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에 맛들인 MBC 끝장을 보려는가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2.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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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아나운서 뽑는 코너 기획…방송사 위상 추락 우려

▲ MBC ⓒMBC 제공
MBC가 이상하다. 한없이 추락하는 느낌이다.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체통이 사라져간다고 할까? 대표적인 사례가 오디션이다. 오디션은 케이블TV의 히트 상품이었다. M.net이 <슈퍼스타K>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러자 MBC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해 <위대한 탄생>을 만들었다. 된다 싶은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느낌이다.

MBC는 <위대한 탄생>에서 계속 규모를 강조했다. 자기네 것이 케이블TV의 오디션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자기 자랑이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랑에 몰두할수록 MBC의 체통은 망가져갔다. <위대한 탄생>은 바로 본편을 시작하지 않고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오프닝편을 먼저 내보냈는데, 시청자들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비웃음을 보냈다. MBC는 대학가요제를 진행하면서도 자신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라는 낯 뜨거운 자기 자랑을 내보낸 바 있다.

<위대한 탄생>이 성공하자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늘을 즐겨라’의 구성마저도 오디션 형식으로 바꾸는 기민함을 과시했다. 멤버와 게스트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심사위원의 독설을 듣는 쇼를 구성한 것이다. 록음악에 도전했을 때는 여성 출연자 둘이 눈물을 쏟았을 정도로 독설이 매서웠다. 이때 f(x)의 루나가 울었다는 이유로 네티즌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출연자에게 무참한 모욕감을 안겨서 자극적인 상황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전에 제작진이 심사위원에게 아주 독한 독설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슈퍼스타K>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 설정으로 케이블TV에서나 나올 수 있는 쇼라는 비판을 들었었다. 그런데 존중받는 지상파 방송사라던 MBC가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션 사랑’의 절정 보여줄 <신입사원>

MBC ‘오디션 사랑’의 절정은 ‘신입사원’이다. MBC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계속 부진하자 현재의 코너들을 모두 폐지하고, 프로그램 이름까지도 <일밤>으로 바꾸는 등 전면적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 기획되는 코너가 ‘신입사원’인데, 바로 MBC의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가수 오디션이 된다 싶으니까 아나운서 오디션까지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MBC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라는 데 있다. 방송 3사의 지위는 독점적이다. 지상파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이 중의 한 곳에 반드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송사에서 오디션을 서바이벌 프로그램 형식으로 치른다면? 아나운서 지망자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전 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진다. 낙방하면 어느 회사의 탈락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다른 회사 오디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점점 독해지는 서바이벌 오디션 상황은 예기치 않게 누군가를 스타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신에 누군가를 대중의 공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슈퍼스타K>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 참가자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MBC가 책임져줄 수 있나?

또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는 시청자에 의해 ‘신상 털기’를 당할 가능성도 아주 크다. 시청자가 신상 털기를 하기 전에 프로그램 제작진이 집에까지 찾아가 가족 인터뷰를 하는 등 사생활 자체를 오디션의 일부로 공개하기 일쑤이다. 아나운서 시험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피해를 감수할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물론 누군가는 큰 이익을 보기도 하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피해자가 나온다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가수 오디션의 경우에는 굳이 그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가수가 될 경로가 많기 때문에,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 자체가 자신의 사생활 공개에 어느 정도 동의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의 아나운서 시험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독점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방송사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입사 지망자에게 과도한 피해를 강요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MBC는 지금 ‘신입사원’ 지원자에게 자신들의 모습과 개인정보를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며, 차후에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발생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MBC에게는 지원자의 피해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식의 내용에 동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쯤 되면 케이블TV보다도 더 막 나가는 수준이다. 교양 프로그램인 <W>를 폐지하고 <위대한 탄생>을 만들더니, ‘오늘을 즐겨라’를 변질시키고, 아예 <일밤>을 오디션 형식으로 재편하며 아나운서 지망자들을 볼모로 잡기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MBC의 추락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돌 체육대회의 선정성과 <뉴스데스크>의 ‘예능화’

떨어지는 MBC의 체통은 다른 데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 카라의 구하라가 한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서 달리기를 잘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 화제성이 MBC를 자극했을까? 결국 추석을 맞아 아이돌 수십여 명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이틀에 걸쳐 달리기를 하는
<아이돌 육상대회>를 개최하고 만다.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 설에는 더욱 규모를 키워 <아이돌 육상·수영대회>까지 열었다. 수영대회에서는 수중 촬영까지 동원해 걸그룹의 수중발레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성을 수영장 안에서 움직이게 하고 수중 촬영을 할 경우 어떤 그림이 나올 것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 일이다.

MBC는 걸그룹 멤버를 단체로 출연시켜 폭로 경쟁을 벌이는 <꽃다발>을 기획하기도 했다. 역시 MBC의 <세바퀴>에서 지나친 선정성으로 비난받았던 현아의 골반 댄스를, 여기서는 모든 걸그룹 멤버가 돌아가면서 췄다.

한편 MBC의 주말 <뉴스데스크>는 요즘 ‘예능 데스크’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중요한 사안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보다 자극적인 상황 설정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보도가 이어져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청소년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며 PC방의 전원을 갑자기 내려 사람을 자극시키는 황당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의 폭력성을 알아보려 바둑판을 엎어보았습니다’라는 식의 조롱 패러디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MBC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중받는 방송사였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추락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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