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석 “광고주 말 들을수록 광고는 실패한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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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이제석씨 인터뷰 / “보는 이에게 불쾌감 주면 안 돼…입 발린 소리보다 진실 담아야 통해”

 

ⓒ서병욱 제공

이제석은 대구 계명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해 평점 4.5점 만점에 4.47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하는 순간 ‘루저’가 되었다. 대학 시절 국내 광고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꾸준히 응모했지만 ‘코딱지 만한 상조차 타지 못한’ 그는 졸업 뒤에 수십 곳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아무도 뽑아주지 않았다. 이제석은, 국내 기업은 토익이나 학교 간판으로 사람을 뽑는다고 믿게 되었다.

동네 간판쟁이를 하며 1년간 영어 공부를 한 뒤 그는 2006년 9월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편입했다. 편입 6개월 뒤부터 그는 전무후무한 기록 행진을 벌였다.

세계 3대 광고제로 꼽히는 윈쇼광고제에서 ‘굴뚝총’이라는 작품으로 최고상인 금상을 탄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세계 3대 광고제에서 모두 상을 탔다.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오상 등 50여 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그가 상을 탄 광고제 중에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국내 대기업 광고회사가 몇 년간 상을 타기 위해 꾸준히 공을 들인 광고제도 있었다.

광고제에서 각종 상을 받은 이후 그는 JWT와 BBDO 등 이런저런 유명 회사를 거쳐 올해 초 ‘이제석 광고연구소’라는 개인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그리고 <광고 천재 이제석>이라는 책을 펴내며, 스펙에 무시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정상까지 솟구쳐오른 자신의 당당한 뱃심을 드러냈다. 미국에 있는 그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지금 어디에 있나?

8월 초에 미국으로 왔다. 9월부터 예일 대학 대학원에 다닌다. 독립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이 느껴졌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사업체(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어떻게 하나?

한국에 네 명, 미국에 두 명 등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중요한 비즈니스는 내가 직접 한국으로 가기도 하고…. 공부와 병행한다.

▶예일에서 무엇을 배우나?

같은 대학 대학원은 너무 잘 아는 사람이고 뻔하고…. 학부 교수가 추천해주어 예일로 왔다. 학벌을 높이려고 예일에 온 것은 아니다. 스펙 좋다고 뽑아주는 학교도 아니고. 내가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으니까 뽑아준 것이다. 연구 주제가 디자인과 광고를 통합하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광고주의 의뢰를 받아 수동적으로 광고를 제작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유·무형 문화 콘텐츠(상품)를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 광고까지 모두 다 맡아서 하는 것이다.

▶낯선 개념이다.

최근 우리가 한 작업 중에 아름다운 가게의 초콜릿이 있다. 우리 회사가 모양이나 맛, 포장, 가격까지 모든 것을 기획하고 개발했다. 그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사장이 하는 작업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분은 고객의 의뢰가 없더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구체화시켜 제품으로 만든 뒤 이를 제조사에 판다. 우리와의 차이점이라면 그분은 유형의 상품이고 우리는 무형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학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나도 대학원까지 공부하는 사람이라 학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벌은 소수점 뒷자리이다. 마이너한 부분이다. 학벌이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소수점 앞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성이나 창의력이 앞자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연구소 직원을 뽑을 때 이력서 보고 뽑지 않는다. 작품 포트폴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미국에는 기회의 사다리가 많나?

미국에도 차별이 많다. 편견도 많고.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취업에서의 차별은 없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직원을 채용할 때 회사 회장이 이력서의 학벌 대신 풋내기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들어보고 결정한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쫓아내버리는 미국 문화이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영어만 좀 더 공부하면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많을 것 같다.

▶미국 유학을 안 갔더라도 지금과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보는가?

점쟁이가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유학을 안 갔더라도 새로운 시도는 했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하는 것은 하기가 싫다.

▶좋은 광고란 어떤 것인가?

▲ 이제석씨의 작품들. ⓒ이제석 광고연구소

일단 보는 이에게 불쾌감을 주면 안 된다. 기본은 진실성이다. 거짓말은 안 통한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이 크다. 그럴수록 우회하고 소프트한 접근이 중요하다. 광고주는 광고에 정보와 메시지를 잔뜩 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그런 직접적 메시지가 담길수록 부담스러워한다. 광고주가 그 제품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광고주를 속이기가 제일 쉽다. 입 발린 소리로 광고주를 속일 수 있어도 대중이 외면한다. 대중의 말을 들어야지, 광고주의 말을 들을수록 광고는 실패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작품이 꽤 유명하다.

그 작품은 내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비주얼화했고, 동료인 프랜시스코와 윌리엄이 카피를 썼다. 작품 설치비와 공모전 출품비를 빅앤트에서 부담했다.

▶왜 개인 회사를 만들었나?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과 비전이 같을 수 없다. 공익단체 광고 작업을 해주는 프로보노 활동도 조직의 매니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재미있다. 나는 적절한 타협을 잘 하지 못한다. 내가 가는 길 자체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직접 길을 만드는 게 낫다 싶었다.

▶어떤 회사인가?

광고 기획 스튜디오이다. 제작은 외주로 맡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난 10개월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CF를 일곱 편 만들었고, 광고 프로젝트는 수십 개 진행했다. 상업 광고는 선별해서 받고 있다. 클라이언트의 수준이나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한다. 된다 안 된다 기준을 명확하게 한다. 우리 기준에 벗어나면 안 한다. 일 들어온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재정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살 만하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멕시코 등에서 일이 들어오고 있다. 

▶자신감이 대단해 보인다.

확신이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 모르는 것은 이야기 안 한다. 어릴 때부터 확신범이었다. 모 아니면 도이다. 우유부단한 것이 제일 싫다.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신뢰를 보낸다. 최악은 A도 아니고 B도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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