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해저축은행 리스트’ 나올까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7.0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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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도피 중이던 박종한 전 은행장 자수…거액 불법 대출에 관여한 정·관계 인사 드러날지 주목

▲ 보해저축은행 고객들이 가지급금을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저축은행 비리의 ‘쓰나미’가 보해저축은행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다. 금감원, 검찰 등 정부 기관의 고위 인사뿐 아니라 유력 정치인의 측근과 지방자치단체장이 검찰에 구속되었다. 보해저축은행의 대주주인 보해양조 임건우 회장도 최근 4백억원 규모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보해저축은행 대출 비리로 기소된 인사만 10명에 이른다.

지난 6월 말에는 수천억 원 규모의 불법 대출에 관여한 박종한 전 보해저축은행장이 자진해서 귀국했다. 박 전 행장은 지난 2009년 11월 검찰 수사를 피해 뉴질랜드로 도피한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보해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변호사를 통해 자수 의사를 밝혔다. 해외로 도피한 지 1년 반 만이었다. 때문에 귀국한 박씨의 입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대출 로비의 진상이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알려진 박 전 행장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이다. 지난 2008년 행장 재직 시절 금융 브로커 장 아무개씨에게 4백억원을 대출해주고 2억원을 리베이트로 받은 것이 첫 번째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특수부가 장씨를 구속하자 박 전 행장은 서둘러 출국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간 박씨를 불러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뉴질랜드 정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한 상태에서 박씨 스스로 검찰 조사에 응했다. 수사에 상당 부분 진전이 있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이미 보해저축은행의 불법 대출에 연루된 인사들을 속속 불러 조사 중인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 6월17일 지역 건설업체 대표 방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방씨는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2백10억원을 담보 없이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방씨는 지역의 또 다른 건설업체 대표인 김 아무개씨가 1백30억원을 대출받을 때에도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방씨는 대출 대가로 박 전 행장과 오문철 대표에게 2억원을 제공했다. 박 전 행장이 귀국한 만큼 대출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추가로 대출 로비가 있었는지에 대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월에는 시중 은행 지점장과 투자사 대표, 부동산 감정평가 브로커, 벤처 사장이 낀 대출 사기 조직 11명이 무더기로 수원지검에 적발되었다. 이들은 담보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을 부풀렸을 뿐 아니라 시중 은행의 지급 보증서까지 위조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수협과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3백억원씩 총 6백억원을 대출받았다가 검찰의 철퇴를 맞았다. 이 일로 SC제일은행과 수협은 1년 가까이 소송을 하고 있다.

 위조된 지급 보증서를 발부한 곳이 SC제일은행 지점장인 이 아무개씨이기 때문이다. SC제일은행측은 현재 “지급 보증서가 위조된 만큼 은행은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협측은 “SC제일은행이 지점장 전결 권한을 높여서 문제가 발생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수사 과정에서 2천억원 불법 대출 추가 확인

▲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4백억원 규모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임건우 보해양조 회장. ⓒ연합뉴스

이 사건 역시 박종한 전 행장이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광주지검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해외 도피 중이던 박 전 행장을 제외한 사건 가담자 11명을 전원 기소한 상태이다. 박씨가 현재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전 행장은 기업 사냥꾼인 이 아무개씨가 대출해간 2천억원에도 관련되어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최근 보해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2천억원의 불법 대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검찰은 박 전 행장이 거액의 대출을 강행하면서 감독 기관의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 로비를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미 검찰 수사에서 금감원 간부들이 이 은행의 방패 역할을 한 정황이 상당 부분 확인된 상태이다.

지난 5월 말 구속된 금감원 3급 조사역 김 아무개씨의 경우 보해저축은행의 부실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김씨는 보험설계사인 아내를 위해 22억원 상당의 보험을 가입하라고 강요한 터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비슷한 시기 금감원 부국장이었던 이 아무개씨가 수억 원 규모의 현금카드와 저축은행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사용하다 구속 기소되었다. 김씨는 한 달 정도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검찰에 자수했다. 검찰 수사관 김 아무개씨의 경우 수사 중인 정보를 저축은행측에 유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최근 진행된 1심에서 “대가성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박 전 행장 역시 검찰에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오대표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된 오대표로부터 금품 제공 사실을 모두 확인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대출 액수가 컸던 만큼 로비 라인 또한 방대하게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보해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보해 비대위)는 검찰의 비호 의혹도 제기했다. 서상훈 비대위 위원장은 “4년 전 경찰이 보해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사건을 수사했다. 당시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던 것에 대한 별도의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직 중진 의원의 아들인 윤 아무개씨의 행적이 특히 주목된다. 윤씨 역시 감독 기관의 수사 무마에 대한 대가로 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윤씨가 정치권이나 금융 당국에 대한 로비의 창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윤씨는 보해저축은행에서 2천억원을 대출받은 기업 사냥꾼 이 아무개씨와도 각별한 사이이다. 이씨는 정권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의 지분을 매입한 장본인이다. 이상득 의원의 사위인 전종화씨를 기업 인수·합병 전문 회사인 나모이쿼티 대표로 영입한 인물도 이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정·관계 비호 의혹으로 치닫고 있는 삼화저축은행 비리가 보해저축은행으로 확산될지 향후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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