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향해 떴다 비행기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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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이어 한화까지 전용기 도입…다른 기업에 파급 효과 클 듯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전용기인 보잉 737-700.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이 기종을 들여왔고, 한화는 똑같은 기종을 올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속도 경영의 시대에 비즈니스 전용기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한화그룹은 올 하반기에 비즈니스 전용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다섯 번째이다. 2000년 재계 순위 1위 삼성그룹이 국내 최초로 전용기를 도입한 이래 재계 순위 2~4위 기업들도 속속 전용기를 도입했다. 그런 점에서 재계 순위 13위(2010년 4월 기준)인 한화그룹의 전용기 도입은 다소 이례적이다. 강호균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부장은 “도입 시기를 자산 규모로 따질 수 없다. 한화는 지난 2008년 ‘그레이트 챌린지 2011’을 선포하면서 글로벌 경영을 선언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전용기를 도입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재계 순위와 상관없이 비용 대비 사업 효과가 충분히 있다면 전용기를 들여올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다. 글로벌 경영이 기업의 필수 과제로 자리 잡은 지금, 다른 기업들이 전용기를 도입하는 데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전용기를 사는 데는 얼마만큼의 돈이 들고, 한 해 유지비는 얼마나 될까? 한화가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기종은 보잉737을 개조한 20인승 보잉 비즈니스 제트(BBJ)이다. 가격은 6백억~7백억원이다. 현대·기아차그룹과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기종과 똑같다. LG그룹과 SK그룹이 가지고 있는 G550은 5백50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해 유지비는 운행 시간과 전용기의 구입 연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기업들은 대외비라는 이유로 유지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추산은 가능하다. 가장 많은 정보가 공개된 LG그룹의 사례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한 해 최소 45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LG그룹이 보유한 걸프스트림 사의 G550기는 대한항공에서도 비즈니스 전용기로 운행하고 있다. 대한항공에서는 시간당 4백50만~5백만원을 받고 있다. 인건비를 포함한 각종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 가격이기 때문에 전용기를 사용했을 때에는 이보다 적은 4백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1년간 5백50시간을 운행한 LG의 경우 운행 비용만 22억원이다. 전용기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운영팀이 필요하다. 기장 2명, 승무원 2명, 정비사 2명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인원이다. LG그룹은 10명이 팀을 이루고 있다. 10억원이 넘게 인건비로 들어간다. 한 해 정비비도 만만찮다.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운항 정비는 정비사가 할 수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1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중정비는 국토해양부가 승인한 외부 정비업체에 맡겨야 한다. 이 비용이 한 해 5억원이다. 전용기 연식이 5년 이상 되면 정비비가 10억원으로 훌쩍 뛴다. 이 밖에도 전용기가 뜨고 내릴 때 지불하는 착륙료와 격납고에 보관될 때 내는 정류비까지 더하면 대략 40억원 정도가 한 해 유지비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감가상각 비용까지 더하면 전용기를 보유하는 순간 연간 최소 45억원이 유지비로 들어가게 된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드는 전용기는 누가 탈까? 주로 그룹 회장이나 계열사 사장들이 이용한다. 상무나 전무급 임원들도 탈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단독으로 탈 수는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과 사장단들이 타고 다니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해외 출장이 잦다. 상무나 전무급 임원이 회장 또는 사장단과 함께 동승했을 때에 이용할 수 있지만 혼자 타고 간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회장단과 사장단 이외의 임원진이 혼자 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유지비 연 45억원가량 소요…시간 절약 등 이득 더 커

전용기 내부 시설은 좌석과 침대용 소파, 응급 의료 설비를 갖추고 있다. 좌석을 뒤로 완전히 젖히면 침대가 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회의실도 있다. 간이문을 닫으면 소회의실이 되도록 간이탁자를 두고 있다. 100인승 보잉737을 20인승으로 개조했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상당히 넓다. 위성전화와 간단한 문자메시지, 텍스트 위주의 이메일 전송이 가능하다. 초고속인터넷 사용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내용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하던 업체가 수요 부족으로 문을 닫으면서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기업 핵심 임원들이 전용기를 타고 주로 방문하는 지역은 중국과 미국, 유럽이다. LG그룹의 경우 중국을 45회로 가장 많이 방문했다. 현대·기아차는 해외 현지 공장이 있는 미국, 중국, 인도, 유럽을 주로 방문한다. SK 역시 중국과 미국 중심이다. 이번에 전용기를 도입하는 한화는 태양광 산업 중심지가 될 유럽이 주요 방문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호균 한화 경영기획실 부장은 “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인수한 태양광 관련 중국 업체인 솔라펀파워홀딩스가 주로 진출하고 있는 지역이 유럽이다. 중국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전용기 도입은 촌각을 다투는 경영 임원진에게는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이점이 가장 크다. 티켓 발매가 필요 없고, 세관이나 출입국 관리, 검역 등이 VIP 전용 통로를 통해 재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다. 민항기가 가지 않는 지역에 곧바로 가는 것이 가능해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 

비즈니스 전용기가 많이 보급된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국내에는 전용기 전용 터미널이 없고, 운행이 제한되는 지역도 상당히 많다. 전용기가 일반화된 미국에서는 전용기 전용 터미널을 통해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자가용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전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전용기 멤버십 프로그램에 연간 회원으로 가입할 경우 출발 5시간 전에 요청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다.

한국은 2005년 GFI코리아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하는데, 수요 부족으로 인해 2007년 말부터는 수요가 있을 때마다 전용 항공기를 임대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황재홍 GFI코리아 대표는 “아직은 제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전용기 멤버십 서비스가 상용화되기에는 한계가 많다. 하지만 전용기를 이용해본 기업 임원들은 전용기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전용기를 보유하는 기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전용기 멤버십 서비스가 다시 도입될 날도 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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