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아닌’ 예능 프로 ‘극한 도전’까지 할라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9.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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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레슬링 편을 통해 본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빛과 그늘

<무한도전>에서 1년간의 준비 작업을 통해 선보인 레슬링 특집. 이것은 동호회 수준의 아마추어 레슬링일까, 아니면 프로를 방불케 하는 실제 레슬링일까. 링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통증을 호소하고, 합을 맞춘 것이라 하지만 그 고통 때문에 선뜻 연습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 레슬링이라는 세계는 일반인이 도전하기에는 무리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동호회처럼 레슬링을 하며 연습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무한도전>은 매회 ‘절대로 따라하지 마십시오’라는 자막을 적어 넣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무한도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 레슬링 특집 편에서 실제 경기를 끝낸 출연자들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MBC 제공

실제 경기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들의 연습 과정을 통해 바라본 레슬링의 세계는 우리가 과거 김일 선수의 박치기로 기억되던 시절의, 심지어 낭만적으로까지 보이던 그 세계가 아니었다. 조금 가혹할 정도로 상대편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일어서서 그 선수를 향해 연신 박치기로 응수하던 김일 선수의 오뚝이 같던 모습은 이 특집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레슬링은 쇼’라는 논란으로 인해 시들해져버린 프로레슬링의 이미지도 거기에는 없었다. 대신 연습에서조차 뇌진탕은 물론이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저것은 그저 쇼가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합을 맞춘다고 해도 몸을 날리고 서로 살과 살이 부딪치고 링 바닥에 쓰러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그 고통은 결국 레슬러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이 프로레슬링계에 던진 헌사는 적지 않은 것이 되었다. 프로레슬링의 숨겨진 진면목을 체험과 도전을 통해 보여줌으로써(그것도 일반인이) 결국 합을 맞춘다 해도 절대로 쇼가 될 수 없는 이 세계의 매력을 전해준 것이니 말이다.

실제 경기 당일을 포착한 <무한도전>은 바로 이 점을 제대로 부각시켰다. 경기장 안쪽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퍼포먼스와는 대비되게 경기장 뒤쪽에서 괴로워하는 멤버를 병치해 보여줌으로써 레슬링이 얼마나 어려운 스포츠인가를 실감나게 했다. 경기 시작 한 시간을 앞두고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간 정준하가 가까스로 돌아와 링 위에 올라 선전하는 모습은 마치 기적 같은 그들의 프로 정신(방송인으로서의)을 느끼게 만들었다. 한편 극도의 긴장감으로 연신 토하면서도 링 위에 올라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정형돈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경기 모습이 전파를 탄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심지어 “프로레슬링을 모독했다”라고 발언했던 윤강철 선수마저 이 경기 장면을 보고는 스스로 감동했다고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왜 아닐까. 프로도 아닌 그들이 조금은 어색해도 프로도 하기 어렵다는 기술을 선보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윤강철 선수가 남긴 소회 속에는 그래도 여전히 섭섭함과 함께 이들이 보여준 기술들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었다. 그는 “<무한도전> 녹화 영상을 수없이 돌려 보았다. 일반인이 사전 연습 없이 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몇 분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에 그친 것이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편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처럼 어려운 미션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나가는 멤버들의 행보에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왜 지금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도전’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나오고, 또 그 ‘도전’이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작금의 <무한도전>이 해낸 레슬링 같은 도전은, 과거 이경규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했던 ‘대단한 도전’ 같은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대단한 도전’이 몇몇 프로 선수를 데려와 완전한 아마추어가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는 것으로 웃음을 뽑아내던 것이었다면, 이제 <무한도전>이 해 온 일련의 도전들, 예를 들면 배우나 모델 혹은 댄스스포츠나 에어로빅은 물론이고 심지어 봅슬레이에 도전하는 모습들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제스처’ 아닌 ‘리얼’이 좋다지만 불미스러운 일 없게 안전장치 갖춰야

이것은 단지 <무한도전>에서만의 상황이 아니다. 대체로 매번 다른 ‘도전’을 주제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이제 ‘하는 척’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한도전>의 중년 버전 같은 형태로 등장해 호평을 받고 있는 <남자의 자격>은 실제로 밴드를 꾸려 아마추어 밴드 대회에 나가고, 합창단을 꾸려 합창대회에 나간다. 자격증을 획득하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이윤석은 몇 달째 도배를 배우고, 김성민은 굴삭기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생전 처음 굴삭기에 오른다. 이것은 전부 ‘리얼’이지 대충대충 하는 ‘제스처’가 아니다.

예능이 리얼화되고, 그 리얼함을 끄집어내기 위해 ‘도전’이라는 미션을 제공하면서, 예능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이 예능이 현실로 걸어 들어오는 것은 그 범주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 영역을 넓혀나가는 방법으로서 ‘도전’ 버라이어티가 갖는 힘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도전’이 현실 그 자체일 때, 거기에 맞는 안전장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이 레슬링 특집을 그나마 큰 불미스러운 일 없이 끝낸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만일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어쩌면 프로그램의 생명을 끊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힘겨움은 웃음을 유발시키지만, 그것이 도를 넘게 될 때 보는 이는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다. 예능의 본분은 웃음이다.   

 ‘도전의 영역’을 어떻게 넓혀왔나

<무한도전>은 실제로 가능한 영역(예를 들면 모델이나 배우 같은)에서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봅슬레이나 레슬링 같은)까지 도전을 넓혀가며 그 멤버를 단련시키고 성장시켜왔다. <1박2일>은 <무한도전>이 해 온 수많은 도전 속에서 여행이라는 소재를 끄집어내 도전을 특화시켰고, <남자의 자격>은 도전이라는 소재에 연령대를 부가시킴으로써 좀 더 타게팅된 예능으로 도전을 소화해냈다. 한편 <청춘불패> 같은 예능은 ‘유치리’라는 동네에서 생활하며 그 동네를 변화시키는(농사일 등을 하며) 도전이라는 점에서, 또 <단비> 같은 예능은 실제로 해외에 나가 그 지역을 변화시키는 도전이라는 점에서 도전에 공공성을 부여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예능에서 현실과 점점 맞닿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도전들이 또한 현실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조심스레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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