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땅’에서 치솟는 종교 갈등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8.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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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그라인드 제로’ 주변 이슬람 사원 건립 싸고 논란

 

▲ 미국의 활동가 줄리아 룬디(사진 오른쪽)와 맷 스카이가 ‘파크51’ 건설 현장에서 이슬람 사원 건립을 지지하고 있다. ⓒAP연합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미국이 네바다 사막에서 처음으로 핵실험을 했을 때 핵폭탄이 터진 폭심지(爆心地)를 말한다. 이 핵실험 용어는 그 후 역사를 바꾼 대사건의 발생지를 지칭하는 상징어가 되었다. 21세기의 그라운드 제로는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시 쌍둥이 빌딩 무역센터의 폐허이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맨해튼 남단에 ‘파크51(Park51)’로 불리는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문화센터가 세워진다. 뉴욕 시에는 이미 100여 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다. 새로운 사원 하나가 더 생긴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파크51은 모든 인종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헌법, 나아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미국의 역사를 시험하는 명소로 등장했다. 이곳은 어쩌면 기독교와 이슬람의 숙명적 갈등을 함축하는 또 다른 ‘그라운드 제로’가 될 듯하다.

파크51은 기구한 사연을 안고 있다. 이 장소는 원래 1백52년 전에 지은 낡은 건물이 있던 곳이다. 이 건물은 2001년 9월11일 이슬람 세계에서 온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두 대의 비행기를 무역센터에 충돌시켰을 때 날아온 파편에 맞아 무너졌다. 이 건물과 부지를 이슬람 종교 단체가 매입해 이슬람 사원(모스크)과 문화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이 지금 미국 전역을 들끓게 만든 논란의 시발점이다. 모스크 건립을 추진하는 소호 프로퍼티의 이슬람 지도자 샤리프 엘 가멜은 이 시설을 이슬람과 미국 간 우의를 다지는 가교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서 파크51 안에 명상실을 만들어 9·11로 희생된 미국인 3천여 명의 원혼을 달래고 그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계획을 놓고 고민하던 뉴욕 시는 최근 건축 허가를 내주었다. 건물이 완공되기까지는 2~3년이 걸릴 전망이다.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찬반 여론이 격돌했다.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믿는 보수적인 뉴요커들이 제일 먼저 반발했다. 9·11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여론은 찬성보다는 반대가 압도적이다. 뉴욕 시의 건축 문제로 맴돌던 이슬람 모스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개입하면서 순식간에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쟁으로 비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8월13일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을 기념하는 백악관 만찬 연설에서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무슬림들도 이 나라의 모든 시민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미루던 몇 주간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오바마의 발언은 파격적이다. 또한 금식일 전야의 만찬 의식 ‘이프타르(iftar)’ 석상에서 모스크 건립을 지지하는 말을 했다는 사실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프타르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주미 초대 무슬림 대사를 위해 베푼 이래 이어져온 전통이다. 이 만찬은 가끔 거른 적은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최되었다. 8월 초 모스크 건립 계획을 승인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오바마의 발언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 이후 미국 정계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개 사원의 건축 문제는 어느새 이슬람, 9·11,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거대한 논쟁으로 커지더니 급기야 11월 중간선거의 이슈로 확산되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이 프로젝트를 “불필요한 도발이다”라고 규정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무슬림이 이 계획을 막아달라고 당부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오바마의 발언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아첨이라고 비난했다.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전 공화당 하원의원 릭 라지오는 오바마가 뉴욕 시민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종교적 이유로 자행되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유대인 단체 ‘차별반대연맹’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바마는 분분한 여론에 쐐기를 박았다. 9·11을 기획한 테러리스트와 이슬람은 별개라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대의(大義)는 이슬람이 아니라 이슬람의 전면적 왜곡이다”라고 했다. 사실 알카에다는 어느 나라 국민보다 더 많은 무슬림을 죽였고, 9·11 희생자 중에는 다수의 무슬림도 포함되었다. 오바마는 미국 무슬림 청년들이 미군 부대에서 복무 중임을 지적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세 명의 무슬림 병사들을 위한 추도식을 국방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 현장. 최근 이 지역 주변에 이슬람 사원 건립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EPA

오바마 대통령의 무슬림 옹호 발언 이후 정쟁으로 번져

오바마는 무슬림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모든 국가와의 화해를 외교 정책의 근간으로 선언한 덕분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오바마의 입장은 대승적 차원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나 일부 시민단체와 보수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라운드 제로에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면 9·11 납치범들에게 승리감을 안겨준다는 것이 반대 정서의 핵심이다. 오바마는 이 계획에 찬동함으로써 무임 승차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비난에 휘말렸다. 뉴욕 시 명소보존위원회는 건축 허가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태세이다. 뉴욕 주지사 후보 라지오는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인 페이잘 압둘 라우프가 극단주의 조직들과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인도의 종교 문학가 윌리엄 달림플은 이슬람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서방의 노력에 살인과 폭력으로 응답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를 간과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지하드(성전)에 집착하는 알카에다의 노선과 이라크 바트당 무슬림들의 차이를 이해했다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슬람 내부의 분열과 이단화를 감안할 때 그라운드 제로에 모스크를 짓겠다는 의도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오바마의 입장을 지지했다. 미국의 건국 정신, 헌법의 원칙 그리고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미국 시민에 대한 존경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사원 건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후 하루 만에 입장을 완화하는 태도를 보인 데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이런 문제에서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모습이 미국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비꼬았다. 거시적 관점에서 미국의 진로를 조명한 한 칼럼니스트는 이 사태를 ‘모스크 광풍’이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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