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골목에 ‘예술’이 흐른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0.08.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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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문래동 철재상가에 작업장 꾸려…형형색색 그림으로 거리 장식, 관광객도 몰려

 

▲ 서울 문래동 복길이네 식당 ⓒ시사저널 임준선

‘꽝, 꽝, 꽝.’ 여기저기서 쇠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의 철재상가 골목에 들어서면 이곳의 상징처럼 들려오는 소리이다. 골목 구석구석에 밀집해 있는 철공소에서는 쇳가루로 범벅이 된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이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실 즈음, 문래동 철재상가 골목은 변신을 한다. 오후 6시 무렵 철재공장의 셔터가 서서히 내려간다. 그러자 알록달록한 색감의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철재상가 2층과 3층의 창문 불빛이 하나 둘 켜진다. 문래동에 모여 사는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문래동에 본격적으로 둥지를 틀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5년 무렵이다. 2000년대 들어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이 시행되면서 문래동 철공소 단지 안의 업체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것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싼 임대료라는 매력 덕분에 비어 있는 공간에 다양한 장르의 작업실이 들어섰다. 건물 곳곳에는 이들 예술가의 흔적이 묻어난다. 아기자기한 작업실 푯말에서부터 철공소 셔터문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그래피티’까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이후 문래동 공단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이제 명물로 자리 잡은 곳들도 생겨났다. 이 가운데  ‘노란 가게’로 불리는 슈퍼마켓 ‘충남상회’와 건물 2층에 주인 아주머니의 사진이 붙어 있는 ‘복길네 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충남상회 주인 아주머니는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와 가게 외관을 꾸며주었다. 원래 이곳 철재상가 골목이 영화도 자주 찍고 주목을 받는 곳이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젊은 사람들이나 외국인들도 꽤 많이 찾아온다. 주말이면 문 닫은 뒤의 철공소 골목이나 가게 외관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문래창작촌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매력을 한눈에 알기가 어렵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방문객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대다수 작업실이 건물 지하나 옥상에 있어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올해 3월에는 문래동에 입성한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 작가들의 작업실을 표시해 둔 작업실 지도도 만들어졌다.

현재 문래동에는 100여 개의 작업 공간이 있고, 1백7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회화·설치·조각·디자인·일러스트·사진·영상·서예·영화·애니메이션 등 시각예술 장르를 비롯해 춤·연극·거리 퍼포먼스·전통예술·음악 등의 공연예술가와 비평·시나리오·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 활동가들이 꿈을 펼치고 있다.

문래동 예술인들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공간도 생겨났다. 지난 7월12일 문을 연 갤러리 카페 ‘솜씨(Cotton Seed)’에 가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문래동 작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솜씨 갤러리의 박창범 매니저는 “솜씨는 상업성을 지양하는 비영리 전시 공간이다. 이곳은 상업 화랑이 아니다 보니 담소를 나누거나 잠깐 쉬어가기 위해 찾아오는 작가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소문 듣고 찾아드는 사람 늘면서 임대료 오르는 등 불편 겪기도

▲ 1970~80년대 풍경을 아직도 간직한 서울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가 젊은 작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문래 창작촌이 서울의 이색 공간으로 부각되면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사진 작업실을 열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예병현씨는 “서울에서 문래동처럼 독특한 풍경을 지닌 곳은 드물다. 부각되는 지역이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찾아와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 작품 활동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는 사실 이런 관심이 불편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예씨는 “예전에는 작가들이 작업실을 공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 식으로 문래동이 부각되면 당장 생활에 무리가 온다. 보증금 2백만~3백만원에 월세 20만~25만원 정도의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들이 많다. 문래동이 유명해지면서 월세가 30만원을 웃돌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

문래동에 안착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소로(SORO) 퍼포먼스 아트센터의 박재선 대표는 “우리의 경우 단체이기 때문에 작업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그동안 피곤할 정도로 작업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문래동은 예술인들이 싼 임대료를 찾아 모여들어 형성된 일종의 예술 자생촌이다. 최근 이곳을 지역 문화 특수처럼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뭔가 쇠를 이용하는 예술을 한다거나, 문래동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는 식으로 비치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에 온 사람들이 ‘문래’스러운 아트를 위해 온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문래동 예술인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바로 철공장 사람들과의 소통 문제이다. 평생 거친 쇠 작업을 하며 살아온 철공장 사람들과 예술인들의 조합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소통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3월부터 문래 창착촌에 작업실을 만들고 있는 박지원씨는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작업실 공사 기간 내내 늘 이곳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종종 이곳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철공소 형님들 덕분에 작업실 공사가 훨씬 수월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문래동이 예술촌으로 변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문래동은 쇠 두드리는 소리가 익숙한 곳이다. 낮에는 공단, 밤에는 예술촌으로 변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아직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래동에는 철공소와 예술인을 묶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문래동 사람들 모두가 철공소에서든 작업실에서든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래동에서 만난 한 프랑스 관광객은 “공장 건물에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벽화들은 외국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일과 예술이 접합된 것이 놀랍다. 게다가 이곳에서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웅장한 느낌의 골목 풍경들을 보면서 어떤 힘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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