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의 빈자리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 서호정│스포탈코리아 기자 ()
  • 승인 2010.10.18 15: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구 한·일전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대안

 

▲ 지난 10월12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일본 친선 축구경기에서 벤치를 지킨 박지성 선수(오른쪽). ⓒ시사저널 윤성호

박지성이 없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 이후 박지성은 두 번의 월드컵과 무수한 A매치에서 국가대표 에이스 역할을 도맡아왔다. 박지성의 부재는 곧 대표팀의 위기였고, 그의 활약은 곧 대표팀의 승리로 이어졌다. 지난 10월12일 열린 한·일전은 박지성이 없는 대표팀의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경기였다. 하지만 박지성의 심장이 영원히 대표팀을 위해 뛸 수는 없다.

■ 박지성 결장에 ‘에이스 부재’ 통감

통산 73번째 한·일전. 올해 가진 두 번의 한·일전에서 모두 승리한 한국은 지난 10년간 거두지 못한 홈 승리로 한·일전 3연승을 거두겠다는 목표 아래 해외파를 모두 불러들였다. 그러나 한·일전이 열린 12일 밤, 에이스인 박지성은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이 재발하는 바람에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박지성의 한·일전 결장이 최종 확정된 것은 경기 하루 전인 11일이었다. 이미 박지성은 10월8일 훈련이 끝난 뒤 대표팀 의무팀과 동료들에게 “무릎이 이상한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다. 온전치 않은 몸 상태로 9일 명지대와의 연습 경기를 소화한 박지성은 결국 무릎에 이상이 왔다.

당초 조광래 감독은 한·일전의 키포인트로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전환을 고려하고 있었다. 미드필더들의 능력에서는 세계적 수준인 일본과의 중원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앞선 두 경기에서 측면에 세웠던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그 계획은 무너졌고 경기 이틀을 앞두고 부랴부랴 새 판을 짜야 했다. 에이스 없이 한·일전에 나선 조광래호는 예상대로 일본의 미드필드진에 고전했다. 볼 점유율·패스 성공률 등이 모두 열세였다. 수비진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정성룡의 선방이 없었다면 홈에서 일본에 패할 수도 있었다. 전방에서 박주영이 고군분투했지만 그의 움직임을 살려줄 조력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박지성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조광래 감독은 신예 윤빛가람에게 박지성의 대역을 맡겼지만 그는 활로를 열어주지 못했다. 맨유에서의 박지성과 달리 대표팀의 박지성은 경기의 흐름 자체를 뒤집어주는 선수이다. 박지성이 살아야 박주영도, 이청용도 살 수 있지만 박지성의 부재로 한국의 공격 옵션은 무언가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경기 후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이 출전하지 못하면서 한·일전에 맞춰 준비했던 것들에 혼란이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박지성이 없는 상황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박지성이 없을 경우를 상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새로운 숙제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 박지성 괴롭히는 ‘시한폭탄’, 오른쪽 무릎

산소 탱크라는 별명처럼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휘젓는 박지성이지만 그의 기동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인 오른쪽 무릎은 반복된 수술과 재활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다. 박지성의 오른쪽 무릎이 첫 시련을 맞은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PSV 아인트호벤에 이적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박지성은 반월상 연골판 부분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부상 정도는 크지 않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미래를 내다보고 수술을 권유했다.

이후 4년간 박지성의 무릎 상태는 건강했고 네덜란드 무대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2007년 4월 다시 오른쪽 무릎에 비상등이 켜졌다. 연골 손상으로 인해 미국 콜로라도로 건너가 연골 재생 수술의 일종인 천공 수술을 받은 것이다. 천공 수술은 무릎 연골에 미세한 구멍을 내 연골 아래로부터 혈액이 흘러나와 연골을 재생시키는 방식이다.

당시 박지성은 호나우두, 판 니스텔로이, 델 피에로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무릎 부상을 도맡아 치료하던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집도 아래 성공적인 수술을 받았고 8개월 뒤 그라운드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공 수술의 후유증으로 박지성은 무릎 부위에 관절염 증세를 안게 되었다. 재생된 연골의 표면이 거칠어서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금세 염증이 생기고 물이 차 무릎이 부어오르는 것이다. 천공 수술 후 박지성은 2008년 6월과 2009년 10월 염증 증세가 나타나 한동안 경기를 쉬어야 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직전에도 통증이 발생해 스페인과의 마지막 평가전에 나서지 못했다. 시한폭탄과 같은 박지성의 오른쪽 무릎은 맨유에서나 대표팀에서나 특별 관리 대상이다.

■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박지성 대안 찾기

박지성은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다. A매치를 위해 왕복 하루를 소비하며 오가야 하는 장거리 비행은 점점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그의 오른쪽 무릎이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를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이후 대표팀 경기를 치르고 돌아간 뒤 세 차례나 무릎 통증이 박지성을 엄습했다. 대표팀에서 발생한 통증으로 인해 결장하게 될 경우 선수층이 두터운 맨유는 박지성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꺼내 든다. 부상에서 회복해 돌아와도 쉽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부진이 계속되며 팀내 입지가 좁아진 박지성은 이번 부상으로 인해 맨유로 돌아간 뒤 2주 가까이 쉬어야 하는 좋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스타플레이어의 경우 현역 은퇴는 곧 대표팀 은퇴로 이어진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서른 살이 넘으면 자진해서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대표팀 일정으로 인해 동반되는 피로를 피하고 소속팀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박지성의 팀 동료인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가 수년 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고 맨유 일정에만 집중하며 선수 생활을 늘려가는 경우이다. 그 때문인지 박지성 자신도 지난 남아공월드컵 기간 중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박지성은 고향인 수원에 박지성축구센터를 건립하고 모교인 명지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위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미래에 대한 준비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이번 한·일전을 준비하는 중 얻은 외박 기간 동안에 영어시험을 치르기도 했던 그는 “이제 선수 생활의 끝이 보인다. 어렸을 때 싫었던 공부가 좋아진다”라고 말해 다시 한번 멀지 않은 시점에 은퇴할 것을 시사했다.

이번 무릎 통증으로 박지성은 아시안컵 출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임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박지성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조광래 감독에게는 심각한 타격이다. 하지만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위해 영원히 현역 선수로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10년 넘게 대표팀을 위해 봉사했고, 이제는 떠날 시기를 조심스레 저울질하고 있다. 이번 한·일전을 통해 느낀 위기의식은 언젠가는 시작했어야 할 박지성의 대안 마련을 조금 더 빨리 이끌어낼 수 있게 했다. 제2의 박지성, 혹은 박지성을 능가할 새로운 엔진을 찾아야만 조광래호도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