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국정 난맥 역대 최악이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7.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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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전 국회의장 인터뷰 / “공직 사회도 너무 썩어…말만 잔뜩하고 행동 없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 “정권 말기에는 미래 권력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너무 일찍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친이계’가 뭉쳐서 자기들의 후보를 한 사람 정해서 박근혜 전 대표와 페어플레이를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김문수든, 오세훈이든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빨리 나서야 한다.” ⓒ시사저널 우태윤

국정의 난맥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부와 여당이 반목하고, 청와대의 국정 컨트롤타워 능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이나 정계 원로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땅의 살아 있는 ‘원로 정객’으로 불리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터뜨리는 준엄한 꾸짖음은 그중에서도 특히 신랄하다. 간결한 어투와 절제된 용어를 사용하지만 날은 시퍼렇게 서 있다. 그러나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 정국은 추상같은 ‘노(老)정객’마저도 서서히 지치게 하는 모양이다. 7월7일 인터뷰를 마친 뒤 이 전 의장은 기자에게 “인터뷰가 실린 책이 나오면 내게 10부 정도 줘. 내가 직접 청와대에 갖다줘야겠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국정의 난맥상이 갈수록 심각하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동의하는가?

그렇다. 어느 정권이든 정권 말기가 되면 국정의 난맥상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특히 지금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권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당·청 갈등, 이런 문제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정부가) 국민에게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국정 난맥상의 대표적인 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해달라.

우선 물가 인상 등 민생 문제가 심각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이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 심각하며, 심지어 최근 4년간 고위공직자 비리가 예전에 비해 다섯 배가 늘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마치 남의 말 하듯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로만 ‘공정 사회 건설’을 외칠 것이 아니라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야 한다. 공직 사회가 다 썩었는데, 아무리 공정사회를 외쳐본들 전부 구호에 그치고 만다.

현 정부 들어 특히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가 더 심화되었다면,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데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현 정부의) 출범부터 도덕적 기반이 너무 약했다. 대통령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엄격한 잣대와 통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또 대통령이 너무 실용만 강조해 공직자 단속에 대해서 소홀히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 체제가 새롭게 출범했다. 여권의 분위기 쇄신이 가능할까?

일단 홍준표 대표는 특정 계파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표직을 수행하는 데에 유리한 입장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홍대표 역시 말을 앞세우기보다 실천하는 대표가 되어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즉, 말수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 집권 여당의 대표답게 좌충우돌식의 인상은 주지 않아야 한다. 

결국 청와대가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점점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청와대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크다. 청와대도 말보다는 행동하는 청와대가 되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하는 청와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말만 잔뜩 하고 행동이 없는 그런 정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이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말고, 장관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혼자 다 하나. 그러니 장관들이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흔히 ‘미래 권력’이라고 부른다. 힘의 균형추가 점점 청와대에서 미래 권력 쪽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으레 정권 말기가 되면 권력이 미래 권력으로 점차 이동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너무 일찍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친이계’가 뭉쳐서 자기들의 후보를 한 사람 정해서 박근혜 전 대표와 페어플레이를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김문수든, 오세훈이든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빨리 나서야 한다.

이 전 의장께서는 지난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했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죽 지켜봐온 것으로 안다. 박 전 대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그동안은 박 전 대표가 상당히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왔고, 되도록 말수를 줄여온 것은 비교적 적절했다. 엄연히 대통령이 있는데 본인이 자꾸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국정 혼란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나라가 어려울 때는 침묵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라를 걱정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본인이나 나라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되면 폭넓게 두루두루 만나는 것이 좋다. 지도자는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국정 견제 세력인 야당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엄연히 제1 야당인 민주당도 지금의 국정 난맥상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쓸데없는 말꼬투리 잡기로 자꾸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게 혐오감만 준다.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이 ‘종북주의’ 문제로 서로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 딱하고, 아주 불필요한 일이다. KBS 수신료 인상 문제로 당의 방침이 왔다 갔다 하고,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하던 한·미 FTA도 무조건 반대하고 나서고. 이런 것은 좀 더 신중히 생각할 문제이다.

지난 6월27일 아주 오랜만에 청와대에서 여야 영수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별 성과는 없었던 듯하다.

내가 과거 5공 시절, 국민당 총재를 할 때 전두환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많이 했지만, 영수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항상 비판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영수회담은 안 된다. 물론 야당 대표 역시 본인이나 당의 입장만 살리려 하지 말고 사심을 버리고 진실로 나라를 위해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때 여당이 다 만들어놓은 학원안정법 추진을 내가 끝까지 설득해서 보류하게 한 일이 있다. 또 1987년 6월24일 영수회담 때도 내가 설득해서 6·29 선언을 하도록 이끌었다. 사심 없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얘기했으니까 대통령도 거절을 못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여야 지도자 간에 그런 ‘통큰’ 정치가 사라진 듯하다.

지금의 정치 수준이 옛날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여야 원내대표끼리 합의한 것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나. 영수회담 역시 서로 명분 찾기에 급급한 회담이 되고 있다.

지금 국정의 난맥상도 따지고 보면 권력 누수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여권에 충고한다면?

세월이 흐르면, ‘나이 먹는 것을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라고 하듯이, 임기 말기가 오면 어느 정도의 권력 누수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를 억지로 무리하게 막으려고 하면 오히려 권력 누수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이대통령은 남은 임기 기간에 더 많은 업적을 남기겠다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거나 서두르면 안 된다. 조용히 말없이 민생 문제 해결, 부정부패 척결에만 전념해주기 바란다. 더 이상 무리하게 자꾸 업적 세우려 하지 말고.

끝으로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양심이 마비가 되어서 부정과 결탁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 특히 내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제발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돈이 좋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장사를 해라. 정치하지 말고. 정치인들은 돈보다 명예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18대 국회 마지막인 올해 가을의 정기국회만이라도 제발 여야가 몸싸움을 벌이지 말고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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