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왓장에도 우리 미감의 뿌리 있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9.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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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한국 미술사 강의’ 나선 유홍준 교수 인터뷰 / “한국인이 알아야 할 전통 미술 길잡이 되었으면”

 

ⓒ시사저널 우태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문화재청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2백30만권 이상이 팔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 조성 작업은 진행 과정과 결과물이 하나의 미술 건축 퍼포먼스로 기록될 만한 드라마틱한 작업이었다. 이야기꾼이자 교수, 행정가, 퍼포먼스의 지휘자로 다방면에서 성취를 이룬 유교수에게 대중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수많은 내 나라 내 땅의 숨겨진 보물을 재발견해 ‘아는 만큼 보이게’ 만드는 그의 문화재(전통 미술) 이야기이다. 문화재의 이력과 흐름을 살피는 것은 곧 한국 미술사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고공 비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국 미술사의 진면모를 알려주는 작업에 나섰다. 그 1차 결과물이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1>로 나왔다. 내년 상반기에 2권이 나올 예정이다.

▶어떤 계기로 작업을 하게 되었나?

수업 시간에 학생이 그러더라. 답사기처럼 팔리는 책 말고 제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책은 안 쓰냐고. 사실 더 늙어서 통사를 쓰고 싶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을 담아 한국 미술사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길잡이용 책으로 만들었다.

▶책 편집이나 사진, 제본 상태가 좋다.

내가 기본적으로 편집·미술 기자 출신이다. 미술사 책은 도판만 보고도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진을 사고, 일일이 색 보정하고, 사진의 앵글도 통일시키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미술사 책은 독서로 읽는 것보다 도판을 보면서 유물의 가치를 익히는 것이기에 유물 사진이 따라주지 않으면 독자가 힘들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설명하기 힘들고.

▶학자로서, 저자로서, 행정가로서 성공했다. 부담은 없나?

앞서 가는 사람이 세상에 내는 세금이 있다. 남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잘한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뭐가 잘못되었나 찾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런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가 발전되기도 하고, 그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존재 가치의 인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파할 필요도 없이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공 비행(통사)을 하다 보면 저공 비행(분야사)하는 입장에서는 틀린 것이 보일 것 아닌가. 고공 비행하면서 먼 데를 쳐다보는 것은 저공 비행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고대 문화가 이랬구나 하고 한 손에 잡히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 권으로 나누어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안다.

김원용 선생은 회화사·건축사·조각사·도자사 같은 분야사 연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한국 미술사>(1969년)라는 제대로 된 한국 미술사 책을 처음 펴냈으니 대단하신 것이다. 이후 분야사 연구가 엄청나게 많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책을 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쉽고 짧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 어렵다. 그것은 그 분야의 통달한 원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한 권으로 쓸 수 있는 실력이 안 된다. 압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학자들의 도움도 있었나?

선후배나 동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원고를 완성한 뒤 각 분야사 학자들 12명에게 원고를 보냈다. 거기서 일단 비판적 교열을 받아서 많이 수정을 했다.

ⓒ시사저널 우태윤

▶개인적으로 전통문화의 어떤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해 보이지 않는다(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말한 백제의 미학이다. 왕흥사 사리함은 검이불루이고, 미륵사 출토 사리함은 화이불치이다. 다보탑은 화이불치, 석가탑은 검이불루이다.

우리는 고구려(강인)·백제(우아)·신라(화려) 문화의 아름다운 유산을 기왓장 속에서도 물려받았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미감이 어떤 식으로 분화되고 화려해질 수 있는지를 삼국의 기왓장이 잘 설명해준다. 그것이 우리 미감의 든든한 밑바닥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조성 작업도 지휘했는데.

국가에서 만들었다면 그렇게 못 만들었을 것이다. 유언에 의하면 화장해서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세우라는 것인데, 유족은 매장을 하겠다는 입장이고….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것을 잘 만드는 것도 우리 시대의 문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조경 전문가·화가·조각가·역사학자·시인·도예가 등이 머리를 모았다. 무덤에 설치미술과 건축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최근 광화문 현판 등 문화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많으니까 논쟁이 이는 것이다. 광화문 현판의 경우 시멘트 복원이라면 기존의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총독부 시절 이전의 경복궁을 복원하는 개념이기에 이 시대에 가장 잘 쓰는 서예가가 쓰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내가 청장이던 시절 여초(김응현)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가 작업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지금 어느 서예가 한 명에게 글을 받겠다고 하면 10명이 서로 적격이라고 싸울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허물기 전에 걸렸던 현판을 복원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광화문 복원 공사 때 가림막을 강익중의 작품으로 한 뒤 일반 공사 현장에서도 유행이 되었다.

설치미술가 작품은 갤러리 안에 전시되고 막상 설치미술가가 설 땅은 간판쟁이가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강익중에게 제안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나라에는 그의 작품 값을 낼 돈도 없지만 예산을 배정하기도 어려웠다. 그 문제를 강익중이 풀었다. 내 평생 언제 50m×25m의 작품을 해보겠느냐고…. 대신 작품은 나중에 도로 수거해간다고 해서 성사되었다. 우리가 무얼 하나 잘해놓으면 벤치마킹하는 데 도사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는 좋은 본보기를 제시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웃음)

▶최근 국새 문제가 불거졌다. 어떻게 보는가?

내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할 때 인간문화재 신청이 들어왔지만 그 사람(제4대 국새제작단장 민홍규)을 지정하지 않았다. 고궁 박물관 금속공예 큐레이터에게 그것(민씨가 갖고 있다는 국새의 전통 제작 기법)의 참된 가치를 물었는데 부정적인 의견을 내더라. 그래서 행정안전부 자체에서 그 사업을 집행한 것이다. 만약 내가 승인했다면 지금 큰일이 났을 것이다.

충남 부여에도 집을 마련해 머무르고 있는 그는 백제 문화의 복원과 관련해 “백제를 살리려면 부여 정림사를 살려야 한다. 시내 한복판에 썰렁하게 남아 있는 정림사를 불국사처럼 복원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3대 입담으로 꼽히는 유교수의 문화유산 해설을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있다. 그는 해마다 4월, 5월, 10월, 11월 마지막 토요일에 부여에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 직접 답사를 진행한다. 부여문화원 누리집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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