구가 발전하기 위해 상위 단체들이 정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 대한야구협회,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 등 야구 관련 기구는 많지만, 사회인 야구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관련 조직들이 정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사회인 야구가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야구장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조직은 그 다음 문제이다.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없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물론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가 분산되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힘을 결집시키면 정부에서도 도와줄 수밖에 없다. 리그 운영은 각자 리그를 하더라도 환경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야구인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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