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축구’에서 배운다
  • 김재태 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0.06.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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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 조별 리그 D조 경기에서 세르비아가 막강 전차군단 독일을 1-0으로 물리쳐 세계를 놀라게 한 다음 날 한 지인이, 왜 반도 국가들이 축구를 잘하는지 아느냐고 물어왔다. 세르비아가 발칸 반도에 속한 나라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 텐데, 제법 진지한 답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의 해석은 다소 엉뚱하면서도 독창적이었다. 반도(半島)라는 지형이 대륙의 발과 같은 형태여서 발을 쓰는 경기인 축구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월드컵 본선 리그에 오른 나라 가운데는 남북한을 비롯해, 지난 대회 우승팀인 이탈리아, 우리와 대결했던 그리스, 슬로베니아, 세르비아와 같이 반도에 위치한 국가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나라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한국팀은 당초 16강 진출이 불투명하리라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선전해 사상 첫 원정 16강행을 이루어냈다. 단지 결과에서만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충분히 칭송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를 바꾼 이 자랑스러운 선수들이 있어 6월의 밤은 뜨거웠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었다. 열정과 환희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었다. 해외 언론들이 평한 것처럼, 한국 축구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리 선수들은 강팀과 맞붙어도 기죽지 않았고, 갈고 닦은 기량을 최선을 다해 풀어냈다. ‘축구’보다는 ‘경기’에 몰두했던 옛 시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뻥 축구’니 ‘동네 축구’니 하는 부끄러운 모습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들은 발에 ‘생각’을 장착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축구를 진화시켰다. 

한국 축구의 성장과 더불어 이번 남아공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전통적인 축구 강호들의 부진이다. 잉글랜드·독일·스페인 등이 16강 진출에는 가까스로 성공했으나 몇 차례 고전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6강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일찌감치 짐을 싸야 했다. 이들의 시련은 ‘스포츠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라는 고전적인 경구를 새삼 떠올리게 해준다. 자만에 빠지거나, 치밀한 전술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여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도 전해준다. 상대의 전력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잘 준비한 팀만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오차 없이 작동했다. 눈을 돌려보면 정치에서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국민의 마음을 세밀하게 읽지 않고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오만한 권력은 ‘뻥 축구’만 남발할 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다. ‘생각하는 축구’로 진화한 한국 축구의 흐름이, 활로를 찾지 못한 채 번번히 막히는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세계의 중심을 향해 뚜벅뚜벅 전진하는 한국축구의 얼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다 목메어도 좋을 태극전사들이여, 그대들의 발전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그대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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