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비극 부른 ‘산후 우울증’
  • 김세희 기자·임송 인턴기자 ()
  • 승인 2010.08.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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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 현장 추적 / 평범한 공무원 부부, 두 살배기 아들 죽이고 딸과 함께 투신

 

▲ 일가족이 살던 아파트 현관에 세 살배기 딸이 타던 자전거가 놓여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8월2일 전북 정읍시 북면 한교리의 한 임대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끔찍한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박일수씨(가명·35)와 박씨의 부인 장미선씨(가명·33) 그리고 딸 희정양(가명·3)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마침 이곳을 순찰하던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박씨 일가족은 이 아파트 옥상에서 동반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 부근에서는 박씨의 아반떼 승용차가 발견되었지만 유서는 없었다. 경찰은 시신들의 상태로 보아 박씨가 딸을 안고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아파트 공사장은 지난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하다가 부도가 난 후 폐허처럼 버려진 곳이다. 박씨의 직장은 정읍이었지만 집은 전주의 한 아파트였다. 평소 박씨가 출퇴근하면서 이 공사 현장을 눈여겨 보고 투신 장소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8월4일 오후 <시사저널> 취재진이 투신 현장에 갔을 때는 ‘범죄 취약 지역’이라는 안내판이 놓여 있었고, 사람 키 만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박씨 일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ㄱ아파트 박씨의 집 안방에서 박씨의 아들 태성군(가명·2)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 부부가 아들을 먼저 살해한 후 정읍으로 옮겨 자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도대체 박씨 일가족은 왜 이런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

8월2일 오후 1시쯤 숨진 장미선씨의 언니(36)는 여느 때처럼 통장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에게서 1천3백여 만원이라는 큰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았다. 장씨는 동생이 갑자기 많은 돈을 입금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미선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장씨는 남동생(32)과 함께 동생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아파트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장씨 남매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리한 흉기로 목을 찔린 채 참혹하게 죽어 있는 조카를 발견했다. 잠옷을 입은 상태에서 이불에 덮여 있었다. 이때가 오후 9시58분쯤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방안 곳곳을 살폈고, 싱크대에서 피 묻은 흉기를 발견했다. 당시 안방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 일가족이 살던 전주시 인후동 ㄱ아파트에 가족 소유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들 낳은 뒤 증세 악화

경찰은 손잡이에 남아 있을 지문과 DNA의 감식을 위해 흉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는 태성군의 사망 시각을 8월2일 오전 7시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머니 장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사용 기록이 오전 6시로 찍혀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장씨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에게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못 보낸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박씨 부부는 휴대전화를 놓아둔 채 집을 나갔다. 전화기는 탁자의 모서리선에 맞추어 매우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고 한다. 평소 부부의 성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찰 관계자는 “죽은 아이의 모습이 너무 참담해 눈물이 났다. 도저히 부모가 죽인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어 부모 중 한 사람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박씨 부부가 아들을 살해하고 정읍의 한 은행에서 보장성 보험 14개를 해약한 후 그 돈을 고스란히 장씨의 언니에게 송금했다는 사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간의 고마움을 표시했다거나 철저하게 정리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자신들의 장례 비용을 보내놓은 것으로도 추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씨 부부는 모두 공무원이었다. 남편 박씨는 정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고, 부인 장씨는 지난 5월에 휴직하기 전까지 전주의 한 우체국에서 일했다. 이들 부부는 30평대 아파트에 살며, 승용차 두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반 자살한 이유가 ‘생활고’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부인 장씨의 우울증이었다. 장씨는 딸을 출산한 후 산후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들을 낳으면서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다. 박씨 집에서 발견된 다이어리에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컴퓨터에서는 ‘연탄 파는 곳’ ‘수면제’ 등 자살을 암시하는 단어가 검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 관계자는 “우울증이 심해진 데다 둘째가 자주 울고 보채서 둘째를 상당히 미워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라고 말했다.

1년여 전 인후동 ㄱ아파트로 이사 온 것도 장씨의 우울증을 걱정한 가족들의 배려였다. 같은 아파트에는 장씨의 친정 부모가 살고 있었다. 장씨의 부모는 외손주들을 돌봐주었고, 약사인 남동생도 가까운 곳에 살며 장씨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챙겼다. 장씨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쉽게 치료가 되지 않았다. ㄱ아파트 주변 상가 관계자는 “한 달 정도 우울증 치료를 했다고 들었는데, 평소에도 말수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장씨의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아들의 사진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저 미워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의 증상을 감정 기복이 심한 ‘조울증’으로도 보았다. 박진경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교수는 “산후 우울증으로 아이를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천이라 믿어지는 아이를 보는 것이 두려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아이가 악마로 보이거나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인데, 주위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이 없으면 완쾌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박씨 일가족의 시신은 8월4일 오후에 화장한 후 광주의 선산에 묻혔다. 경찰은 장례 절차가 끝난 후 차례로 유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기자는 유족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유족들은 만남을 피했다. 숨진 장씨의 남동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경찰에서 말한 것이 전부이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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