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FX 3차’ 사업에 누가 날까
  •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1.03.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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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공습 중 F-15E 추락으로 변수 생겨…보잉 사 ‘초비상’, 록히드마틴 사는 ‘희색’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겨냥한 나토 다국적군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공습이 시작된 3월18일부터 1주일째 나토는 작전지휘권 문제로 큰 혼선을 빚고 있지만, 자국이 자랑하는 주력 전투기를 경쟁적으로 출격시키는 데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한때 한국 공군이 탐내던 유럽의 미라주2000, 라팔, 유로파이터, 토네이도와 같은 전투기가 총 출동한 것은 물론, 미국의 F-15E, F-16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전투기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몸매와 최신 성능을 뽐내는 이 전투기들은 마치 미인 대회 출전자들처럼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3월24일 기준으로 이들의 총 비행 시간은 6백 시간을 넘기고 있고, 1천 시간 돌파도 시간문제이다. 21세기 초에 한국의 전투기 시장에서 유럽 전투기와 미국 전투기의 메이저리그가 벌어지던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이제는 리비아에서 실전 검증 전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리비아에서의 전투기 향연은 차기 전투기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짐작케 한다.

▲ F-15K보다 100배 이상 적은 F-35. ⓒEPA

형형색색 전투기들의 활약상이 드러난 3월21일 밤 11시33분(현지 시각), 리비아 공습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F-15E 전투기 한 대가 반정부군의 거점인 동부 도시 벵가지 인근 고트 술탄 지역에 추락했다. 한국 공군이 운용하는 F-15K 전투기와 거의 같은 레벨의 전투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건이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는 “전투기가 기기 고장을 일으켰다”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리비아군의 대공화기에 추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기종에 비해 개발 시점이 가장 오래된 이 전투기는 한때 ‘노쇠한 헐크’로 불릴 정도로 이제는 한물간 전투기로 알려졌으나, 2002년 한국과 싱가포르에 판매가 성사된 이후 생산 라인이 기사회생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보잉 사는 지난해에 F-15E에다 레이더 반사 면적(RCS: radar cross-section)을 감소시킨 5세대 전투기 기술을 사용한 F-15SE를 선보인 바 있다. 기존 F-15E에다 내부에 무장을 적재할 수 있는 컨포멀 연료 탱크(CFT)를 도입하고 수직 꼬리 날개를 15˚ 외각으로 기울여 레이더 반사 면적을 줄였다. 또한 레이더 흡수 재질을 사용해 스텔스 성능을 향상시켰다. 사일런트 이글은 한국,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F-15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에게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35·유로파이터·F-15SE 등 ‘3파전’

한국 공군의 ‘FX 3차’ 사업에 반드시 진출하려고 다짐하던 보잉 사의 입장에서는 이번 리비아에서의 추락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경쟁사인 F-35 생산업체 록히드마틴 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F-35는 경쟁 기종에 비해 스텔스 기능이 가장 탁월한 제5 세대 전투기임에 틀림없지만, 개발이 지연되고 있고 가격도 예상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어 미 공군도 현재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이 기종을 도입하기로 했던 이스라엘도 올해 도입 시기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진출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는 록히드 입장에서 F-15E의 추락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 미국 공군 F22 전투기는 스텔스 기능에서 레이더 반사 면적이 F-15K보다 1천 배 이상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EPA

역시 한국 진출을 노리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생산업체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역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조심하는 눈치이다. 유로파이터 개량형은 공중전 능력은 물론 초정밀 대지 타격 능력이 한층 강화된 기종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4개국이 자국의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공동으로 개발한 기종이다. 기체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 탄소섬유 복합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무장 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는 평이다. 2002년에도 한국에서 라팔, F-15K와 함께 3파전을 벌였던 바로 그 기종의 개량형이다. 당시 공군시험평가단은 유로파이터를 가장 선호했으나 그때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대상 기종에서 일찌감치 탈락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리비아에서 그 성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한국 진출을 노릴 만한 상황이 되고도 남았다.

