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각 높아 오락물도 정치와 연결”
  • 밴쿠버·이정현│통신원 ()
  • 승인 2010.10.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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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화비평가 토니 레인즈가 말하는 ‘한국의 영화감독’
ⓒ부산일보

 ‘세계에서 가장 크게 권위를 인정받는 아시아 영화 전문가.’ 지난 9월30일 개막한 캐나다 밴쿠버국제영화제(VIFF) 경쟁 부문 용호상 심사를 위해 밴쿠버를 찾은 봉준호 감독은 토니 레인즈(Tony Rayns) 밴쿠버국제영화제(VIFF) 프로그래머에 대해 묻자 이렇게 소개했다. 토니는 아시아 주요 감독을 비평하고 DVD 해설에 참여했으며, 한국 주요 영화제에 가장 많이 초청되는 외국 비평가이다.

1948년에 태어난 영국 평론가인 토니의 명함에는 영어·한국어·중국어·일본어 4개 언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밴쿠버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그를 만났다. 첫 질문은 “왜 한국의 영화감독은 정치적 논쟁에 끼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나”였다. 이런 질문을 던진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경쟁 부문 심사를 위해 영화제를 찾은 봉준호 감독은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당황해하며, 답변을 피했다. 계속된 질문에 대해 봉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라며 정치를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짬뽕을 고르는 것’에 비유했다. 정치 논쟁에 끼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로 느껴졌다.

봉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설명하며 토니에게 앞의 내용을 질문하자, 토니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정치는 매우 위험한 영역(dangerous area)이다”라고 답했다. 그런 측면에서 토니는 박광수·장선욱 감독을 높이 평가했다. 토니는 “박광수·장선우 감독은 광주 민주화운동 등 반정부 영화를 용감하게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토니는 과거 군사 정권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던 박찬욱 감독에 대해 “박감독은 1993년 군사 정부하에서도 정치적 성향의 영화를 하지 않았고, 그 시절부터 오락영화(entertainment)를 만들었다. 작품성이 강하고, 영화를 잘 만들어왔다”라고 평했다.

“감독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나”라는 질문에 대해 토니는 “물론 아니지만, 한국 감독의 경우에는 정치적 자각이 높다”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토니는 일본 영화와 한국 영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토니는 “올해 경쟁 부문 용호상 수상작인 일본 히로하라 사토루 감독의 <굿모닝 투 더 월드(Good mornig to the World)>는 정치적 관점(political dimension)이 없다. 한 정당(자민당)이 지나치게 오래 집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라고 분석했다. 토니는 공산당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중국 또한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해 용호상을 수상한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의 경우 “주인공과 부모의 대화에서 분명하게 정치적인 인식(political awareness)을 하고 있고, 계급적 차이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다”라며 정치적 성향이 녹아들어가는 경향을 설명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한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 역시 “SF 판타지이지만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캐릭터들이 자신이 속한 계급·배경·교육 정도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등 뚜렷한 정치적 관점을 영화에 담아온 장선우 감독에 대해서, 토니는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 공통점이 있다. 명문대 출신으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사회주의 정당을 포함해 어떤 정당도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정리했다. 

▲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주최한 한 포럼에 참석했던 토니 레인즈(맨 왼쪽). ⓒ부산일보

“흥행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대화 주제를 정치에서 돈으로 옮겼다. 첫 질문은 영화 산업의 생존 문제였다. “한국에서 이름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감독은 봉준호, 박찬욱, 윤제균, 김용화 네 명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토니는 “질문부터 잘못되었다. 언급된 네 명의 감독 역시 흥행을 보장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토니는 할리우드에서 회자된다는 ‘영화 산업은 누구도 알 수 없다(In the film business, nobody knowsanything)’라는 격언을 소개하며, “흥행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토니는 봉준호 감독이 준비 중인 <설국열차> 역시 “값 비싼 재앙(expensive disaster)이 될 수 있다”라며 흥행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는 <설국열차>와 관련해 봉감독은 예산 규모가 3백억~4백억원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물었다. 현 정부의 예술계 지원 정책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우선 영화아카데미 용도 변경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카데미는 개교 당시 한국의 유일한 영화학교였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학교가 있다는 점에서 현재 다양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논의 가운데 “부산으로 학교를 옮겨, 아시아 영화인을 불러들여 영어로 교육시키는 아시아필름아카데미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나친 자부심(arrogant)’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회오리바람>의 장건재 감독은 미디액트 사업을 통해 DVD로 작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라며 최근 미디액트 사업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 것 역시 비판했다.

이 부분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예산이 삭감되거나 중단된 영화계 단체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제에 참석한 한 프로듀서는 “김명곤 장관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정부가 주도하는 영화 지원 정책에 문제점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순수 영화예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상업 영화는 영화아카데미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어, 사립학교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는 주장이다. 사립 영화학교는 운영을 위해 학생 수를 늘려왔고, 이것이 교육 부실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수요 공급에 맞게 구조가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니 레인즈에게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간단했다. “모른다”였다. 토니는 부연 설명했다. “정부는 의무를 가지고, 문화를 지원해야 한다. 조성희·박동현 감독 역시 이런 지원에 힘입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원을 해야 성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정된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는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9월30일 개막한 제29회 VIFF는 10월15일까지 전세계 80개국에서 온 3백59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 영화는 총 14편이 초청되었다. VIFF에 상영된 한국 영화는 장편영화로는 <하하하>(홍상수), <옥희의 영화>(홍상수), <시>(이창동), <아저씨>(이정범), <변신>(이삼칠), <기무-기이한 춤>(박동현), <나의 영화 그리고 나의 이야기>(김태호 외 6인), <짐승의 끝>(조성희)이 있다. 이 가운데 <기무-기이한 춤>(박동현), <짐승의 끝>(조성희)이 용호상 경쟁 부문에 올랐으나, 수상은 일본의 히로하라 사토루 감독의 <굿모닝 투 더월드!(Good Morning to the World!)>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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