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벼린 검찰, 정·관계 친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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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태광·C& 이어 다른 대기업 사정설 ‘솔솔’…자금난 시달린 한 그룹 건설사 등 주목

 

▲ 김준규 검찰총장(왼쪽)이 10월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대기업을 겨냥한 사정 당국의 칼날이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기업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오너를 체포하는 일이 잇따라서 벌어지고 있다. ‘검찰발’ 사정 한파가 거세게 몰아치자 재계는 바짝 엎드린 형국이다. 대기업 정보수집팀의 안테나는 지금 사정 당국의 향후 행보를 탐지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재계에 대한 수사는 경우에 따라 정치권 비호 세력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여의도 정가의 긴장감 또한 높아가고 있다.

검찰이 지난 9월16일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진 한화그룹의 서울 장교동 본사와 여의도 한화증권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대기업 사정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10월13일에는 오너 일가의 불법 상속·증여 의혹 등을 파헤치기 위해 태광그룹에 들이닥쳤다. 공교롭게도 한화·태광 그룹 수사는 서울 서부지검 형사5부가 동시에 맡고 있다. ‘타고난 칼잡이’로 불리는 남기춘 서부지검장이 진두지휘하자 재계와 검찰 안팎에서 “검찰의 대표적 ‘강골’인 남지검장이 이번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10월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은 이른바 ‘그랜저 검사’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수사에 대한 미진함을 지적하는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면서도, 시종 여유 있는 자세를 보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여유가 아니었겠느냐”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김총장은 이날 “(대검) 중수부가 1년여 만에 수사 체제에 들어갔다”라고 선전 포고까지 했다.

비자금 조성 의혹받는 다른 그룹도 도마에

아니나 다를까. 김총장의 발언이 있은 지 불과 3일이 지난 10월21일 대검 중수부는 C&(씨앤)그룹 임병석 회장을 긴급 체포하는 동시에 본사와 계열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C&그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중수부가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수사의 보도(寶刀)를 칼집에 넣은 지 1년 반에 다시 빼든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중수부의 칼날이 또 다른 대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특히 비자금 조성이 용이한 건설사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수사 대상 대기업은 두세 곳 정도이다.

그렇다면 검찰의 다음 수사 대상은 어디일까. 우선 대형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A그룹을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그룹의 건설사는 ‘고려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한 시행사와 함께 수도권에서 대형 건축 사업을 벌였다. 이를 위해 시중 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았으나, 미분양 사태에 부닥쳐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어 ‘여권의 유력 인사’에게 구원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인사가 직접 나서서 정부 기관장과 접촉해 “(거액을 대출해준) 은행장에게 전화해서 대출금 상환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는 등의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A그룹 계열 건설사와 한 시행사가 대형 사업권을 따내는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대출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여권 인사’가  개입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내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B그룹 역시 검찰이 주목하는 대기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B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해외에 벤처 기업을 여럿 설립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외화를 투자했다. 하지만 이 벤처 기업들은 유령 회사인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별도로 사람들을 고용한 흔적이 없었고, 특별한 사업 실적도 없었다. 결국 B그룹은 몇몇 해외 벤처 회사들을 손실 처리하면서 문을 닫았다. 다시 말해,  B그룹 오너가 해외에서 비자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유령 회사를 차렸다가 손실 처리하면서 거액의 투자금이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다. 그 투자금이 B그룹 오너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B그룹은 해외에 설립한 벤처 기업들로부터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했으며, 장부상 기록되어 있는 매출도 사실상 해외의 통관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 꾸민 가짜 매출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B그룹이 해외 벤처 기업 설립이라는 명목으로 나랏돈까지 가져다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의 수사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식사지구 재개발 사업도 게이트 비화 가능성

▲ 10월21일 대검 중수부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장교동의 C&그룹 본사. ⓒ시사저널 유장훈

A·B그룹과 같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재개발 사업 비리 의혹 사건도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10월18일 이 지역 재개발 시행사 두 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보다 앞선 9월29일과 10월11일에도 또 다른 시행사와 재개발조합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시행사들 가운데 한 곳인 ㄷ사의 회장이 주도해서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으며, 재개발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도 편법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사업과 관련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유력 인사가 여럿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이 지역뿐 아니라 여의도 정가에서도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식사지구 재개발 사업의 시행업자들이 호남 출신들이라는 점 때문에 여당보다는 민주당으로 더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의욕도 상당히 강해 보인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특수2부는 다른 사건들에 대한 수사를 일단 보류한 채 이 사건에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큰 작품’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선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 “연말 정국에 터질 대형 게이트가 될 것이다”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저승사자’인 국세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10월19일 이례적으로 국내 20개 대형 법무·회계법인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일부 대기업들은 아직도 과거 세금을 보던 자세에 안주하고 있다”라면서 대기업·대주주들의 탈세에 대해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국세청이 최근 롯데건설과 아주캐피탈 등을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간 데다, 10월 초부터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이청장의 선전 포고가 일회성 엄포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대기업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10대 대기업의 한 간부는 “MB(이명박)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같다”라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현재 대기업 사정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배경을 두 가지로 해석했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공정 사회’를 화두로 ‘레임덕’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경제 성과를 올리려면 무엇보다 고용 문제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정 정국이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대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사정 정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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