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중심의 현대미술이 얼마나 상업적인지 꼬집은 다큐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8.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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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쥐벽서’ 사건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뱅크시가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그렇다고 뱅크시가 그래피티의 역사나 작업 방식을 친절히 안내하는 영화를 찍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으시라.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불식시키면서도, 그 이상의 진실을 폭로한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제목은 관람객이 기프트숍을 거쳐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 미술관의 동선을 가리키는 말로, 미술관 중심의 기존 미술이 얼마나 상업적인지를 꼬집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뱅크시가 아니라 티에리이다. 그래피티 작가를 따라다니며 강박적으로 촬영을 해댄 인물로, 영화 전반부에 담긴 뱅크시와 다른 그래피티 작가의 작업은 티에리가 찍은 것이다. 기존 미술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미술관이 아닌 거리에서 경찰에게 쫓기며 작업한 뱅크시의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자본에 저항하는 행위마저도 과정의 도발성은 제거한 채 결과만을 물신화시켜 고가의 상품으로 팔아버리는 끔찍한 생리를 목도한 뱅크시는 티에리에게 그동안 찍은 필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거리 예술의 진실”을 공개하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티에리의 다큐멘터리는 끔찍하게 난삽했고, 뱅크시는 자신이 편집하겠다며 필름을 넘겨받는다. 대신 티에리에게는 직접 작품을 해보라고 권유하는데, 그 뒤는 어찌되었을까.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이름으로 그간 보아온 그래피티 작업을 차용해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둔다. 거기에는 뱅크시의 격려사와 언론의 펌프질도 한몫했다. 영화는 티에리라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통해 현대미술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허무 개그처럼 보인다. 그러나 티에리를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어 조롱하는 이 영화 역시 뱅크시와 티에리가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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