이렇게 록히드마틴 사의 F-35,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보잉 사의 F-15SE 등 3개 기종은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 사업, 즉 FX 3차 사업의 유력한 기종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대다수 언론은 지난 3월8일 국방부가 국방 개혁 과제를 확정하면서 “FX 3차 사업으로 스텔스 전투기 전력화 계획을 2015년 이전까지 앞당길 계획이다”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만난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반드시 현 정부 임기 중에 구매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일정으로 가는 것 같다. 정권 핵심부의 구매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의 경우에도 애초 목표로 했던 2015년보다 더 이른 시기에 도입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14일 청와대에서 밝은 표정으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이전 스텔스 전투기 도입’ 그 시점이 기존의 예상을 앞지른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특히 F-35의 경우 향후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현재 스텔스 전투기 개발 수준, 가용 예산, 미국 내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절대 맞출 수 없는 전력화 시점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합참의 5년 주기 기획 문서인 ‘2013~2017 중기 군사 전력 목표 기획서(JSOP)’와 ‘2014~2018 기획서’에서는 똑같이 2020년까지 총 60대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합참의 기획서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는 2015년 두 대, 2016년까지 여덟 대, 나머지 50대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도입할 장기 소요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당초 기획 문서에서 제시한 일정보다 전력화를 앞당기려면 아직은 개발 중이어서 실체가 없기 때문에 ‘깡통 비행기’로 알려진 F-35는 자동 탈락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로파이터와 F-15E의 경쟁이 될 것이지만, 최근 국방부 안팎에서는 이와 달리 ‘F-35가 가장 유력한 기종’이라는 아리송한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와 같은 말이 나오는 가장 확실한 논거는 합참의 기획 문서에서 ‘차기 전투기의 핵심 성능은 스텔스 기능’이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스텔스 기능이 가장 뛰어난 F-35가 유력 기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유로파이터나 F-15E는 정면에서나 일부 스텔스 기능이 발휘될 뿐, 애초부터 스텔스로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방위에서 스텔스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종이 아니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국방부는 ‘적극적 억제 전략’을 향후 군의 새로운 작전 개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 목표를 정밀 타격하는 스텔스기의 도입에 대해 정권적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당사자는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스텔스기 도입에 관심을 급격히 고조시킨 계기는 지난 1월14일, 중국과 일본을 순방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데서 비롯되었다. 게이츠 장관은 정오 무렵 서울에 도착해 국방부에서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40여 분간 회담한 뒤 청와대로 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게이츠 장관의 방한은 ‘스텔스 전투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말한다. “게이츠 장관이 청와대에서 이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1월11일 방중 당시 있었던 중국의 J-20 스텔스 전투기 시험 비행을 언급하면서 ‘한국도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가 꼭 필요하다’라며 도입을 권고했다. 이에 이대통령이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면) 그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묻자, 게이츠 장관은 ‘FMS(대외 군사 판매)는 가능하지만 그 외의 것은 돌아가 검토해보아야 한다’라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게이츠 장관이 다녀간 직후 미국 록히드마틴 사 관계자들이 급히 한국을 방문해 방위사업청 관계자와 한국우주항공(KAI) 관계자들을 접촉했고, 이 자리에서 우호적인 F-35 판매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가격과 도입 시기, 기술 이전에 대한 파격적 제안이 있었고, 이에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측의 파격적 제안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군 당국이 이를 제대로 검증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계속되는 개발비 상승과 성능상의 문제로 미 공군도 F-35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파격적 제안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 김관진 국방부장관(가운데)이 지난 3월8일 국방부에서 국방 개혁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차기 전투기 핵심 성능은 스텔스”

한국군의 ‘적극적 억제 전략’, 즉 북한의 방공망을 돌파한 정밀 타격 능력 확보라는 안보 논리도 F-35를 밀어붙이는 논거이다. 전장의 종심이 짧고 조밀한 방공망을 자랑하는 북한의 핵심 목표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스텔스 기능은 레이더 반사 단면적(RCS)을 얼마나 축소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F-15K의 RCS에 비해 F-35는 100배 이상, F-22(록히드마틴 사)는 1천 배 이상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투기끼리의 1 대 1 가상 교전에서 F-22는 F-15·F-16과 맞붙어 1백44전 전승의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합참의 기획 문서에 명기된 ‘차기 전투기의 핵심 성능’인 스텔스는 차기 전투기 선정에서 가장 명확한 지침이 된다.

이러한 록히드마틴의 독주를 그냥 보고만 있을 보잉 사가 아니다. 당장 보잉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미국 현지 공장으로 초청해 언론 플레이를 전개했고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보잉 사의 논리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스마트 무기와 무인항공기 등 스텔스기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는 새로운 무기 출현도 예견되는 상황에서 스텔스 전투기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러 출처의 감시 정찰 자산(ISR), 예컨대 이지스레이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 무인항공기와 제4 세대 전투기가 융합된 네트워크 작전이 스텔스 전투기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F-15SE가 훌륭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EADS 역시 영국 대사관을 전면에 내세워 정치권을 접촉하고 있다. 거의 보잉 사와 같은 논리로 F-35의 한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국방부는 예정했던 60대 도입은 무리라고 보고 현재 FX 3차 사업을 쪼개서 1차로 20대를 구매하는 ‘미니 FX 사업’으로 변형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전투기의 경쟁은 한국에서도 똑같은 모양의 로비전으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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