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부르는 남중국해 21세기 냉전의 파도 ‘출렁출렁’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7.0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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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남아 각국과 영토 분쟁 벌이는 중국에 물리적 행사 자제 촉구하며 적극 개입 천명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이 마침내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이 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미국은 ‘완력’으로 영토 분쟁을 다루지 말라고 응수했다. 커트 캠벨 미국 동아시아 담당 국무차관보는 6월27일 하와이에서 열린 태평양 연안국 회의를 마친 후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모든 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중국과 베트남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으나 이 합의는 미국과 중국의 비난 성명으로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량 매장되어 있는 남중국해의 수많은 무인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는 중국, 베트남,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완 등이 얽혀 있다. 베트남은 최근 이 해역에서 해군을 동원한 실탄 훈련을 실시했으며, 필리핀도 중국이 “침략 행위를 했다”라며 해군 기함을 파견했다. 몇 주 전부터 시작된 이 분쟁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망하던 미국은 돌연 6월25일부터 2일간 하와이에서 태평양 연안국 회의를 소집하고 중국의 일방적 행동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방안을 토의했다.

이 분쟁과 관련해 이런 유형의 회의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호놀룰루 회의 개최는 지난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 연안국들의 고위 전략 경제 대화에서 결정되었다. 미국과 중국도 조만간 베이징에서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하와이 회의에서는 당사국들이 솔직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은 이 회의에서 미국이 태평양 국가이며 따라서 태평양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방관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 지난 6월1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남성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에 해적기를 합성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

오바마, 취임 초부터 동남아 쪽에 관심

캠벨은 특히 미국이 태평양에서 새로운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강력한 역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중국에 대해 관련 약소국들에 대한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몰두하느라 동남아 국가들과의 유대 강화를 소홀히 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취임 초부터 동남아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 남중국해 분쟁이 터진 후에는 이 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6월23일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의 해군력 증강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필리핀 해군 함정들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많이 노후화된 상태이다. 미국과 베트남 간 협력도 강화되었다. 양국은 최근 워싱턴 회의에서 남중국해 분쟁 대처 방안을 협의했다. 

1백70만㎢에 걸친 남중국해는 중국과 여러 국가들의 영유권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이 해역은 수백 개의 무인도와 산호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해양 생물의 보고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다 밑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와 석유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이곳에는 대략 2천1백30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석유 매장량이 된다. 관련 여섯 개 당사국들이 영유권 다툼을 벌이는 것도 석유 때문이다.

분쟁이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나 긴장을 표면화시킨 가장 최근의 사건은 중국과 베트남 선박 사이에 일어난 충돌이다. 사건은 즉각 모든 당사국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마침내 아시아의 군사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베트남 간의 첨예한 대결로 확대되었다. CNN은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남중국해의 파고가 자칫하면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초래하는 제2의 냉전을 유발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아시아연구프로그램의 선임연구원이며 남중국해 전문가인 마크 발렌시아 씨는 “이 분쟁이 어떻게 굴러가느냐에 따라 향후 20년 내지 30년간 아시아 지정학 구도의 청사진이 나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남중국해 분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영유권 분쟁의 역사는 수십 년 혹은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자원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 해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6월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28개국 아시아·태평양 국방 대표 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중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 회의에 처음으로 고위 대표를 파견한 중국은 자신들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호주 시드니 대학의 앨런 뒤퐁 국제안보연구소장은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 대표들은 의심스러운 시각으로 중국 대표의 발언을 지켜보았으며 회의장 분위기는 적대감으로 팽팽했다고 말했다.

모든 화근은 분쟁 해역에 대한 중국의 고압적 자세에서 나온다. 지난 5월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이 해저에 설치한 석유 및 가스 케이블을 중국 경비정이 절단했다고 밝혔다. 이 케이블은 베트남 국영 석유회사가 매설한 것이다. 이로부터 4일 후인 6월9일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 당시 중국 경비정은 해양 지질 조사를 위해 베트남 선박이 설치한 케이블을 잘랐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베트남 선박들이 중국 영해에서 불법으로 해양 조사를 하고 중국 어선들의 조업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선박뿐만 아니라 필리핀 선박도 중국 경비정과 충돌했다. 필리핀의 해양조사선은 지난 3월 중국 경비정들에 의해 케이블이 잘리고 충돌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은 양국 선박들이 분쟁 해역에서 불법 활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의 쿠이 레이 부상은 최근 CNN과 이례적으로 가진 회견에서 “중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당사국들을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가스 및 석유 자원이 자국 영해에 속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남중국해에는 소속이 불명한 가스 및 유정들이 산재해 있고 그래서 각국 선박들이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뒤퐁 연구원에 의하면 관련국들의 에너지 수급 불안, 특히 중국의 불안이 긴장 고조의 원인이다. 이 해역의 약소국들은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의해 가스와 석유 채굴권은 물론 어로권까지 박탈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선박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해역에 나가는 것도 중국의 선점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다.

분쟁의 핵심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라는 이름의 국제해양법이 놓여 있다. 이 법은 각국이 해안으로부터 2백 해리 내에서 해양 자원을 독점적으로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당사국들은 무인도나 심지어 쓸모없는 산호섬까지 진출해 EEZ를 설정한다. 

