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예고하는 이란의 처형 선풍
  • 조홍래 | 편집위원 ()
  • 승인 2010.06.08 1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규모 시위 막으려 반정부 시위자 교수형 잇따라 집행

▲ 지난 5월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이란 대사관 밖에서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경찰들이 막고 있다. ⓒAP연합

이란에 돌연 처형 선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5월9일 일요일, 쿠르드족 네 명을 포함한 반정부 시위자 다섯 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부정 선거로 얼룩졌던 지난해 6월12일의 대통령 선거 1주년이 다가오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재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처형된 사람은  1주 사이에 11명으로 늘어났다. 여섯 명은 마약 거래 혐의로 하루 전인 토요일에 처형되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수년간 가장 많은 죄수를 처형했다. 사형 집행 숫자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다. 정부는 처형된 다섯 명이 대량 살상용 폭탄을 휴대했다고 밝혔으나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시위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선거에서 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재선되었으나 많은 국민이 이 선거를 부정·불법 선거로 규정하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이란 전역은 한때 마비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난 2월11일에도 반정 시위 계획이 발각되어 이에 연루된 쿠르드족 두 명 등 네 명이 처형되었다. 또 다른 11명의 시위자는 사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있었던 세 차례의 처형이 이란 최고법원의 재가 없이 이루어진 점을 들어 앞으로 더 많은 사형 집행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보호위원회의 하디 가헤미 소장은 이란 정부가 반정부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테러와 폭력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장 최근에 처형된 다섯 명은 2008년 재판에서 ‘신의 명령에 불복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정부 건물을 폭파하고 각종 반정부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일요일에 처형된 28세의 여성은 혁명수비대 소속 차량에 폭탄을 장치한 혐의를 받았다. 그 밖의 사형수들은 이슬람 사원을 폭파하고 무장 쿠르드저항그룹(PJAK)에 가담한 혐의이다. 사형수들은 모두 재판정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반체제 인사들에 따르면 이란 사법 기관은 사실상 정보·보안 및 군 기관에 장악되었다. 혁명수비대의 지휘를 받는 이 조직들은 반체제 인사들에게 사형이나 장기 징역을 선고한다. 이 기관들은 국영 라디오를 통해 왕정의 권위를 고취하는 캠페인도 벌인다. <검은 지혜>로 불리는 TV 시리즈는 경찰이 수백만 개의 이메일을 검색하고 네티즌들의 컴퓨터 콘텐츠를 뒤지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맞서 반체제 개혁 단체의 대표인 모하마드 하타미는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정부는 지난해 여름 시위 이후 사태가 평온해졌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서 정치적 이유로 처형된 사람 가운데는 유독 쿠르드족이 많다. 총 2천만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은 터키에 8백만명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있다. 이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약 4백만명으로 전체 인구 7천만명의 8%에 달한다. 이란의 소수 종족인 쿠르드족은 언젠가 독립할 야심을 품고 있어 늘 경계의 대상이 된다. 5월9일의 처형이 있은 후 쿠르드족은 지난 수년 사이에 가장 규모가 큰 반정 시위를 벌였다. 

이란 정부는 생래적으로 반항적인 쿠르드족이 언젠가는 이라크와 터키의 쿠르드족과 연립해 쿠르드 독 립 국가를 세울까 전전긍긍한다. 이란에는 이미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한 개의 무장 분리 단체가 등장했다. 주로 수니파 무슬림인 이란 쿠르드족은 시아파 사회에서는 소수로 분류되어 정부로부터 늘 인종 차별을 받는다. 쿠르드와 기타 소수 민족에 대해 이란이 두드러지게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란 지도층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이후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최근 처형을 서두르는 것도 오는 6월12일에 있을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당국은 이날 수만 명이 시위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일요일에 처형된 다섯 명이 치명적인 폭탄을 은닉하고 있었다는 당국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6월의 시위는 유혈 사태를 예고하는 셈이다. 

▲ 이란 국경과 가까운 이라크 칸딜 산에서 이란 쿠르드족 출신 게릴라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AFP연합

정정 불안 틈타 독립 기회 엿보는 쿠르드족의 저항 거세질 듯

익명을 요구하는 한 목격자는 쿠르드족 주요 거점인 쿠르디스탄 주도 사난다즈에서 모든 상점이 폐쇄되고 주민들은 집안에 갇혀 도시 전체가 유령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밖에 몇몇 도시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 여러 도시에서 보안군과 쿠르드족 사이에 충돌이 전해졌으나 정확한 사상자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체포를 피해 이란을 탈출해 스웨덴에 머무르고 있는 반체제 인사 사만 라소푸르는 지난 30년 동안 쿠르드와 이란 국민이 이번처럼 단결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1920년 오토만 제국 붕괴 후 잠시나마 독립 국가를 향유했던 쿠르드족으로서는 이란의 정정 불안이 두 번째 독립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희망한다.

이란은 핵 개발에 대한 야망 때문에 네 번째로 유엔 제재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최근 브라질의 개입으로 국내 농축 우라늄을 터키로 반출하는 협상에 합의했으나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이 합의의 진정성을 불신한다. 유엔 제재를 모면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국내외적인 갈등 속에서 진행되는 이란의 처형 선풍은 여러 측면에서 전례가 없고 불길하다. 정부는 부정 선거 규탄 시위 1주년을 앞두고 잔혹한 처형을 강행함으로써 반정 시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나 야당과 쿠르드족이 위협에 굴복할지는 미지수이다. 반정세력 지도자 무사비는 이미 6월12일의 시위 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정부가 이를 허가할 리는 없다. 이란 검찰총장은 지난해 시위 때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11명의 운명이 반정 세력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시 시위를 하면 이들을 처형하겠다는 말이다.

이란의 상황은 북한을 연상시킨다. 핵 개발 야망이나 인권 유린이라는 면에서 닮은꼴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5일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국가에 대한 미국의 핵사용을 사실상 포기하되 북한과 이란은 예외로 한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은 아니다. 미국 언론이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키메라’(Chimera) 정권이라고 한 것도 흥미롭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수로 머리는 사자, 몸은 사슴, 꼬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괴물이다. 북한과 이란은 그동안 ‘악의 축’ ‘불량국가’ 같은 별명으로 불려왔다. 이란 지도자들이 이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북한처럼 ‘괴수’라는 별명을 얻을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