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임진왜란 전에 들어왔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5.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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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연구원, ‘남미→일본→한국 전래설’ 뒤집는 “동아시아 천년 전통” 주장

 

▲ 한국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국식품연구원의 권대영 박사. ⓒ시사저널 이종현

한국인은 언제부터 고추를 먹었을까. 지금까지 일반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서 국내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전래설의 근거는 1984년에 이성우 한양대 교수(작고)가 ‘고추의 역사와 품질 평가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임란 이후 일본 전래설’을 주장한 이후 통설로 굳어졌다. 이후 이는 학력고사에 출제되기도 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남미의 고추가 유럽으로,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그 100년 뒤인 1592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을 통해 한반도에 전해지고 그제야 고추장이 ‘발견’되고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연구원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추가 한반도에 보급된 것이 적어도 1천년 전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세종 15년(1433년) 발간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세조 6년(1460년)의 <식료찬요(食療纂要)>에 초장(椒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초장이 바로 고추장을 지칭한다는 말이다. 식품이 ‘우연한 발견’을 거쳐 식생활 풍습으로 전파되어 고착되는 과정을 감안하면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기에, 기록으로 남을 정도라면 고추는 한반도에서 적어도 1천년 전부터 음식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이다.

권연구원은 김종직(1431~92)이 남긴 <양산가>에 ‘고추를 소주에 넣어 마신 초장을 제사 지낼 때 썼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고 훈족의 후예가 서진해 세운 헝가리에 유독 고춧가루를 쓰는 ‘굴라시’라는 전통 음식이 있다는 점을 들어 고추 양념은 적어도 1천년 이상 된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전해진 ‘아히’라는 고추 품종은 우리나라의 고추와 생김새나 매운 강도가 완전히 다른 품종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헝가리 고추인 왁스가 우리나라 고추와 생김새나 매운 강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브리태니카 백과사건에도 과거에는 고추가 남미 원산지라고 표기했지만 최근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 자생하던 가지과 식물이라고 고쳤다”라며 일본에서 전래되었다고 문헌에 나오는 식물은 매운 남방계 고추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폈다.   

학계는 과학적 근거 제시 주문

이에 대해 기존 학설을 지지하는 학계에서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는 ‘고추의 임란 이전 전파설’에 대해 “초(椒)라는 표기는 매운 성분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를 오늘날의 고추(red pepper)라고 일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권연구원의 전공이 한자나 문헌 해석이 아닌 만큼 차라리 유전공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고추와 남미산 고추, 스페인산 고추의 유전적 계통과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그런 주장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 일본 도래설을 제고해볼 수 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고추의 진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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