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 ‘반값’의 꿈을 아는가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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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에, 터널처럼 깊었던 겨울의 음산함을 걷어내고 폭탄 세일을 하듯 쏟아지는 봄볕을 놓치기가 아까워 동네를 한 바퀴 느리게 걸어보았습니다. 겨우내 힘겹게 웅크려 있던 작은 공원이며, 익숙한 건물의 간판들은 먼지를 말끔히 걷어낸 유리창처럼 밝고 투명했습니다. 파출소 옆 공터에는 개나리도 수줍게 얼굴을 내밀었더군요. 겨울이 그리도 길고 혹독해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봄은 그렇게 환한 웃음을 물고 우리 곁에 왔습니다. 계절의 약속은 늘 정확합니다. 그래서 ‘꽃 피는 4월’에는 또 어김없이 꽃이 피는 것이겠지요.

계절의 순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곳 전체가 어쩌면 약속과 약속의 결합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고객 감동을 약속하고, 전자제품에 일정 기간 무상 수리가 따르는 것 등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모두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토대로 하는 일종의 ‘신뢰의 교환’ 시스템인 것이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현실에서 그런 약속의 공조 체제가 무참히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 허무극은 이 정부에서도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가 있고, 좀 더 멀리는 세종시 건설 무효화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벨트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야심차게 내놓았던 공약입니다. 물 건너갔거나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큰 공약은 그 밖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장밋빛 경제 청사진을 담았던 ‘747 공약’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부터 지나친 포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그대로, 갈수록 잿빛으로 변하면서 대통령 전용기가 보잉 ‘747’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비아냥거림만 듣고 있습니다. ‘매년 60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도 여전히 뜬구름입니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은 또 어떻습니까.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정책은커녕 아무런 언급조차 없습니다. 얼마 전 대형 할인점에서 ‘통큰 ○○’이니 하며 이른바 반값 상품을 내놓았을 때 ‘미끼 상품’이라는 논란이 들끓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미끼 공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내놓은 쪽은 ‘아니면 말고’였는지 모르지만, 그에 솔깃한 국민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상심이 큽니다.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에 분노하는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꽤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그들은 학자금 대출을 피할 수 없게 하는 고액 등록금의 굴레가 결국 사회생활에서도 불공정한 출발을 부추긴다고 여기고 있습니다(12쪽 커버스토리 참조).

약속은 사회의 질서를 받쳐주는 거대한 기둥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늘 신중하게 준비되고 신중하게 말해져야 합니다. 부도 처리된 세종시나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과라도 있었지만, 반값 아파트·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책임 있는 말들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만 바보가 된 꼴입니다. 멀쩡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마음 아프게 한 이 엄청난 직무 유기를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솔직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약속 이행이 어렵다면 그 이유라도 속 시원히 털어놓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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