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스캔들’에 사르코지가 웃는다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1.05.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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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IMF 총재의 성폭행 미수 혐의 체포로 ‘안도의 한숨’

지난 5월15일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장인 프랑스의 지중해 칸 페스티벌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다름 아닌 ‘칸 스캔들’이 축제 분위기를 뒤덮어버린 것이다. 도미니크 슈트라우스 칸이라는 이름보다 이니셜 D.S.K로 더 유명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뉴욕발 스캔들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건 직후 프랑스 정가와 언론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프랑스 사회당 당수인 마틴 오브리는 성명을 통해 ‘토네이도’와 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회당은 변함없이 프랑스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칸 영화제 기간 동안 해변가에 설치된 특설 무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랑스 민영 카날플뤼스의 르 그랑 주르날은 사건 이튿날인 5월16일 영화제 특별 방송 중임에도 파리의 특별 스튜디오와 뉴욕을 실시간 연결해 사건을 보도했다. 휴양지 칸의 특급 호텔 로비에서는 영화배우들을 보는 대신 뉴스를 시청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랑 주르날의 정치 평론가인 쟝 미셀 아파티는 이번 스캔들에 대해 “참혹한 사건이다”라고 전제하며, D.S.K의 정치적 미래가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번 스캔들로 인한 반사 이익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번 스캔들로 누가 표를 더 얻을지는 모르지만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굴욕이다”라며 참담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시점에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수많은 분석과 정책 대결에 대한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스캔들의 파괴력은 당사자가 세계 경제 대통령이자 여론조사 결과 부동의 1위로 가장 유력한 당선 후보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 컸다.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그였지만, 대통령 이상으로 인식되는 세계 경제의 수장이라는 지위는 그에게 선거 운동보다 더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었다.

지난 4월 카날플뤼스에서 방영된 1시간 분량의 특별 다큐멘터리(기자가 1년간 동행 취재하며 국제 회의 모습과 생활상을 담았다)에서도 보이듯 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신뢰도는 사르코지를 앞질러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는 대선 레이스에서 완전히 제외됨은 물론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인 CSA의 제롬 생 마리 자문위원은 “D.S.K가 대선 레이스에서 탈락했으나 그의 무게는 지속적으로 존재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동안 그가 제시한 정책 기조나 그의 무게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관해 카날플뤼스의 쟝 미셀 아파티는 “사회당으로서는 두 가지 과제가 생겼다. 하나는 사회당의 단합을 이루는 것과 D.S.K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전자에 대해서는 “사회당의 주축인 마틴 오브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그리고 로랑 파비우스는 경선 전에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당은 이번 스캔들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경선은 정말 황폐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인간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D.S.K와의 연결 고리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지난 5월17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자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사진 위에 ‘K.O.’라고 적힌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을 읽고 있다. ⓒAP연합

사회당, 변신하는 데 중대 계기로 삼을 듯

30년 만의 정권 탈환을 코앞에 두고 예기치 못한 스캔들로 당혹감에 빠진 사회당 주변은 이례적으로 단결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선 후보 지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많은 의원은 D.S.K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강조했다. D.S.K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스와 올랑드 전 당수는 “혐의가 있다면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혐의가 없었던 것이라면 더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문제시되었던 뉴욕경찰의 처사와 국제 언론의 행보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 지난 5월16일 프랑스 사회당의 장 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가 ‘칸 스캔들’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

미국식 인도 절차와 언론의 태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사회당의 엘리자베스 기구 전 법무부장관은 “너무나 폭력적인 장면들이었다. 프랑스의 법적인 시스템이 미국과 같지 않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평했다. 지난 5월18일 프랑스 무가 일간지 20미뉴트가 BMF TV와 공동 조사한 여론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중 절반이 넘는 57%가 D.S.K가 음모에 빠진 것이라고 답했으며, 32%만이 음모가 아니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사회당을 구할 인사로는 전 서기장이었던 프랑스와 올랑드가 33%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이어서 마틴 오브리 당수는 23%, 전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이얄은 20%로 각각 나타났다.

사회당의 구원 투수로 점쳐지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르코지와 맞붙을 경우 1차 투표에서 23%를 획득해 22%의 사르코지를 간발의 차이로 이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사건의 심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의 최고의 수혜자가 사르코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동안 사르코지에게는 특별한 호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셈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번 칸 영화제에서 그의 지난 대선 기간 선거 운동에 관한 영화가 개봉되어 비판적인 여론에 불을 붙일 기세였다. 또 이번 스캔들은 사르코지의 영화에 대한 관심마저 식혀버렸다.

이와 더불어 영부인 브루니의 임신설이 공식화되자 사르코지에 대한 지지율이 더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아직까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영부인이 출산한 사례가 없다. 더군다나 영부인 캬를라 브루니의 뱃속의 아기가 쌍둥이라는 루머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며, 추락한 사르코지의 지지율이 브루니 덕분에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80%라는 의무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된 시라크 대통령처럼 오는 대선에서도 사르코지 또한 별다른 정책 대결 없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이것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재선에 도전했던 역대 재임 대통령 중 최하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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