▲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베이징 교외의 제3 수비사단 훈련소에서 박격포 훈련을 하고 있다. ⓒEPA연합

각국, 석유 채취량 늘리려 심해까지 진출

중국은 남쪽으로는 스프라틀리 제도(南沙諸島), 북쪽으로는 파라셀 제도(西沙諸島)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을 자국 EEZ로 간주한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남중국해 전역이 사실상 중국 EEZ에 들어가게 된다. 베트남과 타이완도 이 두 개의 군도 전부를 자국 EEZ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은 남사군도의 일부에 대해서만 영유권을 주장한다. 브루나이를 제외한 다른 모든 당사국은 분쟁 도서의 일부를 점령하고 해군 시설이나 간이 공항, 심지어 리조트까지 건설했다. 일부 해양학자들은 “점유가 곧 소유이다”라는 인식이 남중국해의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은 이미 일부 분쟁 도서에서 석유를 채취해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도 부근 해역에서 소량의 석유를 생산 중이다. 각국은 석유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다투어 남중국해의 심해로 진출한다.

미국이 이 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1년 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열린 연례 국방회의에 참석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모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은 “클린턴 발언은 중국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남중국해가 중국의 ‘핵심 안보 관심사’라고 주장했다. 티베트, 신장(新疆), 타이완을 안보 관심 사항이라 했던 종전의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타이완, 신장, 티베트를 양보할 수 없는 안보 요소로 간주해온 중국이 남중국해까지 자국 안보 영향권에 편입하는 모습에 이번에는 미국이 경악했다. 이 태도는 워싱턴에 경종을 울렸으며, 그래서 클린턴은 급거 싱가포르로 달려갔다.

중국의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가스와 석유 외에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수많은 원자재의 수송로이기 때문에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사활을 걸자 동남아 국가들은 워싱턴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합동 군사 훈련 계획을 발표했다. 또 최근에는 필리핀 해역에서 합동 석유 채취 훈련도 실시했다. 양국 사이에 국방 차원의 접촉은 지난 1년간 부쩍 늘어났다. 과거 미군 기지를 추방했던 필리핀은 지금 미군의 복귀를 갈망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미국의 아시아 복귀에 안성맞춤의 기회를 주고 있는 셈이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행동을 과잉 해석하는 데는 다소의 위험이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EEZ는 각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미국은 EEZ를 탄생시킨 유엔 해양법 협정을 들어 중국을 매도하지만 스스로는 아직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또한 EEZ 내에서의 배타적 통행권을 강조하면서도 해군 첩보기 EP-3를 수시로 남중국해에 파견한다. 중국이 이를 이중 잣대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분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오락가락한다. 때로는 강력하고 때로는 온건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남중국해를 강점하리라고 전망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모든 분쟁을 쌍무적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을 당사국들과 개별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인 데 비해 동남아 국가들은 포괄적 타결을 바라고 있다. 중국은 이 방식에 반대한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 성장으로 동남아 인접국들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남중국해 분쟁 때문에 국가 이미지가 훼손된 것에 심기가 불편하다. 따라서 경제력을 동원해서 개별 국가들을 설득할 속셈이다.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각국의 인식은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저력에 부담 느낀 중국, 화해 손짓도

▲ 남중국해 스프라틀리 제도의 한 작은 섬에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다. ⓒEPA연합

이 분쟁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베트남의 역사와 잠재력이다. 베트남은 중국 청(淸)나라 시절 독립 투쟁을 통해 속국에서 벗어났다. 그 후에도 중국과 수많은 갈등을 빚었으나 결코 굴복하거나 패배한 적이 없다는 역사적 긍지가 지금도 베트남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베트남은 다시 30년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긴 고난 속에서도 베트남은 최종적으로 승리자가 되었다. 프랑스가 물러간 후에는 2차 대전에 휘말려 일본에 점령당했으나 일본의 패배로 독립을 쟁취했다. 다음에는 옛 소련이 지원하는 호치민(胡志明) 정권의 등장으로 남북 베트남으로 분단되는 굴곡을 겪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동남아에서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베트남에 개입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게릴라 전술을 익힌 호치민의  완강한 저항과 국내 반전 여론에 밀려 1975년 4월30일 사이공 철수로 미국은 2차 대전 승리 이후 첫 패전의 상처를 입었다. 베트남 철수를 결정한 닉슨 독트린은 지금도 미국의 치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심술궂은 아이러니를 자주 연출한다.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등장으로 베트남과 미국은 다시 우방국이 되었다. 인구 9천만명인 베트남은 광대한 영토와 강인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동남아의 맹주로 성장했다. 1인당 소득은 3천 달러로 중국에 거의 접근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시장주의에 힘입어 경제는 동남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이 만만하게 볼 국가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중국이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것도 베트남의 저력을 계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남중국해의 긴장이 미국의 군사 개입 증가와 맞물려 동남아에서 21세기의 냉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추측은 그래서 과장된 전망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동중국해에서 일본이 중국 선장을 체포함으로써 발생한 중국과 일본의 대결 때도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으나 기우로 끝났다. 다만 남중국해 분쟁은 그 파장과 성격이 중-일 충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반(反)중국 시위 열기가 뜨겁다. 하노이 주재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중국을 비난하는 시위가 연 4일째 계속되었다. 양국 네티즌 사이에는 상대국 사이트를 해킹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대결 기세에서 중국이 오히려 베트남에 밀리는 모습이다.

아시아에서는 지난 25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다. 이 평화를 깨기를 바라는 나라는 없다. 문제는 오판이나 오해로 인해 원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12개월 내지 18개월이 남중국해 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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